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중국 북경 천안문(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 80주년 열병식은 '중국 굴기(崛起)’의 드라마였다. 1949년 모택동 주석이 신중국 건국을 선언했던 망루에서는 습근평 주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조선 국무위원장과 함께 섰다. 20여개 국가 수반들도 습 주석의 좌우와 뒷편에 함께 섰다. 중국의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열병식은 규모나 내용면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했다. 러시아나 조선, 한국은 물론 미국도 최근 열병식을 했지만 규모와 내용면에서 중국의 80주년 열병식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AI 기술이 결합된 최첨단 무기들의 행렬은 중국 굴기를 상징하듯 위풍당당했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을 넘볼 수 없다는 힘을 보여주는 듯 했다.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80년 전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 끝에 전승국이 되었다. 승리는 했으나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이후에도 중국은 공산당 주도의 대륙 통일과 신중국 건국의 힘든 과정을 거쳐 70여년에 걸친 현대화의 길을 걸었다. 가난하고 분렬된 중국이 80년의 분투 끝에 세계 최강 미국과 당당히 맞서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는 한국의 발전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기적으로 꼽힌다.
이번 열병식은 몇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중국이 미국의 대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반중 포위전략에 중국은 다자주의의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맹도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는 트럼프식 일방주의에 실망한 국가들이 중국 주도의 다자주의의 길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이번 열병식에 2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중국의 국방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사거리 2만km 이상으로 지구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5C,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 DF-61, ‘미국판 사드’로 불리는 지대공 미사일 훙치(HQ)-29 등 신형 첨단 무기를 대거 공개했다. 이제 미국의 눈치를 살필 시기가 지났다는 뜻이다.
셋째, 중국 인민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천안문 망루에서 눈물을 흘리며 열병식을 지켜본 로병들의 모습에서 80년 대장정의 성과를 바라보는 중국 인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에게 국토를 침략당한 나라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14억 중국 인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이제 중국은 구소련의 지원을 받던 처지에서 러시아에게 도움을 요청받는 나라가 되였다.
외교적 측면에서 이번 열병식은 북중러의 전략적 연대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최대 수혜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었다. 중ㆍ러 초강대국의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 능력을 갖춘 지도자로 국제사회에 부각되었다. 또한 열병식 이후 진행되는 북ㆍ중, 북ㆍ러 정상회담에서 상당한 경제ㆍ외교적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열병식에서 한국의 외교적 력량이 부각되지 않았다. 대신 이북이 모든 행사의 초점이 되었다. 지난 2015년 70주년 전승절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푸틴과 함께 습 주석 옆에 서는 등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년간의 잘못된 한중 관계가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 남북의 평화공존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 외교무대에 나오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 다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습근평 주석, 푸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서서 사진을 찍을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