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색 토지 탕원에 전에 오동하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항련 로전사 리민이 바로 이곳에서 태여났다.
탕원박물관에서 해설원이 항일력사를 해설하고 있다.
항련 로전사 리민의 회억록 '폭풍의 행군-동북항일련군전사'에서 항련 세자매의 사진이 류달리 눈에 안겨온다. 그 사진은 바로 리민, 리재덕, 리계란 항련 세자매가 전에 전쟁을 치렀던 곳을 다시 방문해 찍은 것이다. 리민이 생전에 기자에게 한 얘기에 따르면, 항련 세자매는 친밀한 전우였고 결혼도 전쟁 속에서 하게 되였다. 리재덕과 리계란 두쌍의 부부가같은 날 결혼하게 된 것도 배성춘언니가 제기한 것이다.
2015년 기자의 취재를 받은 리민은 그 당시의 기억을 되새겼다. 1937년 6월, 그녀가 전사들을 위해 들나물을 캐다가 리계란과 오옥광이 련인사이임을 알게 되였다고 한다. 그녀가 주머니를 들고 강변을 따라 들나물을 캐면서 내려가다가 리계란과 오옥광이 한 나무 아래에서 소곤거리는 모습을 목격했고 이를 배성춘언니에게 보고했다. 배성춘언니는 그녀의 말을 듣고 특히나 기뻐했다. "좋은 일이네. 정말 경사로구나." 배성춘언니는 풍중운을 찾아 리재덕과 우보합, 리계란과 오옥광 두쌍 련인의 합동결혼식을 제안했다.
시민들이 전시관을 참관하고 있다.
후날 리계란이 한차례 전투에서 불행하게 체포되였다가 석방되였다. 오옥광은 한 전투에서 영광스럽게 희생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 해 오옥광은 고작 29살이였다. 2008년 1월, 리계란이 세상을 떠났다. 오옥광과 합장하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념원이였다. 오옥광이 전쟁터에서 희생된터라 유골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리계란의 딸 류령은 오옥광이 전에 전투를 치렀던 오동하반에서 흑토 한줌을 가져다 오옥광의 유골함에 있어 합장식을 치렀다.
탕원회의를 위해 경위임무를 수행한 황피구밀영.
1924년 오동하반에서 태여난 항련 로전사 리민도 2018년 7월 21일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항련 로전사 리민의 기억 속에는 그녀를 군에 보낸 리승 할아버지, 그녀가 존경하는 배성춘언니, 희생된 친지와 전우가 있다. 이처럼 그녀의 기억 속에 그 년대 전우들의 폭풍 행군 모습이 빼곡이 간직되여 있는 것은 결코 그 세월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