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개대학•중국사회과학원 21세기 맑스주의연구원 박건일(중국 한락연연구회 회장)과 한건립(한락연 렬사의 딸, 80세) 두 연구원이 7월19일부터 21일까지 중국공산당 동북 조기 건당 령도자, 혁명가, 예술가인 한락연 렬사가 치치할에서의 혁명활동 정황을 알아보기 위하여 탐방 답사하였다.
첫날에는 치치할시력사박물관, 룡사공원에 위치한 격언정, 미술관, '홍창성' 대형백화상점 옛 터, 구소련령사관, 서만렬사공원묘지, 치치할시 제1중학교, 영안리,고려관,고려아편관 등 여러곳에 대한 고찰을 진행하였다.
그중 룡사공원의 격언정(格言亭)은 바로 미술업계에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우는 인민예술가, 세계 반파쇼투사, 중국 미술계의 첫 공산당원이며 중국 조선족으로서 선참으로 공산당에 가입한 저명한 정치활동가인 한락연 렬사가 생전에 설계, 건축한 것이다
한락연은 1898년 12월 8일,(청나라 광서 24년, 음력 무술년 10월 25일) 길림성 연길현 룡정촌(지금의 룡정시)의 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본명은 광우 (일명 신자, 한달, 소공), 자는 락연이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즐겼다. 일찍, 청년시절 때부터 그는 적극적으로 반제애국활동에 참가하였는데 1919년 3월 서울 반일민족독립대회 성원 선동으로 경찰의 검거를 피하고 혁명의 진리를 찾고자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 건너가서 고려공산당 초창기 건립 사업에 참가하였는데 당시의 봉천(심양) 성장공서에서는 그를 두고 ‘조선독립당괴’(朝鲜独立党魁)라고 불렀다. 1923년 그가 상해 미술전과학교 재학 중일 때도 적극적으로 한국 림시 정부의 많은 요원, 혁명가들과 거래를 하였으며 적극적으로 혁명활동에 참가하여 손중산의 접견을 받았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조직에서는 그를 심양에 파견하여 공산주의 계몽교육과 당조직 건설 준비사업을 하도록 하였다. 1924년 11월에 당조직에서는 한락연을 할빈에 파견하여 중학교 미술교원의 신분으로 비밀리에 혁명활동을 하도록 하였으며 1929년에 그는 치치할시정부 시정국 공정과 과원 겸 룡사공원의 감리(경리,원장)로 일하면서 지하활동을 견지하였다.
1929년에 당조직의 비준을 거쳐 수년간 프랑스에 류학하는 시절에도 '중국화가 한락연 사생작품 전시'를 마련하여 중국인의 담력과 식견, 존엄을 과시하였고 프랑스공산당이 조직한 반파시즘 투쟁에도 참가하여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소련 등 나라를 돌면서 사생과 더불어 국제사회데 대한 조사연구를 진행하였다. 1937년 로구교사변후 10월에 한락연은 만강의 애국열정을 안고 양호성 장군과 한 배를 타고 귀국하여 무한, 연안, 중경, 서안 등지를 다니면서 동북구망총회의 '반격'(反攻)잡지에 부지런히 그림을 투고하였으며 거폭의 유화 '전민항전'을 그려 무한의 황학루에 걸어놓았다.
항일투쟁의 나날에 한락연은 전지당정위원회의 소장 지도원으로 위임되여 항일통일전선의 련락사업을 하였으며 팔로군 부총지휘 팽덕회장군에게 국민당의 반공산당 정보를 보고하였다가 국민당 헌병대에 체포되여 옥중에서 투쟁을 견지하면서 3년이란 고난의 철창생활을 보냈다. 1943년, 출소한 후 당국의 엄밀한 감시를 무릅쓰고 그는 계속하여 통일전선사업에 몰두하였다. 1943년과 1947년 5년간 그는 시종 서부지구의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서예와 신강의 벽화 발굴, 연구에 전력하면서 19차례나 회화전시를 진행하여 대량의 소묘, 속사, 유화, 수채 작품과 서북 고고학 연구의 성과를 올리면서 휘황한 생명의 발자취를 남겼다.
1947년 7월 30일, 한락연은 신강에서 국민당 257군용비행기를 탑승하여 란주로 오는 도중에 가옥관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불행하게 희생되였다. 새 중국이 건립된 후 한락연은 나라에 의해 혁명렬사로 추대되였다.
이튿날에는 치치할시박물관에서 한락연혁명활동 관련 사료연구를 둘러싸고 각계에서 모여 온 전문가들이 좌담회를 열였다. 좌담회에서 박건일 회장으로부터 한락연연구회 설립과정과 그 의의에 대한 소개와 설명, 한건립 녀사로부터 한락연 연구와 관련된 새로운 사료 발굴 및 그 성과와 연구사업의 진척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박건일 회장(왼쪽 첫번째)과 한건립 연구원이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향후 한락연연구사업을 더욱 폭넒고 심도있게 추진하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정이 긴박한 가운데도 두 연구원은 6년전에 설립된 치치할시 조선족한락연연구회 주요 골간들을 만나 지금까지의 활동 정황에 대한 회보를 청취하였으며 그들의 연구활동 성과를 긍정함과 아울러 계속 연구에 전력하여 줄것을 부탁하면서 향후 함께 연구와 기념활동에 동참하여 혁명선렬들의 뜻을 이어가자고 다짐하였다.
출처: 흑룡강신문 특약기자 전창국 제공
편집: 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