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진 동명촌은 도리구의 유명한 복숭아재배촌이다. 전에 촌의 부분적인 농민들은 하우스의 복숭아를 자르고 파를 심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농민들이 관리기술을 모르는데다 본촌의 기타 농호들이 알려주려 하지 않아 하는수없이 복숭아나무를 자르고 저급작물을 심게 된것이다.
이런 실정을 감안해 동명촌은 첫 복숭아과학기술전업합작사를 설립하고 복숭아 재배의향이 있는 농민들을 묶어세웠다. 한편 농업대학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현지지도를 하였다. 매 과학기술전업합작사에 컴퓨터를 배비해주어 원격지도, 가시화배움터로 만들었다. 복숭아전문가로 불리우는 마홍정은 자기집의 복숭아하우스를 농민들의 실천기지로 내놓고 스스로의 '토처방'을 다 털어놓았다.
금년 상반년에 입사한 6호 가정에서 전부 풍작을 가져왔는데 무당 소득이 전해보다 800여원은 증가되였다. 하우스의 복숭아품종도 전의 3가지에서 5~6가지로 늘어났다.
과학기술전업합작사가 있게 되자 농촌의 '재배능수', '논밭글쟁이'들이 활개를 펴기시작했다. 그들은 판매를 뛰고 정보를 찾으며 농민들이 고부가가치의 농작물을 재배하도록 인도하여 농촌에서 우세산업을 발전시키는 주력군으로 되였다.
장기간 농민들은 독자적으로 시장을 개척하여 배추가 팔리지 않으면 파가 남아도는 등 문제로 골치를 많이 앓았다. 특히 규모가 형성되지 못하여 농산물의 외지판매로 운임도 해결하기 어려워 당지에서 저가격으로 처분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합작사는 바로 규모화우세로 성내외시장을 석권하여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해주었다. 료해에 따르면 도리구에서 이미 12명 '실농군'들이 각촌의 합작사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과학기술전업합작사는 과거의 가가호호의 분산경영을 통일기술봉사, 통일품종도입, 통일생산관리, 통일대외판매의 통일경영으로 전변시켜 농민들의 뒤근심을 덜어주었다. 더욱 중요하게는 농산물에 대해 품질표준화관리를 실시하고 통일적으로 상표를 부착하여 좋은 가격을 받았다.
/강설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