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동방홍 태양승(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태양이 솟아오르네)……" 이는 노래 "동방홍"의 가사 첫소절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가 '동방홍'과 '태양승'은 흑룡강 경내의 두 기차역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 멀리로 뻗어나간 철로는 마치 우리를 파란만장한 세월 속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이제 '동방홍'역에서 출발하여 서쪽 '태양승'까지 가는 길에 호두요새(虎头要塞)를 거쳐, 만경량전(万顷良田)을 건너, 북국의 얼음도시의 중후함을 만끽하고 무쇠사람정신의 세례를 거쳐 공산당원의 발자취를 따라 룡강의 100년 발전의 맥박을 짚어본다.
제33역 할빈차량공장 옛주소
할빈차량공장 옛주소 기념원은 할빈애건지역사회 상해가에 위치해 있다. 백년 러시아 풍격의 공장건물, 증기기관차, 옛 수탑 그리고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가 새겨진 새로 락성된 옛주소 비석은 백년 옛공장이 남긴 도시의 홍색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896년 6월, 청정부와 제정 러시아가 '중러밀약'을 체결한 가운데 제정 러시아가 중국 동북에서의 철도부설권을 탈취하였다. 1898년, 중동철도가 착공, 건설됨과 아울러 중동철도 할빈 림시 기계 총공장도 건설되였다. 공장 건설 초기, 로동자들은 아주 초라한 36개 막에 거주했다. 따라서 공장을 '36개 막 철도공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때부터 철도 로동자들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고난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비장하고도 영광스러운 투쟁사, 간고분투한 창업사를 써내려가기도 했다.
총공장은 선후로 제정 러시아의 독점, 중국과 소련의 합작설립, 일본 괴뢰정권의 통치, 중국과 소련의 공동 관리, 인민철도 등 력사단계를 거쳤다. 1907년, 그들은 처음으로 5.1국제로동절을 기념했고 1917년 10월 혁명을 경축하기 위해 처음으로 '국제가'를 불렀다. 1917년부터 1924년사이, 그들은 련속 4차례 중동철도 전 로선 대파업을 발동했다. 1923년, 중공 할빈조직이 설립되였고 이곳에서 전 시 첫 산업로동자 공산당원이 탄생되였다. 1929년, 중동철도사건이 발발했다. 중공 만주성위서기 류소기가 총공장을 방문해 철도 로동자 투쟁과 할빈 로동자운동을 령도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건이 투항을 선포했다. 소련군이 중동철도를 접수하여 관리하였으며 총공장을 중장철도 할빈기관차차량수리공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46년 4월 28일, 할빈이 해방된 후 중국공산당의 령도 하에 공장은 해방전쟁을 지원하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게 되였다. 2년간, 공장은 선후로 약 2천대의 화물차, 2백여 대 기관차와 유개화물차 외에도 대량의 총기, 수류탄, 60박격포, 82박격포 등 군공제품을 수리했다. 또 첫 송화강대교를 보수하고 중국 첫 교량 부설기계를 제조해냈다. 가목사 송화강대교를 수리한 가운데 동북영화제작사는 이를 배경으로 다룬 새중국 첫 이야기영화 '다리'를 촬영했다.
1950년 2월 27일, 모택동주석이 소련을 방문하고 귀국하던 길에 할빈기관차차량수리공장을 시찰했다. 1906년부터 공장은 기관차, 객차, 화물차 객실을 수리하던데로부터 화물차를 제조하는 력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해 철도 화물차를 자체 설계하고 제조하는 력사를 개척했다. 개혁개방시기, 공장은 안정적으로 건설하고 발전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기여를 했다. 공장을 1994년에는 할빈차량공장으로, 2016년에는 중차할빈차량유한회사로 개칭하였으며 2002년 공장 전체를 새로운 작업장으로 옮겼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