할빈렬사릉원에는 전국적으로도 유일한 항일렬사 머리 유해인 동북항일련군 제10군 군장 왕아신(汪雅臣) 장군의 머리 유해가 소장되여있다. 1986년부터 2025년까지 흑룡강중의약대학의 기술팀은 4세대에 걸쳐 전문성과 순수한 마음으로 39년간 충혼을 지켜왔다. 지난 2일 렬사의 머리 유해를 위한 방부액 교체 작업이 재차 가동됐다.
아침해살이 릉원의 송백나무를 비출 무렵 왕아신 장군의 묘비 옆에 림시보호구역이 설치됐다. 빛을 가리기 위한 용도의 큰 우산이 묘비 옆에 펼쳐져 영렬을 위한 고요한 수호공간이 마련됐다. 흑룡강중의약대학 류양(刘洋)팀이 작업대를 에워싸고 일사불란하게 영웅의 머리 유해 방부액 교체작업을 진행했다.
이 특별한 "수호 작업"은 40분 내에 정확하게 완성돼야 한다. 마지막 밀봉 검사가 끝나자 팀원이 붉은 천을 용기에 덮었다.
류양팀은 용기를 정중히 받쳐들어 묘실에 안치했다. 그 정중함에는 왕아신 장군의 장렬했던 지난날에 대한 존경심이 깃들어있다. 1941년, 오상의 림해설원에서 왕아신 장군은 피어린 전투 과정에 적군에 포로되었으며 30세의 생명을 항일보국의 길에 바쳤다. 일본침략자들은 렬사의 목을 베어 잔인하게 효시하고 머리 유해를 숨겨놓았다. 그 머리 유해는 1948년에야 비로소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머리 유해는 항일련군 장병들의 정신적 토템으로 자리잡았다.
묘실 문이 서서히 닫히고, 39년 세월에 걸친 유해 수호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1986년, 릉원은 겨울철의 머리 유해 랭동 방지 난제 해결을 위해 흑룡강중의약대학의 서일엽(徐日晔) 교수를 찾아왔다. 로인은 비석 옆에 간이막사를 짓고 밤낮으로 문헌을 뒤적이면서 사비로 원료를 구입해 백여차례의 실험을 거쳐 마침내 최초의 방부액 조제 처방을 정했다. 그후 리아동(李亚东)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아 령하 수십도의 엄동설한에 반복적인 성능테스트를 거쳐 랭동방지의 핵심 난제를 해결했다. 그 뒤를 이어 강국화(姜国华) 교수가 또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원래 몇 시간이 걸리던 방부액 교체 시간을 40분으로 단축시켰으며 교체 주기도 '1년에 여러번' 에서 '1년에 한번'으로 늘였다. 4세대에 걸친 실험 기록 수기가 오늘날 학교기록보관관의 "붉은 보물"로 소장되여 있다. 그 기록들에는 0.1ph의 약물 농도 차이에서부터 약물 교체 매 단계에 걸리는 시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문성으로 영렬에 대한 존경심 표현하고자 하는" 초심이 깃들어 있다.
앞으로 "4세대에 걸친 충혼 지킴이" 이야기가 또 과학기술보급과목이 되여 더 많은 캠퍼스에 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