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보도 '홍색흔적 룡강에'는 흑토지에서 배출한 영웅들이 목숨걸고 영용하게 분투한 이야기를 전한다.
할빈시 쌍성구 제4야전군기념관에는 우의 사진과 같은 참군등록표가 있는데 이는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의 장대한 려정을 견증하고 있다. 이 대오의 경우 11만명이 동북으로 들어왔다가 100만명으로 증가하여 다시 동북에서 나가는데 고작 3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장국부 흑룡강성 제4야전연구회 회장은 "료심전역의 총소리가 이곳에서 울리고 료심전역의 명령이 이곳에서 내려졌다."고 말했다.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의 전신은 동북민주련군이다. 1946년, 지휘부가 쌍성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평범한 사합원에서 전선 지휘부는 작전명령을 내렸다. 영용한 제4야전군은 산을 밀고 바다를 뒤집을 기세로 국민당 반동세력을 향해 호된 공격을 가했다. 50일을 거쳐 47만명에 달하는 적을 소멸한 료심전역은 전 동북을 해방하고 나아가 전국의 승리를 쟁취하는데 불멸의 기여를 했다.
오선문 흑룡강성제4야전연구회 회원은 "이 부대가 북에서 남으로 가면서 전투를 펼쳐 중국의 절반을 해방함으로써 중국인민의 해방사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말했다.
파란만장한 전쟁년대에 룡강이라는 흑토지에서 종횡무진한 백만대군이 배출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하늘에서의 '정예부대'를 육성해내기도 했다.
밀산시동북옛항공학교기념관에는 그 당시 기상학급 학원의 졸업증서가 전시되여 있다. 항일전쟁이 갓 승리적으로 끝날을 때 당중앙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다년간 점령당한 동북지역에 공항, 공장과 비행기가 일부 남겨질 것이라 에측하고는 이러한 조건을 리용하여 동북에서 항공학교를 창설하기로 즉시 결정했다.
1946년, 우리군 첫 항공학교인 동북민주련군항공학교가 길림 통화에서 설립되였으며 그 후, 당시의 동안(현재의 밀산시)으로 자리를 옮겼다. 옛 항공학교는 새중국을 위해 수많은 조종사를 육성해냈다. 왕해, 장적혜 등 유명한 전투영웅들이 바로 이곳에서 나라를 위해 영용하게 작전을 펼쳤다. 련일 이어지는 포화속에서 동북옛항공학교는 전전하며 학교를 운영했는데 학교주소를 선후로 4번이나 바꿨다. 고난과 좌절을 겪으면서 인민군을 위해 첫부류의 항공인재를 육성해냈을 뿐만 아니라 인민공군의 탄생에 중요한 기반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현재, 동북옛항공학교기념관은 이미 국가 첫부류 국방교육시범기지로 확정되였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