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는 장난이 아니고 일종의 예고살인일것 같아.”
형사들은 찬물을 뒤집어쓴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그를 주시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왕형사가 상체를 뒤로 젖히며 물었다.
병호는 벽보에 손이 닿지 않게 두 손을 벌렸다가 왼손을 오무려 주먹을 쥐였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 이 내용이 아주 정성들여 만들어졌기때문이야.”
병호의 말이 꽤 설득력이 있는 지적이였던지 형사들은 눈을 빛내며 마치 새로운 사실을 찾으려는듯 복사지를 들여다보았다. 병호는 부하들이 잘 볼수있도록 원본을 집어들어 세워놓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걸 보면 알겠지만 이 글자들은 쓴게 아니고 조합한거야. 신문이나 잡지 같은데서 하나하나 글자를 오려내서 붙인거란말이야. 장난으로 한것이라면 굳이 이런 짓을 안하고 매직펜같은것으로 휘갈겨 썼겠지. 내 말에 무리가 있나?”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화시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예요. 계장님 말씀이 옳은것 같아요. 그리고보니까 아주 정성들여 만든 벽보예요. 범인이 진지한 태도가 엿보이는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한가지 류의할 점이 있어요.”
병호는 손가락을 세워 부하들의 시선을 유도했다.
“이 협박문을 굳이 손으로 쓰지 않고 글자들을 여기저기서 오려서 조립한 리유지 뭐지?”
“그거야 자신의 필체를 숨기기 위해서겠죠.”하고 정문자가 말상처럼 생긴 얼굴을 쳐들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범인은 자신의 필체까지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한거야. 다시말해 수사에 단서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치밀하게 꾸민거야. 한낱 장난이라면 그럴수가 없겠지.”
“장난이라 하더라도 붙잡히면 골치아프니까 조심하는건 당연하지 않을가요?”
문형사가 재빨리 말하고나서 껌을 뱉었다.
“그럴테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잊. 그럼 또 한가지를 말해볼가? 이 벽보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붙어있었어. 그리고 우리 경찰서에서 불과 300미터정도의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붙어있었어.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그럴수가 없지. 장난이라면 과연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가지 그곳에다 벽보를 붙일가?”
“예고살인의 경우라 해도 그런 위험만은 삼가겠죠. 경찰서에 편지를 보낼수도 있고 전화를 걸어올수도 있지 않을가요?”
왕형사가 불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병호는 원본을 내려놓으면서 한손을 들어 상대방의 말을 막았다.
“그건 그렇지. 살인을 계획하고 있는 자라면 시작하기도 전에 붙잡힐 짓은 안하겠지. 그런데 그런것은 너무 상식적인 생각이고 례외적인 경우가 있지.”
병호는 담배를 한대 뽑아물고 불을 붙인다음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후하고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