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어느날 평양 대동문 앞에서 이북 관계자와 대화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으나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방문이 가능했었다. 필자가 "평양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자 이 관계자는 씁쓸하게 말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평양 시내가 초토화되어 대동문밖에 남지 않아 계획도시 재건설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모든 전쟁에서 같은 방식의 공격을 했다. 막강한 공군력으로 상대국 군사시설과 도시를 초토화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에서도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랬다. 최근 이란 전쟁 역시 같은 양상이다. 대국의 체면도 국제법과 국제 규범도 아랑곳 없다. 말 그대로 서부의 무법자이자 불한당의 모습이다.협상 중 상대국을 공격하는 비신사적인 태도는 물론이고 국제법상 보호지역인 학교를 폭격해 어린이 170여명을 참살했다.
그러나 이북은 평양을 재건했다. 베트남도 호치민과 하노이를 재건해 현대 도시를 만들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막강한 공군력으로 이란의 도시들을 파괴해도 그들은 다시 도시를 건설하고 일어설 것이다. 신을 믿고 살아가는 이란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 공격에 굴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큰 소리 치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호위를 위해 한국과 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일본 등 동맹국들에 군함 파견을 요구했다. 전쟁 상황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동맹에게 손을 벌리는 셈이다. 제 멋대로 일을 저질러 놓고 동맹국들에게 뒷 처리를 맡기는 행태에 동맹국 지도자들도 진저리를 친다. 참으로 국제사회의 '빌런'에 다름 아니다.
한국도 청구서를 받았다. 호르무즈 해협 연합함대 구상에 참여하라는 통보를 받은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몇가지 측면에서 군함 파견은 거부해야 한다.
첫째, 한국이 군함을 파견한다면 이는 이란과 교전국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란과 쌓은 신뢰는 무너질 것이고, 경제 협력은 제동이 걸릴 것이다.
둘째, 평화ㆍ선린 외교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정책에 반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격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이다.
셋째, 이란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신정국가라는 특수한 정치체제와 페르시아 제국 력사에 대한 자부심이 그들을 결사항전의 길로 이끌고 있다.
넷째, 트럼프의 권력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지지층 내부의 이반은 시작됐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중간선거의 패배를 예측하고 있다. 무너지는 담벼락 옆에 서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은 더이상 세계를 지키는 '엉클 샘'이 아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넘게 유지돼온 국제 질서는 무너졌고, 세계는 전쟁과 경제 위기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은 평화를 지향하고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동북아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