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일본령사관에 인도
(흑룡강신문=하얼빈)=러시아의 헌병들은 안중근을 체포한후 정거장 헌병분파소로 붙잡아가서 전신을 수색하였다. 얼마후 러시아 검찰관이 한국인 통역과 같이 와서 안중근을 심문하였다.성명과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살며 어디로부터 와서 무슨 까닭으로 이토를 해쳤는가를 물었다. 안중근은 대강 설명해 주었다. 그때 사진을 찍는자가 두서넛이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일본의 요구대로 안중근을 일본측에 인도시키기로 결정지었다. 그날 저녁 9시경 사람을 파견하여 안중근을 할빈주재 일본총령사관으로 보냈다. 안중근은 총령사관 지하실감옥(지금의 남강화원소학교 자리)에 수감되였다. 10월 30일 총령사관에서 일본검찰관 미조부치타가오, 서기관 기시다 아이분이 안중근에 대한 제1차 취조를 진행하였다. 검찰관이 무엇때문에 이토히로부미를 적대시 하는가의 물음에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의 죄상을 15가지로 렬거하였다.
1. 10여년 전에 이토가 지휘하여 한국 왕비를 암살하였다.
2. 5년 전에 이토는 한국에 매우 불리한 5개 조목의 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3. 3년전에 이토가 체결한 12개 조목의 조약은 한국군대에 대단한 불리익을 초래했다.
4. 이토는 한국 황제를 강제로 페위시켰다.
5. 이토는 한국군대를 해산하였다.
6. 조약체결에 군민이 분노하고 의병이 일어나자 이토는 많은 량민을 학살하였다.
7.한국의 정치와 그외의 권리를 박탈하였다.
8. 학교에서 사용하는 좋은 교과서를 모두 불에 태웠다.
9. 신문을 구독하지 못하게 하였다.
10. 품질이 나쁜 한국인 관리에게 돈을 주어 국민에게 통보도 없이 제일은행권을 발행했다.
11.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국채 2,300엔을 만들고 관리가 그것을 제멋대로 분배하여 량민의 토지를 빼앗았다.
12. 이토는 동양의 평화를 깨뜨렸다. 러일전쟁 당시부터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라고 말하면서도 한국황제를 페위하는 등 당초의선언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였으므로 한국민 2천만은 이에 분개하고 있다.
13. 이토는 한국보호라는 이름으로 한국정부의 일부와 결탁하여 한국에 불리한 시책을 펼치고 있다.
14. 42년전 현 일본황제의 부군에 해당하는 사람을 이토가 살해하였다. 그 사람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15. 이토는 국민이 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황제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대해 "한국은 평온하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검찰관은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한 리유를 다 듣고나서 "이제 진술한 말을 들으니 참으로 동양의 의사라 하겠소. 당신은 의사이니까 반드시 사형을 받아야 된다는 법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오"하자 안중근은 초연한 태도로 "내가 죽고 사는것은 론할것 없이 내 뜻이나 속히 일본천황페하에게 알려주시오. 그리하여 하루라도 빨리 이토의 옳지 못한 정략을 고쳐서 동양의 위급한 대세를 바로잡을수 있게 될것을 간절히 바랄뿐이요."라고 말하였다.
안중근이 할빈역에서 체포된 당날 우덕순과 조도선이 차가구 역내 러시아인 차식점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오전 11시쯤 되여 러시아 헌병과 경찰이 와서 수색하였다. 러시아 헌병 2명이 우덕순의 증건을 보고 몸을 수색할 때 권총이 발각되여 즉시로 체포되였다. 조도선이 러시아말로 무엇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느냐 물었더니 러시아 헌병은 "한 조선사람이 할빈에서 큰 일본인 관리를 죽였기에 조선사람은 모두 잡아 심사한다"고 하면서 그 두 사람을 심사도 하지 않고 12시 기차에 할빈으로 압송하였다.
조선사람이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격살했다는 소문은 재빨리 온 시내에 퍼졌다. 이날 할빈 시내에서도 유동하, 김려수, 정대호, 기성옥, 탁공규, 김형재, 김성엽, 김택신, 홍시준, 장수명,방사첨, 리진옥, 정세우 등 13명이 체포되였다. 그들은 모두 사건에 참여한 혐의범으로 심사를 받았다.
려순 감옥으로 이송
1909년 11월 1일,할빈주재 일본총령사관은 12명의 헌병과 일부 경찰을 풀어 안중근을 려순 감옥으로 이송하였다. 이날 동시에 려순으로 이송한 사람으로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정대호, 김성옥, 김형재, 탁공규, 김려수 등 8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결박되여 기차에 올랐다.
이날 장춘에 이르러 헌병대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다시 기차를 타고 어떤 정거장에 대었는데. 일본순사 하나가 올라와서 갑자기 안중근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 갈기였다. 안중근은 성이 나서 "우리가 국가에 생명을 바침은 지사의 본분이거늘 이처럼 학대를 가함은 부당한 일이다. 음식물 등도 이처럼 조악한 것을 제공하면 먹지 못할 바니 우리를 대신으로 대우하라"고 욕을 했다. 곁에 있던 헌병장교가 그 순사를 끌어 기차에서 내려보낸 뒤에 안중근을 보고 "일본이나 한국에도 이같이 좋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성내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그 이튿날 기차는 려순에 도착하여 안중근을 관동도독부 감옥에 투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