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북위 53°27′00″부터 53°33′30″ 사이에, 중국 최북촌락인 북극촌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흑룡강은 중국 판도 최북쪽의 륜곽을 그려내고 이곳에서 북극의 별이 신주대지를 밝게 비추었다. 우리 함께 북상하여 '항일 첫 총성'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고 항일투사들의 사적을 되새기며 대국 중기의 굴기를 견증하고 림구 전형의 맥락을 거슬러올라가본다. 홍색 빛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국기가 하늘높이 훨훨 휘날리는 곳을 따라 줄곧 북쪽으로 올라가보자.
제76역 3005차 전선지원렬차기념비
치치할 앙앙시(昂昂溪)구 기관차사무소 정원 내에 '3005정신 영원히 빛을 발하리'란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파란만장한 력사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견강하고도 꿋꿋하게 자리하고 있다.
기념비는 1998년에 건설되였는데 그 해는 3005차 전선지원 렬차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기념비 우에 기관차사무소 일군 3명과 해방군전사 1명을 형상적으로 설계한 조각상이 세워져있는데 조각상마다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향해 응시하고 있다. 뛰여난 집중력을 보여주는 표정, 손에 총을 들고 과단성있게 행동하는 모습은 마치 사람들을 초연으로 휩싸인 파란만장한 세월 속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1948년 가을, 인민해방군은 모택동주석의 작전방침에 따라 료심전역의 서막을 열었다. 국민당은 미친듯한 폭격으로 우리군의 후방 수송선을 단절시킬 속셈이였다. 당시 치치할철도관리국 앙앙시분국은 동북철도총국 명령에 따라 앙앙시기관차사무소 인사 계장 목성빈(穆成斌), 기사 범영(范永) 등 16명 공산당원에게 3005차 렬차를 타고 앙앙시에서 비밀리에 출발해 료심전역 전선 서부신(西阜新)으로 향발하라는 명을 내렸다. 적들의 점령구역에 진입한 탑승원들은 낮에는 은페했다가 저녁이 돼서야 차량을 운행했는데 운행 도중 등불을 켜지 않고 기적도 울리지 않았다. 이렇게 조심하면서 운행했는데도 연선에서 적군의 습격을 수없이 당했다. 창무(彰武)에 방금 도달했을 무렵 렬차는 적기의 폭격을 당했는데 탄알이 숙영차를 꿰뚫고 렬차장 추천여(邹天余)의 오른쪽 어깨에 들어갔다. 그의 어깨에서 선혈이 흘러내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줄곧 앞을 바라보면서 렬차 운행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3005차 렬차의 안전 운행을 위해 연선 도로의 군 장병들은 목숨을 잃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자동차 전조등을 켜 적기의 주의를 끌었다. 적기의 폭격에 바곤 한 대가 폭발로 산산조각이 난 가운데 3005차 렬차가 이러한 환경속에서 어렵게 전진했다. 10월 2일 아침 6시, 3005차 렬차가 마침내 안전하게 서부신역에 들어섰으며 전 렬차를 청하문 전문코스로 사용했다. 기차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병들은 40분만에 1700여톤에 달하는 탄약을 전부 부리우고 즉시 전선으로 달려갔다. 이날 수송해온 탄약은 료심전역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병기렬차 운행 임무를 뛰여나게 완성함으로 하여 동북행정위원회는 기관차사무소 전체 일군들에게 특등공을 수여했다. 1949년 4월, 기사 범영은 서백파(西柏坡)에서 소집된 해방전쟁 특등군공수상자군영회에 참석하여 모택동,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의 접견을 받았다. 모택동은 범영과 악수하면서 "철도 로동자들을 향해 경의를 표합니다!"고 말했다.
"무릇 해방군이 전투를 펼치는 곳라면 그곳까지 렬차를 운행해 가고", "과감하게 싸우고 강경하게 맞서며 용감하게 앞을 향해 나가는" "3005"정신은 전쟁 포화를 거쳐 력사 기념비에 영원히 새겨졌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