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번 1기 계속)
‘女子는 죽어야 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그런 글귀가 달라붙어 있었다.
“비닐봉지를 하나 구해오라구. 이걸 이대로 들고갈수는 없잔아.”
화시는 미처 펴지지 않은 벽보를 마저 펴서 거기에 붙어있는 글자들을 끝까지 읽고서야 비닐봉지를 구하러 간호원실쪽으로 들어갔다.
잔심부름이나 귀찮은 일거리따위는 의례 고동자의 몫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의례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아무리 궂은일이라 해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쾌활한 모습으로 그런것들을 처리하군 했다.
악취를 풍기는 젖은 볍보를 석유난로에 말리면서도 그녀는 연신 코노래를 흥얼거리고 잇었다.
대충 마르자 그녀는 그것을 병호앞에 쭉 펴놓았다. 그것은 여기저기가 찢겨졌지만 그을 못읽을 정도는 아니였다.
“스카치 테이프 좀 가져와.”
병호의 말이 떨어지마자 화시는 재빨리 서랍속에서 테이프를 꺼내가지고 와서 벽보를 뒤집어놓은 다음 찢어진 부분을 서로 맞추었다. 그리고 꼼꼼히 테이프쪼각을 거기에다 붙여나갔다.
“있다가 다리미질을 해야겠어요.”
땜질한 벽보를 다시 병호앞에 펴놓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동안 벽보는 거의 말라 있었고 냄새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병호 주위로 형사들이 몰려들더니 벽보의 내용을 읽으면서 제각가 한다미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병호는 담배를 꼬나문채 그것을 무표정하게 내려다 보고 잇었다.
“ ‘녀자는 죽어야 한다. 오늘밤 녀자 한명을 죽이겠다. 그 녀자는 한쪽 귀가 없을것이다. 잘해봐. 제트로부터.’이런 제길할. 읽어볼수록 사람을 미치게 만들잖아.”
문형사가 요란스럽게 껌을 씹어대며 말하자 조형사가
“정말 웃기는 내용이야.”하고 받아넘겼다.
“이런데까지 신경쓸게 있습니까?”
키가 큰 구형사가 다른 형사들의 어깨너머로 넘겨다보며 한마디 보탰다.
“누가 좀 심하게 장난친것 같은데요.”
안경을 낀 안형사가 허옇게 김이 서린 안경을 벗어 닦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병호는 부하들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지금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쉬고싶은것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도 많은데 공연히 일거리를 만들어 쓸데없이 시간과 정력을 랑비할 필요가 있느냐, 그들은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상관에게 그렇게 말하고싶은것이다.
“이게 예고살인일거라는 확증은 없지 않습니까?”
오리궁둥이가 하품을 참으면서 말했다. 병호는 조금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냥 넘길수는 없잔아. 이게 예고살인이 아니라는 확증도 없잔아. 안그래?”
병호는 고개를 들어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들을다문채 그의 시선을 슬슬 피했다.
“고형사, 이걸 여러장 복사해 와. 복사해서 한장씩 돌리라구.”
복사를 하라는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다는 뜻이였다.
찐빵처럼 생긴 동자가 벽보를 집어들고 복사기쪽으로 걸어가자 형사들은 흩어져서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병호는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뒤편 뜰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