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 공산당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백년 력사가 파란만장한 세월을 얘기하고
세기의 초심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100년간
중국 공산당의 령도하에
룡강의 아들딸들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나아가 일본 외적들을 물리치면서
민족 독립과 해방을 맞이하고
흑토 국경의 전면적인 건설을 실현함으로써
공화국 대식량창고, 대유전, 대탄광으로 자리매김했다.
전 성 인민들은 부탁을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
새로운 발전리념을 관철하고 새로운 발전국면을 구축했다.
시리즈보도 '홍색 흔적이 룡강에'는
홍색 유전자를 찾고 고양하면서
백년 당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할빈,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가진 영웅도시이다. 이곳에서 도시속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웅들이 이 도시를 위해 남긴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할빈통신사유적지, 중공만주성위기관 옛주소, 동북렬사기념관, 마디얼호텔......
'홍색 흔적-룡강 백년 당사 이야기를 얘기하다' 주제 조사연구 취재 행사과 함께 할빈시 유적, 전시관을 방문해 홍색기억을 찾고 룡강의 홍색자원을 깊이 발굴함으로써 룡강의 백년 당사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한 개 기념관, 한 개 공원으로 보는 리조린 장군의 휘황한 일생
리조린은 중공북만의 주요 책임자 중 한사람이자 동북항일련군 창시자 중의 한사람이며 새중국을 위해 기여한 100명 모범영웅인물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전에 중공북만군위 책임자, 주하반일유격대 부대장, 합동지대정위로 활약했다. 1930년 말, 중국공산당청년단에, 1931년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 후 당의 령도하에 그는 항일구국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리조린 장군 기념관
리조린 장군은 할빈에 도착한 후 중공만주성위군위 책임자로서 북만지역에서 당이 직접 령도하는 무장을 건립하는데 큰 힘이 되여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중 '옛금고' 습격전은 리조린 장군이 독립적으로 지휘한 저명한 전투이다. '옛금고'는 당시 소흥안령 벌목장 회계사무실이 위치한 곳으로 하여 얻은 이름이다. 이곳은 '위만주국' 삼림경찰대대의 주둔지이자 일제의 중요한 군사, 경제 거점이기도 하다. 1936년 3월 19일부터 20일까지, 리조린 장군의 지휘 하에 군은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바람을 무릅쓰고 련속 진군하여 어둠의 엄호 하에 차바기(현재 이춘시 금산툰)를 공략함으로써 단번에 '로금고'를 점령하고 위만주국 삼림경찰대대와 7명의 일제를 소멸했다. 이번 습격전에서 방송국 1대, 소총과 권총 200여 대, 탄알 30여 만발, 식량 몇만 자루를 로획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흥안령 서남산에 도사리고 있던 적들의 마지막 거점을 없애치움으로써 북만항일 후방기지를 건립하고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였다.
"리조린 장군은 보귀한 생명을 중화민족의 해방사업에 바쳤고 사심없는 기여로 휘황하고도 장려한 인생을 그려냈다. 매 한번의 해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다시 교육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 리조린 장군 기념관 관장 손성문은 "헉명이야기와 홍색 정신 전파자로서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조린공원
조린공원 정문으로 들어간 후 도로를 향해 걷다가 작은 다리를 건너면 리조린 장군묘를 볼 수 있다. 조용한 조린공원 내 리조린 장군묘는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더욱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풍긴다. 비석에 새겨진 금색 글자 '민족영웅 리조린 장군 묘'는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부지면적이 8.4만평방미터에 달하는 조린공원은 1906년에 건설되였다. 전에는 '리사회화원', '특시공원', '중앙공원', '할빈시제1공원', '도리공원'으로 불리웠는데 훗날 흑룡강성 정부의 비준을 거쳐 '조린공원'으로 개칭했다. 이 도시의 나이와 같은 백세공원으로, 조린공원은 할빈원림사업과 빙설예술발전에서 특수한 력사지위를 지니고 있으며 리조린 장군이 이곳에서 영원히 고이 잠듬으로 하여 더욱 중추한 느낌을 주고 있다.
소국림 조린공원 관계자는 최근 년간, 조린공원이 선후로 '성급 애국주의 교육기지', '할빈시 덕육교육기지', '흑룡강성 국방교육기지', '미성년 사상도덕건설 애국주의 교육기지', '첫 부류 할빈시 애국주의 교육기지' 칭호를 수여받았다고 말했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