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한낮의 폭양
보배찾기
동창들이 왁작 떠들며 아침 식사를 하는 사이 뽀얀 안개는 불덩이 같은 해를 토하고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러자 8월의 화창한 하늘에서는 몸체가 생긴 그대로 드러난 이 땅에 천만의 황금구슬을 휘뿌리고 있다. 암흑을 밝히고 만물을 키우는 빛과 열, 그야말로 은혜로운 태양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동창들이 저마다 머리우에 채양이 긴 태양모를 하나씩 눌러쓰며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앉으나 서나’ 강현수를 앞세우고 호텔 정원에서 동쪽에 있는 느티나무 숲쪽으로 무리 지어 몰려가고 있다. ‘보배’찾으러 가는 길이다.
“사랑하는 그대들, 자, 그럼 지금부터는 보배찾기가 시작됩니다. 보배는 성만이 하고 송옥이가 아침 식사전에 숨겨놓았는데 이 느티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여기 잔디 길에서 남으로는 저기 큰 소나무가 있는데 까지고, 북으로는 저기 보이는 바위돌이 있는데까지, 동으로는 이제 숲으로 들어가면 개울물이 흐르는 도랑 하나가 있다는데 거기까지, 이 안에 숨겨놓았다고 합니다. 자, 그럼 시-작!”
숲으로 들어가는 잔디밭에서 사진기를 멘 강현수가 ‘보배’를 숨긴 범위를 가르쳐주느라고 몽통한 팔을 깜찍하게 쳐들고 있더니 그 팔을 홱 내린다.
그러자 뚝배기와 주영주는 마치도 어린애들처럼 기다렸다는듯이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숲속으로 먼저 달려들어간다. 그뒤를 따라 동창들이 우르르 들어가고 제일 마지막에 점잖은 김만융교수와 백일호가 강현수와 함께 들어간다.
“이런 놀음 놀아본지가 나는 오십년도 넘는것 같네.”
김만융교수가 감회가 깊어 보배를 찾느라고 정신없이 헤매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그렇게 오래 되십니까?”
백일호와 강현수는 ‘오십년도 넘었다’는 교수님의 말에 저으기 놀라며 거의 동시에 입을 연다.
“그런데 보배는 뭘로 만든건가?”
“엽서장만한 흰 종이를 겹친겁니다. 교수님도 어서 찾으십시오. 돌 밑에나 돌 짬에도 있을수 있고 풀숲에나 나무잎, 나무가지 사이에도 숨겼을수 있습니다. 자, 그대들! 좋은 보배를 많이 찾는 사람은 오늘 운이 좋은 사람이고 또 많이 찾을수록 더 값진 상품이 차례집니다.”
강현수는 두손을 입에 대고 손고깔을 만들며 바툼한 목을 빼들고 소리를 친다.
청신한 숲속에서 풍겨나오는 아침대기는 끝없이 맑고 시원했다. 발목을 감싸는 풀잎과 옷깃을 어루만지는 나무잎들에는 아직도 맑은 이슬이 대롱대롱 방울져 있었다.
“꽁꽁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누구의 입에선가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숨킬내기를 놀 때 불렀던 말들이 나온다.
“나이는 18세, 이름은 순이...”
또 누구의 입에선가는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사랑하는 처녀를 애타게 찾는다는 한국노래도 흘러나온다.
모두들 그렇게 동심이 부풀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한 가슴 가득히 해발을 안은듯한 환희를 느끼고 있다.
“야, 내 보배 하나 찾았다!”
“조기, 나무 가지 사이에 또 하나 보인다!”
이제는 모두 쉰 고개란 언덕을 톺아오르는 나이 지긋한 동창들이건만 마치도 어린애들처럼 손벽을 치며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자네 여기를 좀 보라구. 나원, 이 주위의 풀은 왜 이렇게 납작하게 된거냐?”
“간밤에 산에서 메돼지 두마리 내려와 여기서 잔치하고 갔겠다.”
뚝배기가 보배를 찾다말고 무릎까지 오는 숲속의 풀밭 한 가운데가 무엇에 짓뭉개져 싱싱하던 풀잎들이 땅에 납작하게 들어붙은것을 보고 이상해서 뒤에 따라오는 맥주병밑굽에게 손으로 가리켜 보인다.
그 곳은 어제 밤에 대머리와 주영주가 남몰래 놀던 자리였다. 김성만이가 안송옥이와 같이 상품사러 가기 다행이지 그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목구멍이 간지러워 더는 참지 못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곁에 있는 누구에겐가 간밤에 본 비밀을 알려주었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그 말이 인츰 한입 두입 건너 잠간 사이에 동창들에게 쫙 퍼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나원, 우리 호텔에 있는 사람들중에 어느 남자와 녀자가 눈이 맞아 몰래 여기 와서 딩군것 같네.”
“그렇다면 우리 동창들속에 눈이 맞아 외도한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지. 안 그래?”
뚝배기와 맥주병밑굽이 이렇게 떠들고 있는데 어느 사이 씽- 하고 뚝배기 앞으로 한발 나선 주영주가 허리를 굽히며 무엇인가 쥐여서는 제꺽 손목에 걸고있던 핸드빽안에 밀어 넣는다.
“나원, 그게 뭔데?...”
“뭐이겠어요, 보배지! 두사람이 네눈을 펀히 뜨고서도 풀속에 보배가 있는것도 못봤어요?”
“그거 보배 같지 않은데?...”
“호호, 아니긴 왜 아니라고 그래요, 여직 두 사람은 보배를 하나도 못 찾았나 보지요. 하나 줄가요?”
주영주는 핸드빽안에서 흰 종이로 돌돌 겹친 보배를 하나 꺼내 뚝배기 코앞으로 들이민다. 하지만 뚝배기는 자존심이 꺾기는지 받아 가지려 하지 않고 등을 돌리며 앞으로 징징 걸어간다. 그래서 그 보배를 맥주병밑굽에게 주고 말았다.
주영주는 숲속에 들어서면서부터 간밤에 남몰래 대머리와 그짓을 하던 자리가 어데 일가고 눈주어 살펴보고 있던 참이였다. 그런데 뚝배기가 하는 소리에 바짝 긴장되여 총알처럼 그 쪽으로 쫓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가 청도에서 타고 온 비행기표가 호주머니에서 빠져나와 그 풀밭속에 떨어져 있었던것이다.
여기 저기에서 보배를 찾는 동창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로 고요하던 숲속이 발끈 뒤집혔다. 뭇새들도 놀라서 푸드득 날아났다는 희구하고 별일 같아 다시 구경하러 날아와 살금살금 나무가지에 앉고 그랬다는 또 놀라서 곤두박질치며 달아난다.
“보배를 찾으려면 허리를 굽혔다 머리를 쳐들었다 하며 아래우를 꼼꼼하게 다 살펴봐야 하는거야. 너희들 눈에는 조기 나무가지 사이에 끼워있는 보배가 안보이냐?”
대머리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보배를 찾고 있는 구금자와 김순애에게 하는 소리다.
“저 우에 보지! 조 밑에도 보지!”
“어디에? 어디에?”
대머리는 입만 열면 무슨 말이나 육담으로 변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김순애는 고개를 쳐들고 대머리가 가리키는 대로 앞에 있는 나무만 살펴보느라고 정신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