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북위 53°27′00″부터 53°33′30″ 사이에, 중국 최북촌락인 북극촌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흑룡강은 중국 판도 최북쪽의 륜곽을 그려내고 이곳에서 북극의 별이 신주대지를 밝게 비추었다. 우리 함께 북상하여 '항일 첫 총성'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고 항일투사들의 사적을 되새기며 대국 중기의 굴기를 견증하고 림구 전형의 맥락을 거슬러올라가본다. 홍색 빛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국기가 하늘높이 훨훨 휘날리는 곳을 따라 줄곧 북쪽으로 올라가보자.
제93역 신흥오르죤족향
"하늘높이 솟은 흥안령, 일망무제한 대삼림, 삼림속에 용감한 오르죤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네......" 1950년대 대흥안령을 거쳐 전 중국에서 널리 불려졌던 '오르죤의 노래'는 오르죤족 사람들의 생활을 생동하게 그려냈다.
오르죤족 사람들은 세세대대, 대, 소흥안령의 삼림에서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정해진 거처가 없이 유렵생활을 했다. 그들은 오르죤족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본민족 문자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중국 동북부지역에 세세대대 거주한 민족 가운데서 인구가 가장 적은 민족으로 꼽히는 오르죤족은 새중국 설립 후 초기 고작 1000여명밖에 안되였다. 다년간, 당과 국가의 적극적인 부축으로 하여 오르죤족의 경제와 사회가 날따라 발전한 덕분에 오르죤족의 인구수도 비교적 빠른 성장을 실현했다.
신흥오르죤족향은 흑룡강 오르죤족 민족향 중의 하나로 흑하시 손극현에 위치해 있으며 산하에 신흥, 신성, 신건, 신하(신령) 4개 행정촌, 1개 자연툰이 소속되여 있다. 1953년, 당의 정책 덕분에 손극현 오르죤족은 유렵생활을 하던데로부터 하산하여 정착하는데로의 전환을 실현했다. 그 후로 손극현 오르죤족은 장기간 풍찬로숙하던 생활을 마치고 농업경작을 시작하였으며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문화지식을 학습하게 되였다. 현재 신흥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오르죤족 사람들은 생활 차원에서 보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수렵생산과 사회실천 과정에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정신문화도 창조했다.
신흥오르죤족향에 오르죤족 민족레저광장, 종합성문체활동광장, 민족풍정영빈문, 오르죤족 문화수공예품공장, 피라얼로 쿠얼빈천박물관, 민족문화부락조각군 등 특색건축물이 건설되여 있으며 정기적으로 고륜목답축제(古伦木沓节)를 소집하는 등 오르죤족의 민족문화를 최대한 보류하고 있다.
68년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거쳐 천지개벽의 변화를 맞이하면서 오르죤족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무대 우에 우뚝 올라섰다. 원시부락의 '촬라자(撮罗子)'에서 벗어나 넓고 밝은 기와집과 아파트에 거주하기까지, 한 사람이 말 한필, 총 한자루 지니고 유럽민족생활을 하던데로부터 농업생산, 버섯양식, 림하경제를 발전시키는 데로의 변화를 맞이했다. 손극현 신흥향 오르죤족 백성들은 당과 정부의 관심 하에 꾸준히 분발노력하여 화목하고 번영하며 발전을 거듭하는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