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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기행] 장백산 아래 황송포에 다녀오다(하)
//hljxinwen.dbw.cn  2021-09-14 11:21:23

  수확물과 수확미

  같은 품종의 옥수수라 해도 다른 사람이 수확한 옥수수를 사서 먹는 것과 손수 수확하여 먹는 것은 그 맛이 다르다. 전자에는 수확 과정의 미가 존재하지 않지만 후자에는 수확 과정의 미가 존재한다. 하기에 이 세상에는 인간들의 이 소박한 수확 과정의 미를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채집원(采摘园)이 나오게 되였다. 채집원이란 글의 뜻대로 고객이 과일밭이나 남새밭에 들어가 직접 자기 손으로 수확물을 채집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는 수확 과정의 미가 존재한다.

  내가 민박집에 주숙하고 있을 때 연길시에서 온 최선생 부부와 함께 있게 되였는 데 최선생은 매일 아침이면 민박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채집원에 가서 블루베리를 채집하여 사오군 하였다. 작은 도시락만한 곽 하나에 블루베리를 담으면 인민페로 15원이라고 한다. 나도 20여년전에 안해, 딸애와 함께 북대하 피서지에 가서 보름 동안 보낸 적이 있는 데 그 때의 매일 일과가 바다에 나가 해수욕을 하는 일과 채집원에 가서 복숭아를 따서 사먹는 일이였다. 그 때 아주 어렸던 딸애는 복숭아 따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나와 최선생 그리고 주인집 아주머니는 시간을 내여 민박집과 5키로메터 떨어져있는 습지를 찾아갔다. 습지 주변의 산책길을 걷노라니 길 량켠에 야생 블루베리가 심심잖게 눈에 띄였다. 이건 채집원이 아닌 대자연에서 야생 블루베리를 채집하여 맛 보는 것이다. 나는 블루베리가 영양가가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맛이 별로여서 그닥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 야생 블루베리를 몇개 따서 먹어보니 새콤달콤한 것이 나름 대로의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주숙하는 민박집에도 앵두나무 몇그루와 오야지 나무 몇그루가 있었는 데 아직 어렸었다. 민박집에 있는 남새밭과 과일나무는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군 한다. 내가 잘 다니는 비암산 자락에 있는 산장에는 비교적 큰 남새밭과 잘 자란 과일나무 몇그루가 있는 데 이 산장을 찾는 사람들은 우선 과일나무를 찾아 과일을 따서 맛보고 식사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일부 손님들은 아예 남새밭에 들어가 손수 고추나 오이를 따서는 반찬거리로 하군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수확 과정의 미가 일으키는 재미인 것이다.

  민박집과 음식맛

  황송포는 림장 마을로서 당의 정책에 의해 려관업이 상당히 발달한 곳이다. 려관이나 려인숙이 많을 때에는 80여집이나 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많은 려관집들에서 조선족이 경영하는 민박집은 오직 내가 주숙했던 그 집 하나 뿐이다. ‘금자려관’, 이름은 조선족려관집처럼 달았는 데 살펴보면 다 한족들이다. 코로나19가 생기기전에는 영업이 흥성했었는 데 코로나19가 생긴 후부터 영업전보다 못하다고 한다. 지금도 찾아오는 려행객들은 적지 않은 데 많이는 단골손님들이란다.

  나는 이 민박집에 오기전 4일 동안은 매일 려행지를 옮겨다니다보니 한족이 꾸리는 네개의 려관에 들었었다. 네개의 려관이 다 깨끗하기도 하고 에어컨도 있고 값도 너무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이 민박집에 오고 나서야 이 민박집과 그 려관들과의 차이점을 알게 되였다. 그 차이점은 주요하게 민족문화의 독특한 ‘내음새’였다. 우선 의사소통이 쉬워졌다. 우리말로 교류할 수가 있으니 편했고 다음 음식 맛이 맞으니 좋았다. 그리고 려인숙 방에는 구석구석마다 주인의 정성이 그대로 슴배여있었다.

  이 민박집에서 먹었던 음식은 다 맛이 좋았지만 감자를 넣고 끓인 된장 맛이 특별히 좋았다. 80세가 된 할머니가 끓여주는 된장 맛은 구수하기도 하고 매콤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여 참으로 일품이였다. 내가 그 비결을 물었더니 하나도 보류함이 없이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께서 손수 초두부를 만들었는 데 너무 맛이 좋아 아침이 아니였더면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려행에서 간과하면 안 될 고리가 바로 식사이다. 려행 과정에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은총이다.

  이 민박집은 50세를 갓 넘긴 아주머니가 그의 본가집 어머니와 함께 두분이서 맡아보고 있었는 데 그 로동량이 쉽지 않았다. 이 민박집에 많이 주숙할 때는 25명이 된단다. 두 분이서 25명의 식사를 안배하는 것도 대단한 부담인 데 거기다가 매일 오전마다 방을 청소하고 상용 물품들을 손보아주어야 한다고 한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남편은 연길에서 출근하다보니 도움을 주자 해도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말수가 적은 분이였는 데 일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조선족 녀인들의 외유내강의 특성이 다분한 풍기는 분인 것 같았다.

  뒤울안과 돌문화

  전형적인 조선족집의 모양새를 갖춘 민박집은 앞면과 좌측면이 낮은 담으로 둘러있고 훤한 앞뜰은 세멘트로 바닥을 하여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만들었다. 좌측면에는 몇가지 남새를 심고 우측면은 주차장으로 사용되였는 데 뒤울안은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거석으로 담을 쌓고 작은 조약돌을 바닥에 깔아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하였다. 독자들은 놀라지 마시라, 내가 여기서 거석이라고 말하는 그 돌들은 작아야 백여근이고 큰 것은 한톤도 넘는 돌들이다. 물론 굴착기(挖掘机)의 도움을 받아 쌓은 것인 데 백년 가도 변하지 않을 돌담이다.

  희한한 것은 거석으로 쌓은 돌담인 데 유난히 아름다와 보이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석 돌담은 또 바닥에 깔려있는 작은 자갈돌들과 잘 어울리여 대조적이면서도 서로 융합되는 묘한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날 뒤울안에서 손을 씻다가 문턱에 놓여있는 몇개의 고운 자갈돌들을 발견하게 되였다. 색갈도 예쁘고 반질반질하기도 한 자갈돌들이였는 데 앙증맞은 그 모습들이 참 귀여워보였다. 나는 돌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수석(收石)에 대해 상당한 흥취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번에 황송포에 오기전에 친구들 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었는 데 이제 시기를 보아 신강에 차를 몰고 유람을 떠나보자는 내용이였다. 갈 때의 로선과 올 때의 로선을 다 토론하고 거기서의 행사를 토론할 때 이틀 동안 시간을 내여 화전옥(和田玉)을 주으러 가보자는 의견까지 나왔었다. 물론 화전옥을 줏느냐 줏지 못하느냐는 것보다는 세상에 이름 높은 화전옥이 어떤 곳에서 나느냐를 한번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보려는 심산이였다. 기재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장백옥(长白玉)도 있다고 한다.

  내가 할머니를 보고 그 돌들을 왜 줏는가고 물으니 그는 이제 집에 갈 때 가지고 가서 자기의 화투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주었다고 한다. 그 자갈돌들의 용처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화분통에 넣으면 보기도 좋고 화분에 물주기도 쉽단다. 자갈돌을 주어 친구들에게 주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을 잊지 않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심, 그것은 말 그대로 금쪽처럼 귀중한 것이다. 그 순간 나에게는 80세가 된 이 할머니가 저 거석으로 이루어진 돌담처럼 아름다와보이고 든든해보였다.

  땀방울과 남새전

  황송포에 도착한 첫 날, 나는 저녁 무렵에 민박집 주변도 돌아보고 마을도 한바퀴 돌면서 살펴보았다. 이튿날 아침 또 마을 주변을 돌아보고 민박집 주변도 살펴보았다. 우에서 밝힌바 있지만 이런 산장식의 민박집에는 응당 자기의 남새밭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민박집에는 자기의 남새밭이 너무 적었다. 어디에 뚜질 땅은 없을가? 이렇게 살피던 나는 담장 너머의 땅뙈기에 눈길을 멈추었다. 아래집은 주인이 이미 방치해둔지도 몇해 잘되는 집이다. 민박집과 이 집 사이의 공터를 뚜진다고 누가 말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이 민박집에 5일간 체류한다면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을 제외하면 삼일이 남는데 이 삼일 간 매일마다 시간을 짜내여 길이가 4메터이고 너비가 1메터인 4평방메터짜리 미니 실험전을 한뙈기씩 일군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고 미룰 필요도 없다. 나는 그날 저녁 민박집 창고에 들어가 삽과 호미를 가져와 땅을 일구기 시작하였다. 꼭괭이나 괭이가 있었더면 밭을 일구기가 좀 쉬웠을 터인 데 그런 도구가 없기에 좀 힘들더라도 삽으로 땅땅한 땅을 뚜질 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첫 날에 밭도 일구고 율무 파종도 끝마쳤다.

  이튿날과 삼일째 되는 날에는 아예 새벽에 일어나 땅을 뚜졌는 데 대략 걸린 시간은 각기 70분씩이였다. 이렇게 되여 삼일에 거쳐 4평방메터짜리 미니 실험전 세 뙈기를 일구고 파종도 마무리했다. 내가 떠나올 적에 볼라니 첫날에 심은 율무는 이미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후 주인아주머니가 보내온 사진을 보니 두번째 일군 밭도 싹이 건실하게 자라고 있었는 데 세번째 날에 일군 밭이 무슨 문제인지 싹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의 황송포 료양과 려행에서 내가 참으로 장한 일을 했다면 땀방울을 쏟으며 이 세 뙈기의 미니 실험전을 일군 것이다.

  려행도중에 밭을 일군다는 것은 가능성이 적은 일이지만 료양도중에 밭을 일군다는 것은 너무도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 내가 황송포에 찾아간 것은 려행을 동반한 료양이였지 료양을 동반한 려행이 아니였다. 이번에 황송포에 가서 내가 일군 미니 실험전을 그곳을 찾았던 연변1중의 지광섭선생이 보고 사진을 찍어 동아리(朋友圈)에 올렸는 데 과연 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이 세상에 땀방울은 언제나 보석처럼 귀중한 법이고 땀방울의 결실은 언제나 꿀처럼 달콤한 법이다.

  최선생과 김선생

  내가 황송포에 도착한 이튿날 최선생 부부가 도착하였다. 그들은 연길에서 왔는 데 주인집 아주머니와 잘 아는 사이였다. 다음날, 그의 안해는 일을 보러 이도백하로 내려가고 그가 혼자 남아서 우리가 식사를 하는 긴 밥상 우에 아이패드(平板电脑)를 놓고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옆에 가서 들여다보았더니 누군가와 둘이서 온라인으로 조선족장기를 두고 있었다. 내가 웃으면서 온라인으로 장기를 두는 건 재미가 없으니 나와 함께 장기를 두자고 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려행길에 만난 장기친구로 되였다.

  나보다 몇살 아래인 최선생의 장기 수준은 나와 비슷하였다. 우리는 단숨에 몇판을 겨루었는 데 수준이 막상막하였다. 그렇게 친하게 된 우리는 자연스럽게 려행과 료양 파트너가 되여 습지 산책길도 함께 다녀오고 내두산에도 함께 다녀오고 원시림 산책길에 들어갔다가 지독한 모기떼에게 쫓겨 함께 허둥지둥 도망쳐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저녁에 술친구로 되여 맛나게 술 한잔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려행길에 술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내가 황송포에 도착해서 3일이 되던 날, 나보다 몇년 이상인 김선생 부부가 민박집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였는 데 나와 최선생은 김선생에게 술을 권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이전에는 술을 즐겨마셨는 데 지금은 몸이 불편하여 마실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비록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래일 저녁 두분이 마실 술을 자기가 가져오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그럴 필요 없다고 점잖게 사양하자 그는 자기의 마음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튿날 저녁 그는 말한대로 도자기 병에 든 술을 가져왔는 데 술도 자기가 만든 술이고 술병도 자기가 주문하여 만든 술병이라고 소개하였다. 술이 얼마나 고급술인지는 몰라도 독특하게 가공된 연푸른색 도자기병만 보아도 아주 귀중한 술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자기가 술을 마시지 못하면서도 식사의 분위기를 위하여 자기의 귀한 술을 아낌없이 내놓는 그의 헌신적인 행위에 우리는 매료되였고 식사 분위기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여갔다. 생활 속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할가…

  주인집 아주머니의 소개에 따르면 2년전에는 이곳 황송포에 모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모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곳에는 많다. 원시림의 습기가 많은 깊숙한 곳에는 모기떼가 많아 산책길을 걷기도 힘든 상황이고 표류를 하는 어떤 구간에는 모기가 많아 참으로 밉상이였다. 모기약을 몸에 쳤는데 도 악착스레 달려드는 모기 앞에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지구 온난화는 모기라는 불청객을 장백산이라는 신성한 곳의 기슭까지 불러왔다.

  이전에 아마죤강 류역의 모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는데 참으로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모기는 체형이 작고 소리가 약하다. 하지만 천만마리의 모기가 한데 뭉치니 그 기세가 참으로 대단했다. 모기떼가 깊은 골짜기로부터 몰려오는데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듯 하고 그 소리가 저승사자가 울부짖는 듯하였다. 요사이 미국에 돌개바람이 몰아쳤는 데 수많은 모기떼를 몰고와 많은 짐승들이 모기한테 피를 빨리워 빈혈로 무더기로 죽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모기는 작아도 그 피해는 크다.

  황송포에는 파리가 적다. 청정지역이라 파리가 적어 아주 좋은 데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리로 지어있다. 내가 마을 주변의 삼림 속에 만들어진 호젓한 산책길을 조용히 걷고 있었는데 하늘이 날려보낸 가을의 명함장―단풍잎이 산책로에 몇잎 떨어져있었다. 사람을 괴롭히던 폭염이 지나가고 드디여 시원한 가을이 오는구나 하고 좋아하고 있는 데 어디서 윙윙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벤치 우에 버리고 간 음식쓰레기에 수많은 파리가 모여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지구를 괴롭히고 인류를 괴롭히는 온난화문제를 해결하고저 유엔에서도 왼심을 쓰고는 있지만 여러 나라들에서 이리 비쭉 저리 비쭉 하는 바람에 그 진척이 아주 느리다. 이런 문제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체로서의 인간은 큰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하지만 쓰레기를 고정된 곳에 잘 버리는 이런 상식적인 일들은 우리 매개인의 작은 힘으로도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모기떼와 파리떼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장백산까지 올라가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

  나오는 말

  황송포에 다녀온지도 20여일이 지났다. 하지만 거기에 체류하던 기간에 있었던 일들이 어제의 일이런 듯 기억에 새롭다. 그곳에 머물던 기간 나는 매일마다 사진 아홉장씩 골라 동아리에 올리군 하였는 데 많은 분들이 보았었다. 료양과 려행은 나 혼자 하지만 사실 나는 혼자가 아니였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뒤에서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었다. 지금은 글이 언제면 완성되는가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하여간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냥 관심을 돌려주고 성원을 보내주시는 여러 분들이 진심으로 고맙다.

  료양이나 려행에서의 ‘홀로 서기'를 처음으로 실천해보았다. 황송포의 민박집에서 며칠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던 최선생 부부와 김선생 부부가 고맙고 그립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려행(료양)이라는 생활의 모퉁이에서 황송포라는 청정지역의 민박집에 한데 모여 며칠을 함께 보냈다는 것은 인연학적으로 분석하면 아주 대단한 인연이라 할 수가 있겠다. 우리들 사이에 지금은 위챗 련락도 자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잊을 수 없는 ‘맑은 시내물'이 그립다.

  려행이나 료양이 끝나면 언제나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는데 이번의 제일 큰 아쉬움은 차를 가지고 가지 못한 것이다. 황송포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지만 대부분이 차로 다녀와야 하였다. 물론 주인집 아주머니의 배려로 그의 차에 앉아 이곳저곳 많이 다녀왔지만 그래도 금후 차를 가지고 다녀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언제인가 시간을 내서 낮에 대희태하에 다녀오고 싶다. 낮에 보아도 대단한 절경이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민박집 경영으로 부지런히 보내고 있을 주인아주머니와 할머니가 그립다. 주인아주머니에게는 술 신세와 차 신세를 많이도 졌다. 이 인정 빚은 언제나 갚겠는지… 집에 돌아와 할머니가 알려준 비법대로 감자장국을 만들어보았더니 그 맛이 참 좋았다. 이제 혹시 다음에 가게 되면 두부를 만드는 방법을 꼭 배우고 싶다… 글에는 언제나 종지부를 찍게 되여 있다. 이 글을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이 고맙다. 많은 분들이 황송포 민박집을 찾기를 바라고 민박집이 잘 경영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아, 못 잊을 황송포여!    (끝)

  /길림신문  신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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