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규모를 자랑하는 구로공단 건설작업에 대량의 인력이 필요했고 주변일대에 값싼 쪽방이 많아 조선족들이 줄지어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 서울의 구로, 대림, 가리봉 등 일대는 명실공히 ‘동포타운’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간곳마다 중국 글과 한글간판이 엇갈려 연길의 어느 모퉁이를 방불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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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 경기도 양주 휴양지서 유원회를 마련한 흑룡강조선족모임 일행 |
지난 10여년간 인천 영종도 신공항, 새만금 개척지, 청계천 개발, 서울 외곽순환도로, 인천 송도신도시개발 등 수천억원에 달하는 공사로부터 전국의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현장마다에 중국동포의 땀이 배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고국에서 동포들은 땀 흘린 만큼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흑룡강성 녕안시 모 촌의 현재 한국체류자가 100여명, 그중 10년 이상 경력자만 해도 40여명 되는바 이들 중 근 30명이 위해,청도,상해 등지에 한 채 혹은 두 채의 아파트를 샀다고 한다.2002년 고향 사람 김씨가 먼저 청도에 집을 사 임대하자 너도나도 따라 나섰다는 얘기다.
연변의 왕청에서 왔다는 정씨는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친척이 근 30명 되는데 지난 구정 함께 모인 자리에서 두루 세어보니 이들이 연해지구에 산 아파트가 16채나 된다고 했다.
1994년 친척의 초청으로 들어왔다는 50대 후반의 하얼빈시 박모 내외는 97년 금융위기를 경험했으므로 “후각”이 예민해져 2002년과 2006년 선후로 베이징에 아파트 한 채와 가게건물을 사서 임대하였는데 이미 20여만원 이득을 챙기었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한국행을 택한 동포들 가운데 20~30%는 자녀를 공부시키는 외 중국 연해지구나 대도시에 부동산을 마련했는바 그 가치를 따지면 인민폐 수백억위안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녹청물산’(대표 이동국), ‘연길냉면’(대표 김성학)등 중한무역, 서비스업에서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가는 동포 성공사례도 허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