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대표 전통복장인 치파오는 민족특색을 띠고 있다. 북방 날씨가 춥기 때문에 만족 사람들은 두루마기(长袍)를 즐겨 입었다. 이후 만족이 팔기제도를 세워 만족 사람들이 입었던 장포를 ‘치파오’라고 불르기 시작했다. 만족의 치파오는 남녀, 계층, 일상과 례절 등에 구분이 있다.
초기에 만족 장포는 남녀 구분이 없이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발목까지 길었고 소매가 좁았으며 자락이 벌어진 채 허리띠를 매였다. 이후 치파오는 천으로 만들어졌으며 남녀간에 구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남성의 치파오는 라운드넥(圆领)에서 스탠딩 칼라(立领)로 바뀌었고 소매도 전수(箭袖, 활 쏘는데 편리하도록 우에는 손등을 덮을 수 있게 길고 아래는 비교적 짧은 옷소매)로 바뀌었다. 전수는 최초로 사냥할 때 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후에 장식품으로 변해버렸다.
만족 치파오 전통제작 제4대 전승자 가숙연(贾淑娟)이 만족 치파오의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녀성의 치파오는 품이 크고 헐렁한 것으로부터 좁고 몸에 딱 맞는 형태로 변해지면서 녀성미를 강조했다. 청나라가 입관(入关)한 후 복장 제도를 출범시켰고 그에 따라 치파오에 계층의 구분도 생겼다. 귀족과 궁중의 치파오는 온화하고 점잖으며 고급진 반면에 서민의 치파오는 품질이 많이 떨어진 편이였다.
치파오 전승자--가숙연(贾淑娟)
귀족의 치파오는 일상적인 것과 례절적인 것으로 나누어 있었다. 성대한 자리에서는 조복(朝服), 길복(吉服), 행복(行服) 등을 포함하고 번잡하면서 화려한 장식을 가진 례절 치파오를 입어야 했다. 평상시에 테를 두르고 간단한 무늬만 장식된 일상 치파오를 입었다. 민국 시기에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은 치파오는 크고 헐렁했던 형태에서 간렬하고 슬림핏하게 변해졌으며 녀성의 전유물로 되였다.
만족 전통복장.
만족 치파오는 중화민족 복장의 전형적인 대표로서 력사, 문화 예술 가치를 지니고 있다.
치파오 전승자-가숙연(贾淑娟).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