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8.12.17
길림성 룡정시 삼합진 청수촌 제3촌민소조에 살고있는 나는 지난 여름 강역에 있는 친척집 회갑잔치에 갔다가 높은 퇴마루에서 허망 떨어지는바람에 척추가 골절되였다. 내가 몹시 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리알을 들고온다 닭알을 가져온다 사탕가루와 우유가루를 가져온다 차입쌀을 가져온다 하면서 마을사람들은 너도나도 병문안을 왔다.
앞집에 사는 순자녀성은 내가 좋아하는 물만두를, 김씨녀성은 콩나물을 들고 찾아왔다. 김씨아줌마는 자주 우리 집에 찾아와 설거지도 해주고 집안도 깨끗이 거둬주었다.그리고 뒤집에 사는 김씨녀성는 장을 담글 메주를 깨서 해빛에 말리워주기까지 하였다. 내가 고독해 한다고 마을사람들은 엇갈아 찾아와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근차근 말해주어 나의 마음은 붕-뜨는 기분이였다. 비록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나갔지만 나는 마을사람들의 사랑에 고독을 모르고 산다.
나는 보름이 됐는데 일어나려고 모지름을 써도 허리맥이 없어 앉지도 못하고 온몸이 땀자루가 되였다. 순간 나는 무서운 생각이 머리를 쳤다. (내가 영영 일어날수 없지 않을가.그렇다면 죽는것 보다 못한데...)
나는 남편 보고 큰병원에가 사진을 찍어보자고 졸랐다. 남편은 차를 타면 울려서 상처가 더 심해질수 있다면서 3개월간 반듯하게 누워있는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타일렀다.마을의 녀성들도 너무 성급하지 말라고 하면서 꼭 일어날것이라고 신심을 북돋아주었다.
한달이 지나자 나는 겨우 문턱을 짚고 일어나서 벽을 짚으며 몇걸음씩 옮겨디뎠다. 마을녀성들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그때로부터 최씨녀성을 비롯한 몇몇 아줌마들은 내가 걷는 련습을 할 때마다 나의 두 손을 꼭 쥐고 부축하였다. 마을사람들의 풋풋한 인정은 나에게 삶의 의력을 안겨주었다.
석달만에 나는 겨우 밥을 할수 있었다.운명의 조화라고 할가? 인생의 황혼길에 들어선 나에게 재난은 그치지 않았다. 지난 가을 나는 또 아래집개에게 물려 왼팔목이 끊어져 고생했고 넘어졌는데 이전에 상한 척추가 또 상하여 고생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마을사람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찾아와 위안해주면서 힘내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나의 아들딸이 대도시에서 사업하기에 조만간에 자식들을 따라 갈거라고 한다.하지만 나는 도시에서 느낄수 없는 우리 동네의 풋풋한 인정으로 하여 이 마을을 떠나고싶지 않다.
/최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