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흑룡강과 우쑤리강이 합치는 '화하동극' 흑할자섬에서 매일 첫갈래의 햇빛이 이곳으로부터 조국의 대지를 밝게 비추기 시작한다. 줄곧 동쪽을 향해 '전진의 방향을 가리키는 동방의 아침해'를 따라 '팔녀투강'의 장렬한 순국을 되새겨보고 현대화농업의 새로운 성과를 견증하며 석탄도시 전환의 도시진척을 탐구하고 집과 나라를 지키는 동극초수를 방문하는 과정을 거쳐 홍색흔적을 추구하고 룡강의 그제날과 오늘날의 거대한 변화를 알아본다.
제60역 중국의과대학부속병원 유적
학광병원(鹤矿医院)은 영광스러운 혁명력사를 지닌 병원으로, 1945년에 건설되였으며 해방전쟁시기 제4야군전지병원으로 리용되기도 했다.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중국의과대학이 북쪽에 위치한 학강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당시 흥산의대라 불렀으며 학광병원이 그 부속병원으로 되였다. 중국의과대학은 중국공산당이 창설한 첫번째 정규 의과대학병원이다. 병원은 홍색도시 서금(瑞金)에서 탄생되고 혁명성지 연안에서 성장했으며 흥산(현재 학강시)에서 장대해졌다.
중국의과대학부속병원 유적, 현재의 학광병원
중국의과대학부속병원/자료사진
1932년 겨울, 일본침략자들이 학강탄광을 침략해 점령한 가운데 1934년 탄광병원을 세웠으며 1943년 일본침략자들이 학강에서 건설한 '만주탄광주식회사제2병원'이 착공에 들어갔다.
항일전쟁 승리 후 중공중앙은 10만 대군을 동북에 파견함과 아울러 연안의 몇몇 학교를 동북에 이전시키기로 결정했다. 연안에 있던 중국의과대학은 중공중앙과 군위의 명령에 따라 1945년 10월 10일 연안에서 출발하여 장가구, 치치할, 할빈, 가목사를 거쳐 1947년 마침내 흥산시에 도착했다.
중국의과대학이 흥산에 도착한 후 중앙군위와 동북민주련군의 명령에 따라 앞서 흥산에 도착한 동북의과대학과 합병을 진행했다. 중국의과대학을 위수로 하여 새로운 중국의과대학을 설립했는데 당시 '흥산의과대학'이라 불렀다. 광부병원도 '흥산의과대학'부속병원으로 되여 '의과대학' 사생들에게 교학실습을 제공함으로써 당시 전국의 우수한 의료일군을 육성하는 요람으로 자리매김했다.
1948년 9월, 료심전역이 발발했다. 당시 흥산에 위치한 중국의과대학 본교와 각 분교는 즉시 전역에로 투입되였는데 전교 4개 병원, 12개 소에서 선후로 1만여명에 달하는 부상자를 접수해 치료했다. 전역에서 광범한 사생들은 개인의 안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식사를 거르고 밤을 지새우면서 부상자를 구조하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1만여명에 달하는 부상자중 다수가 치유되여 다시 전선으로 돌아갔다.
료심전역이 승리적으로 끝난 후 중국의과대학은 명을 받고 학교 일부를 심양에로 옮겼는데 이는 바로 현재의 중국의과대학이다. 그외 일부는 할빈으로 이전해 할빈의과대학을 설립했다.
1950년 6월, 중국의과대학이 전부 이사를 마쳤다. 광부병원도 병원부서를 현재의 입원부로 옮겼다. 2016년, 병원을 '학강학광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