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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무엇을 바라고 사는것일가
http://hljxinwen.dbw.cn   2008-12-17 07:57:52
 
 

  흑룡강신문=하얼빈 2008.11.20

  내가 19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의외의 차사고로 우리 3형제와 젊고 이쁜 어머니를 청상과부로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 당시 키는 작아도 환한 미모였던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재혼 권고가 많이 들어왔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어린 애들을 버리고 떠날수가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가 많이 초췌해졌으며 저녁마다 홀로 방에서 흐느끼고있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지금도 귀가에 쟁쟁하다. 세상 모르는 우리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따라 울기만 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머니는 차츰 나아졌다.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때문에 어머니는 닥치는대로 일하였다. 모철에는 삯모, 여름에는 삯김, 가을에는 삯가을 그리고 겨울에는 가마니를 짰다. 그리고 살림에 보탬이 될가싶어 가축도 키우고 이삭주이도 다녔다. 그러면서 허리병, 다리병을 얻었는데 저녁에 일자리에서 들어오는 어머니를 맞이하러 가보면 먼곳에서 어머니가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왔다. 뒤다리목 올라서면 우리 3형제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한다고 씨엉씨엉 걸느라 노력하는 어머니, 우리는 솟구치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웃어주었다.

  경제난으로 오빠는 21살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그날 어머니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오빠가 출근하면서 생활이 좀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학업을 이어대지 못한 죄책감으로 나와 동생만은 꼭 대학에 갈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것이 아니지만 우리 집 상황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하여 나는 중등전문학교를 지원하고 동생은 일어학원에 다녔다. 아니나다를가 동생은 반년만에 북경의 모 일본회사에 취직하였고 높은 봉급을 탈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대학교를 나오지 못한것은 어머니의 가슴에 영원히 아물릴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것은 어머니의 입버릇처럼 굳어진 말이였다. 하지만 우리 3형제의 눈에는 어머니가 그 어느 백만부자 어머니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어떤땐 이런 생각도 해본다. 혹시 그때 어머니가 한국사람에게 시집갔더라면 우리는 돈이 그립지 않은 생활을 할수도 있었을것이라고. 하지만 량친부모 사랑을 일시에 잃은 우리들이 흔전만전 돈 쓰는것부터 배워 어떤 인간으로 될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자랑은 아니지만 전에 우리 집은 먹고 입는 기본 문제로 고달프게 살았으나 웃음 하나만은 그치지 않았다. 우리를 밝게 키우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어려운 생활을 해서인지 나는 어른이 되면서 악을 쓰고 돈을 벌었다. 그러다보니 수중에 여유돈이 종종 있게 되였다. 그때마다 어머니 앞으로 이것저것 사들이면 어머니는 랑비라고 질색한다. 그러다가도 인상이 찌그러져 있는 나를 보면 “아이구 기특한 내 새끼야.”하며 껴안아준다.

  하루는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불러놓고 말했다.

  “너희들이 어릴 때엔 배불리 먹을수 있고 건강하게 크는것이 나의 제일 큰 소망이였다. 좀 지나서는 너희들이 다 대학생이 되는것이 소망이였는데 이 에미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이 어른이 된후엔 하루빨리 가정을 꾸리는것이 나의 제일 간절한 소망이였구, 그 다음은 손주를 빨리 보는것이 나의 소망이였는데 지금은 네 동생이 걱정된다. 대도시에서 집도 없이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들겠느냐. 네가 지금 한국수속을 대행해주는데 나를 좀 한국 보내주려무나. 내가 가서 한 5년 벌어 네 동생에게 집이라도 사주게.”

  나는 난감하였다. 내가 부자라면 “어머니, 그까지것 걱정도 하지 마세요 내가 사줄테니.” 하겠는데 그럴 형편은 못되고 자식 위하는 엄마 마음 알기는 하겠는데 그렇다고 환갑이 다 된 어머니를 타국으로 돈벌이 보낸다는것도 자식된 도리가 아니였다. 동생과 토론하자니 동생에겐 아픔이 될것 같고 오빠와 상의하자니 오빠에게 짐이 될것 같았다. 그때문에 나는 밤잠도 설치고 밥맛도 잃었다.

  며칠 고민끝에 나는 내가 어머니를 설복하기로 하였다.

  “어머니, 인간은 태여날 때부터 자기가 먹고 쓸것은 가지고 나온대요. 동생 걱정은 하지도 마세요. 동생은 세집이라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요. 동생 말 못들었어요. 집 하나 내놓고는 없는것이 없다고. 동생이 일본회사에서 봉급도 많이 타고 대우도 좋은데 어머닌 뭐가 걱정이 돼서 한국 간다고 그래요. 늙은 어머니가 한국가 벌어온 돈으로 집 사놓고 살면 동생 마음이 편안할것 같아요? 그애 성질 어머니 모르는것도 아니고…”

  “어머니, 여직껏 우리는 어머니의 소망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여 왔어요. 이제 남은 인생은 어머니가 우리의 소망대로 살아야 해요.”

  “그래 니들 소망이 뭔데?”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물었다.

  “우리의 소망은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는것이예요. 그러면서 손자들이 학교 가는것도 보고 일자리 찾는것도 보고 색시 얻는것도 보고… 그리고 어머니께 증손 낳아주는것도 보고…”

  “그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어이없다는듯 웃었다.

  일생동안 엄마의 소망은 가정을 지키는것이였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서만 오는것이 아니다. 가족에만 매달린 어머니가 남들 보기에 바보같을수도 있겠지만 자식을 위해 쏟은 한편생의 땀동이가 어머니를 행복한 어머니로, 보람찬 어머니로, 그리고 자신있게 아버지를 찾아갈수 있는 어머니로 만들어 주어 인생의 진미를 만끽하게 하고 있다.

  /리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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