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동방홍 태양승(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태양이 솟아오르네)……" 이는 노래 "동방홍"의 가사 첫소절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가 '동방홍'과 '태양승'은 흑룡강 경내의 두 기차역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 멀리로 뻗어나간 철로는 마치 우리를 파란만장한 세월 속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이제 '동방홍'역에서 출발하여 서쪽 '태양승'까지 가는 길에 호두요새(虎头要塞)를 거쳐, 만경량전(万顷良田)을 건너, 북국의 얼음도시의 중후함을 만끽하고 무쇠사람정신의 세례를 거쳐 공산당원의 발자취를 따라 룡강의 100년 발전의 맥박을 짚어본다.
제45역 양자영렬사릉원
목단강 해림시 양자영렬사릉원에 기념비가 우뚝 솟아있다. 기념비로 향하는 계단이 총 131급에 달하는데 이는 이곳에서 잠든 전사가 희생될 때 31살이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가 바로 림해설원에서 전투를 벌였던 정찰영웅-양자영이다.
양자영, 본명은 양종귀, 산동 모평(牟平)현(현재 연대시 모평구) 사람이다. '9.18'사변 후, 그는 일본군에 잡혀 노역을 당했다. 1943년, 일본 침략자의 능욕을 당하고만 지낼 수 없었던 양자영은 앞장서서 십장을 때려고 동북에서 산동 고향으로 도망쳤다. 고향으로 돌아온 양자영은 비밀리에 민병조직에 가입해 항일투쟁에 적극 참여했다. 1946년, 양자영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후날 2사단 정찰소대 소대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크고작은 전투를 수백차례 치렀는데 번마다 상급에서 준 임무를 특출하게 완성하여 수차 공을 세우고 상을 수여받았으며 '정찰영웅', '전투모범'으로 선정되였다. 양자영이 참가한 수차례 비적토벌전투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가 바로 지략으로 위호산을 지킨 것이다.
'천왕이 지호를 통제하고 보탑이 물요괴를 진압한다'는 모두 잘 알고 있는 대사이다. 이 대사처럼 익숙히 알려진 토비가 있는데 바로 '좌산조'이다. '좌산조'는 '토비세가' 출신으로, 3대가 토비였다. 그는 50년간 토비로 살아왔는데 현지인들은 그를 '검은눈', '검은총', '검은발'이라 불렀다. 그가 마음이 독하고 하는 짓이 악랄할 뿐만 아니라 몸을 숨기는데 능하고 아주 교활했기 때문이다.
1946년말, 목단강 북부 산간지역으로 물러나 도사리고 있는 대규모 토비가 우리군에 소멸되였지만 해림현 북부에 숨어있는 '좌산조' 소굴은 줄곧 찾아내지 못했다. 이곳에 숨어있는 토비들이 길림으로 도망친 후 국민당과 결탁하여 계속 인민을 적으로 삼는 것을 막기 위해 련대본부는 양자영 등을 산속으로 파견하여 토비를 소멸하도록 했다. 참군 이후로 양자영은 토비로 가장한 현장정찰경험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더우기 토비의 암호말도 많이 배웠다. 양자영과 전사들은 토비들과 지혜, 용기를 겨루면서 다양한 고험을 통과한 후 마침내 '좌산조'를 만났다. 그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좌산조'를 산아래까지 유인했고 우리군은 그곳에서 그를 단번에 제압했다.
이러한 전기적인 경력이 훗날 소설 '림해설원'으로 개편되여 한세대 또 한세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양자영이란 이름은 이미 부호로 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직되였다. 그러나 양자영이 지략으로 '좌산조'를 체포한 10여일 후 완강하게 저항하는 토비를 소탕하던중 불행하게 총탄에 맞아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31살이였다.
양자영은 전쟁년대에 배출된 수천수만 영웅들중의 걸출한 대표이다. 그는 인민의 해방사업을 자신이 평생 추구하는 목표로 간주했다. 백산흑수 사이 광풍, 폭우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양자영과 그의 전우들이 개털모자를 쓰고 면외투를 입은채 지략으로 토비를 소멸하는 정경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양자영의 용감함과 지략 그리고 림해설원에서 전해지고 있는 전기적인 이야기는 영원히 한세대 또 한세대 중화 아들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