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할빈 시내에 나갔다가 배운말 한마디 번져볼게. 어떤 사람은 돈을 더럽게 벌어 깨끗하게 쓰지만 어떤 사람은 돈을 깨끗하게 벌어서 더럽게 쓴다.”
우와-
“다음은 존경하는 김만융교수 차례입니다.”
“눈을 뜨고 육안으로 보는 세상보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훨씬 더 멀리 보이는구려.”
우와-
“다음은 우리 반장 백일호!”
“인간의 삶을 너무 정식으로 대할 필요가 없네. 인간의 삶이 너무 버겁기 때문에 그러하네.”
우와-
“저건 철학이야 심리학이야?”
“글쎄, 두루 다 들어있는것 같기도 하구.”
“자, 그럼 다음은 뚝배기!”
“이 세상은 밖에서 들여다보는 구경거리가 아니야. 나원, 팔을 걷고 덤벼보는 씨름판이야.”
우와-
“다음은 맥주병밑굽!”
“루루천년 고금중외로 부자들은 혼자서 다 가지려고 하고 거지들은 나눠서 먹자고 하고, 그래서 피터지게 싸우고 또 싸워오는 세상이야.”
우와-
“다음은 고미란!”
“새로와서 성숙되고 새롭지 않아 늙어간다. 호-”
우와-
“다음은 주영주!”
“꿈에서 깨여나니 또 꿈, 알라뷰!”
우와-
“다음은 구금자!”
“꽁꽁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인생은 숨박곡질 노는 것 같아 재밌어요!”
우와-
“다음은 김순애!”
“세상은 요지경! 잘난~ 사람은~잘난 멋에 살고 못난~사람은~못난 멋에 산다~”
김순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표현한다. 그래서 또 우와- 하고 박수가 터지고 환성이 터진다. 그 뒤에도 전수향이, 장수산이 하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
과연 하는 사람의 말에 따라 그 사람의 속마음을 한번쯤 짚어보게 되고 그래서 품위 있으면서도 사색을 던져주는 지식인들의 유희가 아닐수 없다.
“그대들! 우리 모두 어제를 딛고 서서 래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즐겁게 삽시다! 이러면 마지막으로 저도 한마디 한걸로 됩니다. 자, 래일의 만남을 위하여 건배!”
강현수의 제의로 서로 서로 잔과 잔을 부딪친다. 곁에 앉은 동창들끼리는 전화통화도 자주하고 메일도 주고받자며 소곤소곤 약속도 한다.
이럴 때 주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주임이 청도로 가는 1시 30분 비행기표를 이미 사왔기에 태양도에서 할빈시내를 거쳐 공항까지 나가려면 이제는 서둘러 떠나야 했던것이다.
“알라뷰! 모두들 시간나면 저희 청도로 놀러오세요. 꼭!.. 제발 꼭!...”
주영주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우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자 녀성들이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주영주를 마구 끌어안는다. 눈물이 울컥울컥 쏟아지고 어린애들마냥 엉엉 울음소리가 터진다.
아쉽고 섭섭한 리별의 순간이란 언제나 이렇게 애끓는 설음을 동반하는 모양이다. 기실은 남자들이라고 해서 다를바 없지만 부끄럽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며 솟구치는 설음을 씹어삼킬뿐이다. 그렇게 호텔 정문밖까지 동창들이 우르르 따라나서며 먼저 떠나는 주영주를 바래준다. 그런데 주영주가 승용차에 오르려고 할 때 어느 사이 곁에 와 다가선 대머리가 주영주의 손을 꼭 잡는다.
“돌아가면 이재모 그분한테 고맙다는 인사말 전해주오!”
“이재모? 저는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요?”
주영주는 흠칫 놀란다.
“모르면 도마도란 사람이 그 분을 잘알거요. 도마도에게 대머리가 고맙다고 하면 다 알고 잘 전해줄거요!”
다른 사람들은 대머리가 누구한테 무슨 인사를 전해주라는지 잘 못 알아듣고 있지만 손과 손을 꼭 쥔 주영주만은 그 뜻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는 알릴듯 말듯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이더니 부끄러운듯 인츰 차에 오른다. 차창밖으로 팔을 저으며 ‘알라뷰’를 길게 뽑는 주영주를 싣고 승용차가 떠났다.
동창들은 다시 귀빈식당으로 돌아왔다. ‘비아바이’ 박재동의 제의로 술은 한잔씩 더 마시고 모두들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떠날차비로 3층에 있는 호텔방에 올라가 짐들을 가지고 내려왔다.
왕주임이 미리 배치해놓은 뻐스 한대와 승용차 두대가 정문밖에 대기하고 있었다. 동창들이 하나 둘 방금 주영주가 떠날 때처럼 서로 뜨겁게 포옹을 한다. 그중에서도 김순애는 누구에게나 마구 안기며 서럽게 운다. 그 바람에 모두들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미란이는 장철준의 손을 꼭쥐고 한참이나 놓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곧바로 시내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아들을 데리고 백일호가 련줄을 달아준 북방사범대학 심리전문병원으로 가기로 되여있었다. 동창들이 뻐스에 앉아 별무리 호텔을 떠났다. 김성만이도 자기가 몰고온 자가용차를 몰고 떠났다.
승용차한대엔 강현수가 앞좌석에 앉고 김만융교수와 최윤희가 뒤좌석에 앉았다. 최윤희네는 박화를 만나러 북방사범대학으로 가는 길이였다.
백일호와 구금자는 나란히 서서 손을 저으며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그런 뒤에야 이들 부부는 천천히 백일호의 승용차에 올랐다.
“일본 교수방문단을 접대하는 연회는 저녁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네.”
“그럼 아직 시간 많네요. 우리도 청아와 걔가 데리고 온 처녀애를 보러 곧추 집으로 가야지요?”
“그러지!”
마지막으로 백일호와 구금자를 태운 승용차도 태양도 별무리호텔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제 집에 들어서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감감 모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