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태양도의 풍경
'태양도에서'
자글자글 끓던 해가 정수리에서 서쪽으로 한발쯤 멀어져 가자 동창들은 ‘앉으나 서나’ 강현수를 앞세우고 태양도 풍경구 유람을 나섰다. 남자들은 채양이 긴 흰 태양모를 눌러쓰고 녀성들은 하나 같이 머리우로 알락달락한 양산을 받쳐들었다.
태양도 풍경구는 동창들이 투숙한 별무리호텔에서 남쪽으로 거퍼 2리 길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금 이 태양도란 보배섬은 할빈의 엄청난 무형자산으로 되고있어. 태양도를 제대로 알려면 할빈의 력사로부터 문화적 깊이에까지 파고들어야 하는거야, 저 앞에 풍경구에는 지금 한어,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 일본어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한 70~80명 되는데 걔들이 내 보다 몰라...”
강현수는 호텔에서 태양도 풍경구로 가는 수림속으로 들어서자부터 신이 나서 동창들에게 태양도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할빈의 상징물인 송화강홍수방지기념탑에서 유유히 흐르는 송화강을 사이 두고 북으로 바라보면 검푸른 숲이 우거진 큰 섬 하나가 한눈에 안겨온다. 여기가 바로 중국에 있는 66개 5A 급 풍경구중의 하나로 알려진 태양도이다.
면적이 8.8만평방킬로미터 되는 태양도 풍경구는 하천간석지, 습지초원형 지리구조로 되여있다. 중국의 도시구역치고는 보존이 아주 잘된 습지이다. 근 20년의 발전사를 가지고 있는 겨울철 눈조각 예술과 100년 력사의 러시아건축예술을 그대로 보존한 섬안의 소도시는 풍경구 특유의 문화자원이다.
력사기재에 따르면 태양도는 19세기 중동철도의 건설과 더불어 개발 리용 되였는데 당시로서는 유럽교민들의 피서휴가승지였다. 그러므로 태양도와 할빈 도시의 력사는 거의 걸음을 같이 하고 있었다. 지난 세기 80년대 중국의 저명한 가수 정서란이 부른 ‘태양도에서’란 아름다운 노래의 선률을 타고 태양도 풍경구는 점차 중국의 너른 땅에 알려지게 되였고 할빈시의 대외교류의 명함장으로, 국내외 손님들이 즐겨 찾는 유람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해전까지만 해도 태양도의 발전폭은 거부기 걸음처럼 드디였다. 특히 지난 세기말 풍경구의 환경이 심히 파괴되면서 그제날 사람들의 마음속의 태양도 형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한때는 태양도에 서서 태양도를 찾을 정도로 궁색한 처지에 이르렀고 ‘태양도에 와 보지 않으면 유감이요. 태양도에 오고 보면 더욱 유감이다.’는 말까지 나돌게 되였었다.
그러다가 2003년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바싹 차린 할빈시에서는 ‘태양도 관광 브랜드를 재정립하여 생태도시를 부각하자’는 목표를 내걸고 자금 5.5억원을 투자하여 전면적으로 태양도 풍경구에 대한 정돈 개조공정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이 섬안에는 원래 근 5백호에 달하는 농민들이 살고있었는데 우선 그 농민들과 개체공상호를 철거시키고 낡은 건축물 13.2만평방미터를 허문 뒤 련속 2년간 하천망 수계개조공정을 실시하여 태양도 핵심풍경구가 사면으로 물에 감싸게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선후로 화훼원, 태양문, 욕일대, 태양폭, 해빛, 모래불, 욕장, 등 70여개 경관을 건설하였고 다람쥐섬, 록원, 고니호수, 눈토끼원, 우둔한 곰의 락원 등 특색경구와 생태공원을 일떠세웠다.
그래서 몇해전에만 해도 태양도 언제밑의 모래불에서 소료를 한잎 깔고 친구, 동료, 가족끼리 둘러앉아 소시지에 맥주를 마시던 일들은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여버렸다. 지금 태양도에는 다년간 보이지 않던 야생식물인 갈대, 나아가서는 약용가치가 있는 황기, 시호 등이 규모를 형성하였고 식물품종도 100여가지에 달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태양도 언제밖의 습지를 산책하노라면 느닷없이 울어대는 들오리, 원앙새 등 10여종의 야생조류를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이에 따라 독특한 태양도 문화도 형성되였다. 눈조각예술 발상지로 소문난 겨울철 태양도 눈꽃축제는 이미 세계화로 거듭났는가 하면 러시아빙상발레공연, 한국, 일본민족가무공연, 펭긴새순회공연, 룡강풍치공연 등 계렬화 된 빙설문화관광제품을 개발하였고 세계 최장 눈조각, 최대 빙반점, 첫 얼음 려인숙, 최대의 중국결, 최소 유인소렬차 등 작품은 세계기네스북을 충격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국내 첫 빙설문화, 빙설력사, 빙설예술을 일식화한 할빈 빙설문화전람관, 빙설화파 창시자인 우지학의 이름으로 명명한 태양도 우지학 미술관, 태양도 눈조각예술원도 줄줄이 들어서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