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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오카이체육용품유한회사 송현준 대표를 만나
//hljxinwen.dbw.cn  2023-02-08 13:44:31

  송현준 대표와 만난 것은 초겨울임에도 봄날처럼 화창한 날씨가 펼쳐진 지난 2일이였다. 그는 스포츠용품을 생산하는 청도오카이(奥凯)체육용품유한회사 대표이다.

  “요즘 잘되는 회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악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회사의 운영상황을 묻는 기자의 말에 송현준 대표가 대답했다.

  고향이 길림성 도문시인 송현준(1982년생) 대표는 길림성당학교를 졸업한 진취적인 청년기업가로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도문시공안국에서도 근무했고 연해지구에 진출해 한국회사에 근무한 경력도 있으며 한국에 나가 선진적인 기업문화를 몸으로 익히기도 했다.

  “요즘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래일 또 출장을 나가야 합니다.”

  기자의 취재요청에 송현준 대표가 “청도에서 250여킬로메터 떨어진 곳으로 제품생산 고찰을 간다.”고 하면서 깍듯이 사양했다.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저녁 5시경에야 돌아온다고 했다. 왕복 500여킬로메터이면 결코 짧지 않은 거리이다. 기자는 오래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있기 불편한 몸이였지만 선뜻이 나섰고 무작정 동행하기로 했다.

  청도의 아침해는 연변지역에 비해 늦게 뜬다. 늦잠 자는 태양이 얼굴도 내밀기 전에 우리 일행은 일조시의 서북쪽에 자리잡은 구현을 향해 떠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송현준 대표의 회사에 잠간 들렸다. 생산을 책임진 류건도(한족)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송현준 대표의 안내로 회사를 잠간 돌아보니 3년간의 아픔이 보였다. 사무실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으나 생산현장의 재단기계와 샘풀을 제작하는 봉제기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3년 동안 이렇게 쌓여있습니다.”

  송현준 대표가 알록달록한 원자재를 둘러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다시는 돌이켜보고 싶지 않을만큼 힘들었던 지난 3년이였지만 그는 현실을 수용하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4명, 재단을 책임진 우문화 녀사와 생산현장을 책임진 류건도씨 그리고 나와 송현준 대표였다.

  “저의 회사는 책임자가 따로 없습니다. 일인다직으로 뛰고 있습니다.”

  송현준 대표가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8명의 사무직 일군을 다 내보내고 두명만 남겨두었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은 원자재 선택, 재단, 생산관리, 발주 등 다양한 역할을 다 해내고 있다고 한다.

  “가격을 맞출 수 없어서 멀리 농촌을 찾았습니다. 원자재와 인건비는 몇배씩 뛰였으나 물품주문 가격은 10년 전과 똑같으니 도무지 맞출 수가 없습니다.”

  멀쩡한 생산현장을 두고도 250킬로메터 떨어진 곳을 찾아 생산해야 하는 리유를 송현준 대표가 밝혔다.

  무역은 신용이다. 철같이 납품기일을 맞춰야 하고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품 질을 보장해야 한다. 생산현장을 직접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가슴은 얼마나 불안할가?

  “3명이 주주로 공동 발전하는 협력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생산공장장에도 지분을 주었지요.”

  기자의 마음을 읽은 듯 송현준 대표는 공장장이 주주로 되였기에 생산과 품질에는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세 사람과의 합작, 송현준 대표가 갖고 있는 지분은 25% 좌우로 제일 적었다.

  목적지로 가는 길은 멀기도 했다. 청도-란주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G341 국도에 들어섰다. 위방, 창도, 이수, 안추, 일조와 린접했다고는 하지만 락후한 경제를 말해주듯 G341 국도에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조시에서 가장 크다는 청봉령저수지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 풍가구에서 향진 도로를 따라 30킬로메터 더 달리자 안좡진이 보였다.

  인구 3만여명 되는 향진이건만 2층 이상 건물은 없었고 거리에는 가물에 콩 나듯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농민들이 분배받은 땅은 고작 인당 1무 2푼, 사람은 많고 땅은 적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외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갔다고 했다.

  마을을 굽이굽이 돌아 한참 달리자 일조시 창기(创起)가방가공유한회사라는 허름한 간판이 보였다. 몇개 회사가 같이 있는 것 같았고 봉제소리가 들렸다.

  공장에 들어서니 20여명 녀성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림짐작으로도 평균 나이가 40세를 넘긴 것 같았다. 이들은 수납용으로 된 네모형 가방을 만들고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왔기에 일군을 찾는 건 별문제 없습니다.”

  공장장 리국전(한족)씨가 말했다. 리국전씨는 가방생산에 20년 종사한 베테랑이며 일가족이 모두 공장건물에서 살고 있었다.

  리국전씨의 안해까지 팽이처럼 바삐 돌아치며 생산현장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였다.

  “제길, 속상해서, 정말 기분 상해 죽겠소.”

  산동사람들은 찬 맥주를 거의 마시지 못하건만 울분이 가득 쌓인 듯 리국전씨는 송현준 대표와 맥주를 깡그리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만난 세 사람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분명 모순이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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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연변일보

  편집: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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