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6.01.12)
대학교로 간 아들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걸어오는 전화였기에 받자마자 수많은 잔사설들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아들은 귀찮아 하며 얼버무리고는 대뜸 본문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어머니, 돈을 보내주세요, 며칠후에 향항의 류덕화가 북경에 공연오는데 류덕화는 제가 숭배하는 우상입니다. 제일 차한 좌석도 입장권 가격이 480원인데 또 북경까지 가려면 로비도 있어야 하고 먹고 자고 해야 하니 푼푼히 보내주세요.”
너무나도 철없는 자식의 말에 대뜸 화가 치밀어올랐다.
“돈 480원이 적니? 류덕화가 너의 할애비라도 되니? 그 돈이면 집에 와서 네 아버지 얼굴이나 한번 더 보아라. 너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일하던끝에 앓아 누웠다.”
그래도 아들은 오히려 제쪽에서 더 큰소리 치며 자식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불평을 토로하다가 전화기를 훌렁 내려놓는것이였다.
너무나도 큰 실망을 주는 전화였다. 아들애가 대학문에 들어서게 하기 위해 ‘왕’으로 받들어 모신 ‘혜택’일가. 중학시절 공부에 힘들어하는 자식을 고려하여 시부모 모시듯이 아들의 기분을 잡칠세라 모든 요구에 응해줬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대학생으로 된 아들이건만 가난한 우리 가정 형편에 비해 엄청난 요구를 서슴없이 들이대며 또 고소비의 조건을 마련해주지 못한다고 부모의 무능함을 원망하는 아들이다. 부모자식간의 정도 점점 멀어지는것 같은 느낌이다. 지식이 쌓여감에 따라 예전의 착한 인간성이 말살되여 가는것일가, 아니면 지나친 사랑의 ‘죄과’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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