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뢰옵니다. 이달 9일(양력 10월 22일) 오후 8시 당지 도착, 김씨 어른 성백씨댁에 류숙하고 있으며 '원동보'에서 보게 되는 그 이등건 이달 12일 관성자 출발, 러시아 철도총국 특송의 특별렬차에 탑승, 그날 오후 11시 할빈에 도착함에 있어 동생들은 조도선에게 동생의 가솔출영을 의하여 관성자로 간다고 하고 함께 관성자로 떠납니다. 몇십리 앞의 모 정거장에서 이것을 기다려 같은 곳에서 드디여 일을 결행할 계획입니다. 그어간 앞서 말한바를 양지하기를 바라며 일의 성패는 하늘에 있고 요행이 동포들의 선도(善道)를 기대 도와줄것을 복망하나이다. 또 당지 김성백씨로부터 돈 50원을 채용하였으니 지급, 갚아주기를 천만번 앙망.
대한독립 만세! 우덕순 안응칠 블라디보스토크 대동공보사 리강 앞
오늘 아침 8시 출발 남행함
추이(追而) 포브라니치나야 로부터 류동하와 같이 현지 도착, 다음 일은 본사에 통지할것임.
안중근은 편지 쓰기를 마치고 우덕순 련명으로 도장까지 찍었다. 시를 읊고 편지를 써놓은 다음 김성백한테 돈을 빌리러 갔던 류동하가 돌아왔다.그는 김성백을 만나지 못해 돈을 빌릴수 없었노라고 했다. 이리하여 리강 앞으로 쓴 편지는 결국 부치지 못한채 검사관에게 압수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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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채가구로 가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안중근과 우덕순은 같이 김성백 집 가까이에 있는 할빈공원에 들어가 산보하면서 거사계획을 세밀히 검토해보았다.
이토히로부미는 관성자에서 기차를 타고 할빈으로 온다. 관성자역은 일본사람의 통제하에 있고 할빈역은 러시아 사람의 통제하에 있다. 때문에 할빈역의 경계가 관성자역보다 더 심할것이니 관성자에 가서 거사하는것이 리상적이였다고 판단, 두사람은 관성자로 가기로 했다.
관성자까지 가는데는 려비가 부족하였다. 이때 안중근의 손에는 30원밖에 없었다. 이 돈으로는 관성자까지 갈수 없었다. 할빈에서 가장 가까운 교행역은 채가구(蔡家沟)역이였다. 하여 그들은 다시 토론하여 채가구역에서 거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안중근은 류동하더러 할빈에 남아 이토가 도착하는 정확한 날자와 시간을 수소문하여 채가구에 전보를 치도록 약속해 놓았다. 그리고 러시아부인을 데리고 살며 세탁소를 꾸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동지 조도선을 찾았다. 조선에서 오는 가족을 맞으러 남쪽으로 가려 하는데 러시아말이 통하지 않아 불편하니 한번 동행해달라 요구했더니 조도선은 선뜻 대답했다.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세사람은 채가구 다음역엔 삼차하(三岔河)까지 차표 석장을 끊어 9시발 관성자행 렬차를 타고 채가구로 갔다. 기차는 200리 남짓한 거리를 3시간이나 달려 채가구에 도착했다. 채가구는 조그마한 역이라 려관도 없었다. 역사의 웃층은 대합실과 사무실이고 반 지하인 아래층에는 세미고프라는 러시아 사람이 경영하는 소매점이 있었다. 방이 둘인데 바깥쪽은 점포이고 안쪽은 주인가족이 사용하는 방이였다. 안중근 일행은 이 소매점에서 식사도 하고 주인 가족방에서 같이 숙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