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흑룡강과 우쑤리강이 합치는 '화하동극' 흑할자섬에서 매일 첫갈래의 햇빛이 이곳으로부터 조국의 대지를 밝게 비추기 시작한다. 줄곧 동쪽을 향해 '전진의 방향을 가리키는 동방의 아침해'를 따라 '팔녀투강'의 장렬한 순국을 되새겨보고 현대화농업의 새로운 성과를 견증하며 석탄도시 전환의 도시진척을 탐구하고 집과 나라를 지키는 동극초수를 방문하는 과정을 거쳐 홍색흔적을 추구하고 룡강의 그제날과 오늘날의 거대한 변화를 알아본다.
제65역 부금 오정산 중국침략일본군 군사공정유적
오정산 중국침략일본군 군사공정유적은 가목사 부금시구 동남쪽 11킬로미터 되는 오정산삼림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우얼고리산군사공정은 전쟁 전진 지휘중추 겸 후근 비축형 요새로서, 주로 반산도로, 토치카와 엄페된 토치카, 지하공사 등 3개 부분으로 구성되여 있다. 반산도로는 여러 주봉에까지 직접 통하는데 전부 사석길로 되여 있다. 토치카와 엄페된 토치카는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주로 산꼭대기의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거나 나무숲에 은페되여 있는데 총 108개에 달한다. 지하공사는 깊고 넓어 자동차가 오갈 수 있는데다 내부에 조명, 통풍, 공수설비가 갖추어져 있어 투숙과 사무용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군용물자도 저장할 수 있어 륙지 '항공모함'이라 불리웠다.
1943년 5월 2일, 일본 관동군 만주국 주둔 최고 군사고문이자 륙군 중장인 쿠스노키 사레다카가 부금에 있는 오정산 군사요새를 시찰하러 왔을 때 정안사단2련대 박격포중대 근무병 상륭기(常隆基)의 총에 명중되여 락마했는데 이가 바로 국내외를 놀래킨 '오정산사건'이다.
상륭기조각상
상륭기, 1921년 료녕성 서풍현 동태향 태벽촌에서 태여났다. 1941년 6월, 상륭기가 일본, 괴로군에 의해 강제로 징병되여 입대했다. 부금에 온 후 그는 정안사단2련대 박격포중대 2소대 4반에 편입되여 상가기대영에서 신병훈련을 받았다. 1941년 10월, 해구대영으로, 1942년 4월에는 또 오정산대영으로 방어진지를 옮겼다. 오정산대영에서 상륭기는 일본군이 중국 로동자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잔폭한 죄행을 보고는 암암리에 인민을 위해 복수하고 나라의 치욕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1943년 5월 2일, 위만주국 최고 군사고문이자 일본 륙군중장인 쿠스노키 사레다카가 오정산 군사공정을 시찰하러 왔을 때 상륭기가 미리 말똥주머니에 숨겨두었던 권총으로 사격을 가해 그를 락마시켰다. 상륭기는 일본군에 쫓기다가 결국 강에 몸을 던져 순국했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