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 없지 않습니까?”

　　“얼마 없지, 그러니까 이렇게 죽치고 앉아잇을 시간이 없단 말이야.”

　　그 말은 시간이 없으니 지금부터 모두 밖으로 나가 범인을 찾아내라는 말이나 같았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눈만 꿈뻑거린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사를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것이다.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앗지만 그런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죠?”

　　왕반장은 책임자답게 비로소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병호는 원본을 쳐들고 흔들었다.

　　“우선 여기에 묻어잇는 지문을 채취해야겠어. 내가 보기에 여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지문이 묻어있는것 같아. 하지만 하나하나 가려내야 해.”

　　“벽에 붙어있는것을 원장이 채갈 때부터 지문이 뒤죽박죽 되였을겁니다. 저희들 지문도 많이 묻었을거구요.”

　　“그런줄 알고 조심하란 말을 하지 않았어. 그리고 글자를 오려붙일 정도로 조심스러운 놈이라면 지문을 남기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냥 넘어갈수는 없어.”

　　“빠짐없이 채취하겠습니다.”

　　왕반장은 원본을 받아서 모두 들어보라는듯 큰소리로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 ‘녀자는 죽어야 한다. 오늘밤 녀자 한명을 죽이겠다. 그 녀자는 한쪽 귀가 없을것이다. 잘해봐. 제트로부터.’ 염병할 놈 같으니!”

　　모두가 킬킬거리고 웃었다. 그 바람에 분위기가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협박문을 한번 검토해보는게 좋겠어요.”하고 화시가 말했다.

　　“물론 검토해봐야지.”

　　병호는 깊은 눈길로 화시를 쳐다보았다. 화시 역시 그를 주목하면서 입을 열었다.

　　“ ‘녀자는 죽어야 한다’이 말은 하나의 명제인것 같아요. 이 한마디가 범인의 녀자에 대한 감정이 어떤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것 같아요. 범인에게 있어서 녀자란 사랑스러운 존재도 인격체도 아니고 다만 죽어 없어져야 할 존재뿐이예요.,”

　　“끔찍해.”하고 정문자가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녀자라는 존재를 모두 죽이겠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범인은 남자겠죠? 녀자한테 한을 품은 남자 말이예요.”

　　찐빵이 재빨리 한마디 했다.

　　“십중팔구는 그렇겠지. 하지만 꼭 남자라고 단정할수는 없어. 녀자가 같은 녀자를 증오할수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수가 적은 조형사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화시는 두번재 문장을 또렷한 발음으로 읽었다.

　　“ ‘오늘밤 녀자 한명을 죽이겟다.’ 이 문장은 어때요?”

　　“단도직입적이야. 마치 선전포고 같아.”하고 문형사가 말했다.

　　“왜 한명이라고 했을가?” 병호는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화시의 큰 눈이 그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