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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진흥 속 흑토지 우의 공작대
//hljxinwen.dbw.cn  2021-06-03 14:10:00

  비옥한 동북의 흑토지에 농작물이 넘실거리고 창고마다에는 알곡이 넘친다. 흑룡강, 이곳은 과거 토지를 분배 받은 농민들이 전국 해방을 지원하는 대후방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은 국가식량안전의 ‘바닥짐’, 농업현대화의 선두주자로 거듭나며 향촌진흥의 새로운 장정의 길에 오르고 있다.

  75년 전 토지개혁의 폭풍세례와 빈곤탈퇴 난관공략전의 련마를 거친 흑룡강에 향촌진흥의 봄바람이 불어 오고 있다. 흑토지는 시종 개척자, 분투자들의 발상지였으며 천지개벽의 변화를 겪는 농민들의 운명을 견증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부동한 시기마다 특수한 전투군체-농촌공작대의 모습이 빛나고 있다. 그들은 당의 정책을 천가만호에 전달하고 대중을 교육하고 조직하여 근로한 두 손과 지혜로 생활과 운명을 가꾸어가도록 이끌었다.

흑룡강성 상지시 원보촌의 비옥한 흑토지

  주립파-농민이 있는 곳에 ‘홰화나무’ 심다

  흑룡강성 상지시 원보촌 동대호지(元宝村东大壕地). 75년 전 토지개혁공작대가 이곳에 첫 말뚝을 박았고 토지를 분배 받은 농민들은 처음으로 토지의 주인이 되였다.

  현재 이곳은 한전을 수전으로 바꾸는 시범구가 되였다. 수전으로 옮겨진지얼마 안되는 푸르싱싱한 벼모들이 바람에 하느작 거리고 있다.

  올해 84세의 원보촌 촌민 라경보(罗庆宝) 로인에 따르면 토지개혁 전 원보촌은 가난하기 거지 없었다고 한다. 어떤 가정에는 정말로 바지가 한 견지 밖에 없어 부부가 바지 하나를 공유했는데 집문을 나서는 사람이 바지를 입고 나가면 한 사람은 입을 바지가 없어 집에 묶여 있어야했다. 그래서 원보촌은 알궁둥이 마을(光腚屯)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1946년 5월4일 중공중앙에서는 ‘토지문제 관련 지시’를 발표하고 “경작하는 자가 토지를 소유”하도록 했다. 동북해방구에서 우선적으로 토지제도개혁운동의 열조를 일으켰다. 각급 여러 기관에서 대량의 토지개혁공작대를 파견해 농촌에 주둔시키고 대중들을 조직하여 토지분배를 진행하였다.

  1946년 가을, 38세의 작가 주립파(周立波) 씨가 부대를 따라 송강에 왔으며 그는 주하현(珠河县, 오늘의 상지시) 원보구의 토지개혁에 참가할 것을 신청하였으며 토지개혁공작대의 부대장으로 임명 받았다.

  라경보 로인에 따르면 토지개혁공작대가 원보촌에 주둔한 초기, 마을 촌민들은 공작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공작대는 집집을 돌며 가정방문을 하고 농민들의 질고를 들어주며 농민형제들을 도와 밭일을 하는 등 현지 농민들의 친근한 친구가 되기에 노력하였다.

  라경보 로인의 인상속 주립파 씨는 안경을 걸고 손에는 항상 필을 든 지식인이였으며 늘 농민들의 구들에 다리를 틀고 앉아 촌민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혁명가곡을 가르쳤다고 한다.

원보촌 토지개혁 공작대 부대장 겸 작가 주립파.

  주립파 씨는 토지개혁 열성분자 양성반에서 정치과목을 가르칠 뿐만아니라 조수리(赵树理)의 ‘리유재 판화(李有才板话)’와 팔로군, 백모녀 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원보구 제1임 공작위원회 한혜(韩惠) 당서기는 회고록에서 공작대가 군중을 상대로 어떻게 업무를 전개했었는지를 기록하였다. 공작대는 ‘리유재판화(李有才板话)’에서 빈고농민들이 자주 홰화나무아래에 모여 토지분배 정황을 담론하던 것을 거울로 삼아 원보촌에 ‘홰화나무 심기’를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공작대는 농민들이 자주 모여 이야기를 주고 받는 집을 ‘홰화나무’로 비유하고 이런 ‘홰화나무’를 찾아다니며 모임에 끼였다. 공작대는 이런 자리에서 팔로군이 일본군을 치고 지주와 투쟁을 벌리는 이야기를 전하고 중간중간 혁명도리를 설명하며 당의 농촌정책을 선전하였다. 이런 방법은 구속됨이 없고 표달이 활발해 사람마다 토지개혁의 의의를 알수 있었고 분위기가 뜨거워 밤이 깊어질 때까지 농민들은 흩어질줄 몰랐다고 한다.

  거리감과 우려가 해제되고 각오가 생긴 원보촌 농민들은 일어나 악덕 지주와 투쟁을 벌렸다. 공작대는 틈을 타 빈고농을 중심으로 농회, 자위대, 부녀회 등을 설립하고 그들이 토지개혁 중 존재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고 주인이 되여 주견을 세울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으며 마을을 떠날 때는 한개의 공작팀을 남겨 두기도 했다.

원보촌 토지개혁 공작대가 군중대회를 소집하고 빈고농민들이 토지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동원하고 있는 장면

  지주가 타도되고 농민들이 꿈에도 그리던 자신만의 토지를 갖게 되였다. “우리 가족은 공산당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라경보 씨는 네식구에 20여 무의 땅을 분배 받았는데 너무 기뻐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며 공산당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방구의 토지제도개혁은 새중국 성립에 튼튼한 대중적 기초를 다져 놓았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번신을 한 농민들은 진심으로 공산당을 옹호하였다.

  80세의 현임 원보촌 당지부서기 장보금(张宝金) 씨는 41년 째 마을 당지부서기를 맡아 오고 있다. 그는 “토지개혁공작대가 농촌에서 선전하고 농민들을 교육, 동원하는 과정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는 새중국성립 후 ‘3농’업무에 보귀한 경험이 되였습니다”고 말했다.

  2020년 원보촌 총 자산은 7억3천만원에 달했으며 농민 일인당 평균 순소득은 3만3천원에 달했다. 절반이상의 농민들이 아파트 혹은 별장 생활을 하고 있다. ‘토지개혁 제1촌’에 거대한 력사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다.

  진화-16년을 8개 마을의 료원의 ‘불씨’가 되여

  요하 란교촌, 녕안 폭포촌, 동녕 동수촌, 상지 대방자촌...‘청급촌관’ 진화 씨는 16년을 8개의 후진촌을 선진촌으로, 쇼캉촌으로 이끄는데 바쳤다. 2019년 12월, 정부기관에서 퇴직한 진화 씨는 이제 더는 수릉고산촌(绥棱靠山村)의 서기, 주촌공작대대장이 아니다. “빈곤탈퇴는 종점이 없습니다. 저는 농민들이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일을 할겁니다” 진화 씨가 말했다.

흑룡강성 수릉현 고산촌 전임 제1당위서기, 주촌공작대 진화 대장.

  흑룡강성은 한때 전국 빈곤탈퇴개발임무가 상당히 무거웠다. 흑룡강성에는20개 국가급 빈곤현과 8개 성급 빈곤현, 1778개 빈곤마을이 있었다.

  과거의 성급 빈곤촌인 수릉현 고산촌에 부지면적 1500제곱미터, 사면이 흰색 담벽인 ‘행복한 정원’이 록음에 둘러 쌓여있다. 정원에는 35개의 방이 마련되여 있으며 마당에는 여러가지 꽃과 과일, 야채가 심어져 있다.

흑룡강성 수릉현 고산촌의 ‘행복한 정원’

  70여 세의 촌민 리국금(李国琴) 씨가 이곳에 이사를 온지도 5, 6년이 된다. 과거 빈곤호였던 그는 ‘행복한 정원’에 가장 먼주 입주한 주민이다.

  “예전에는 흙집에서 살았어요. 밖에 큰 비가 오면 집안에는 작은 비가 내렸어요” 리국금 씨의 말이다. 리국금 씨 량주는 택지 교환을 통해 넓고 밝은 새집에 입주하게 되였다. 리국금 씨는 또 12무의 토지를 류전하여 매년 5, 6천원의 수입을 보장했다. 거기에 촌의 태양광 발전, 농기계 리익 분배 등을 보태면 안정적이고 행복한 만년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고산촌은 진화 씨의 10여년간 주촌생애의 마지막 역이다. 2015년 9월 그가 처음으로 고산촌에 왔을 때, 마을은 말그대로 지저분하고 란잡한 마을이였다. 촌 당조직도 해이하고 촌집단경제는 60여만원의 빚을 진 상태였으며 촌민들은 빈곤탈퇴에 희망을 걸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화는 공작대를 이끌고 낮에는 촌민들의 집을 찾아 다니고 밤에는 촌간부와 당원, 촌민대표를 소집해 담화를 나누며 고산촌의 ‘맥’을 짚어보기에 나섰다.

흑룡강성 수릉현 고산촌 전 제1당위서기, 주촌 공작대 진화(우) 대장이 빈곤호를 가정방문하고 있다.

  촌민 손원룡 씨에 따르면 그때 빈곤호, 위험 주택호의 주택문제가 가장 많이 반영되였다. 이에 공작대는 할빈공업대학건축학원에 주택 규획과 설계를 부탁하여 따뜻하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며 집중적 거주가 가능한 ‘행복한 정원’을 건설하고 빈곤호와 위험 주택호들을 입주시켰다.

  이밖에 공작대는 당원들을 동원하여 화훼재배를 시작하였다. 몇년 사이 고산촌의 화훼산업은 이미 주변지역에서 이름이 자자하며 촌의 80여 호 빈곤호와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화훼산업을 통해 소득을 증가했다.

  코로나 기간에도 마을의 화훼산업은 수입이 짭짤했기에 올해 마을에서는 화훼재배면적을 확대하였다. 퇴직을 한지도 2년째 접어 들고 있지만 진화 씨는 마을사무에서 마음을 뗄수 없다.

  진화가 공작대를 이끌고 발전시킨 고산촌의 밑천은 화훼재배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빈곤탈퇴 자금으로 마을에 굴착기, 대마력 트랙터 등 농기구를 마련하였으며 기계경작대와 촌로무 시공팀을 조직하여 고산촌 뿐만아니라 주변 마을의 일거리를 맡아 촌소득을 증가하였다. 현재 촌집단경제는 매년 50여만원의 흑자를 내고있다.

  진화 씨는 흑룡강 빈곤부축 1선에 나선 6182개 주촌공작대, 2만5천200명 주촌간부의 축소판이다. 그들의 맞춤형 빈곤탈퇴 지원작업이 있었기에 빈곤탈퇴의 최후의 한단계를 뚫을수 있었다.

  랭국정-"하루 24시간이 모자랍니다."

  우쑤리강 강변, 해발고 800여 미터. ‘우쑤리강 배노래’속의 대정자산이 수개월 이어진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고 신록을 되찾았다. 산 기슭 아래의 얇은 안개가 감도는 요하현 서림자향 소남하촌.

  ‘랭서기!’ 이른 아침 4, 5시 촌민 진조군 씨가 제1당위서기 겸 주촌공작대 량국정 대장의 거처를 찾아 대충 노크를 하고는 직접 방으로 들어갔다. 랭국정 대장이 재빠르게 방에서 일어나 앉았고 두 사람은 담화를 나누었다. 이런 장면은 이미 랭국정 씨의 주촌생활에서 일상이 되였다.

  

흑룡강성 요하현 소남하촌 제1당위서기 겸 주촌공작대 랭국정 대장.

  “농민들은 농사일을 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일이 있으면 논에 나가기전에 찾아와 얘기하고 방법을 찾지요.” 이런 상황이 밥먹듯하다보니 랭국정 대장도 이제는 습관이 되여 밤에는 아예 문을 걸지도 않고 옷은 입은 그대로 취침한다고 했다.

  주촌 생활 5년에 하얗고 말쑥하던 랭국정 씨의 얼굴은 영낙없는 농촌 아낙네 얼굴이 되였고 량손에는 굳은 살이 박혔다. 그러나 5년 세월 소남하촌은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향촌관광과 고추산업이 열기를 띄였으며 이는 빈곤탈퇴로 이어져 2019년 소남하촌은 전국향촌관광 1기 중점촌에 입선되였으며 촌의 관광, 농산품 소득은 500여만원에 달했다.

흑룡강성 요하현 소남하촌 제1당위서기 겸 주촌공작대 랭국정 대장이 2021년 제5회 소남하개경절 행사 현장에서.

  “토지는 농민들의 명줄입니다. 토지의 맥을 살려 ‘금나락’을 맺게 해야지요. 농민들은 집에 앉아서 치부를 해야 진정 농민들의 리익과 바램에 적합합니다”

  “빈곤탈퇴 난관공략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향촌진흥은 전방위적인 요구이고 도전입니다”랭국정 씨는 더욱 바빠졌으며 하루 24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련며칠 랭국정 씨는 밤이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낮에는 해야할 일이 많고 밤에는 8, 9시가 되여야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데 이때는 다 처리하지 못한 일을 완성해야 했다.

  “올해는 중점적으로 농촌환경을 정돈할것입니다”. 랭국정 씨가 1.2미터 길이에 2.4미터 폭의 소남하촌 규획도를 펼쳐보였다. 현재 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은 147가구에 437명이며 규획도에는 매 농호의 위치가 표기되여 있었다. 규획에 따라 동서 6갈래 거리, 남북 4갈래 거리의 위생을 잘 관리하는 한편 길 량켠에 사과나무, 배나무, 오얏나무 등을 심어 거리마다 서로 다른 풍경을 연출하여 관광과 촬영 수요를 만족시킨다고 했다.

  얼마전 한 관광회사에서 소남호촌이 사용하지 않고 있는 토지에 민박을 투자건설할 의향을 비쳤으며 현재 계약체결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관광회사에서 민박집운영을 책임질 경우 마을에서 고객량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기에 너무 잘된 일이라고 한다.

흑룡강성 요하현 소남하촌 금부락민속풍경구.

  얼마전 흑룡강성 농업과학원이 소남하촌과 고추재배시범기지 계약을 체결하였다. 고추 심층가공을 통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증가하게 된다. 랭국정 씨에 따르면 새롭게 연구개발한 고추종자는 일년에 세 벌 따기가 가능해졌으며 고추장공장의 생산량도 올해는 100만 병을 초과할 전망이다.

  새롭게 건설한 술공장도 곧 생산에 투입된다. 촌민 주연량(周延亮)은 랭국정 대장의 제안으로 작은 양주장을 세웠으며 년간 20톤 생산하는 소주는 모두 주변으로 판매되고 있다. 투자유치를 통해 광동의 한 기업이 양주장에 포장설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있으며 국내시장 개척을 책임지기로 했다.

  산업은 일어났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않고 특히 시장검증이 부족하며 촌민들의 사상관념 변화가 느리고 농촌의 인재 흡인력이 박약한 등 일련의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밤은 깊어가고 별빛 쏟아지는 농촌마을의 밤이 유난히 고요하다. 랭국정 대장이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을 하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올려다보니 이미 12시가 넘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향촌진흥, 우리는 아직 더 힘을 내야한다” 랭국정 대장이 적어내려갔다.

  /동북망 조선어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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