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중국공산당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파란만장한 백년의 력사, 힘차게 앞을 향해 달려간 그제날의 세월, 만리강산의 곳곳에서 홍색의 빛이 반짝이고 있다.
항련 봉화부터 황무지 개간까지, 대국 중기에서 북쪽 최전방에 이르기까지, 백년의 '홍색 발자취'가 잠자고 있는 천년의 흑토지를 각성시켰다.
룡강TV뉴스보도 위챗 공중계정은 대형 융합매체 특별보도 '동방홍부터 태양이 뜨기까지'-클라우드 핫 플레이스 흑룡강성 백개 '홍색 발자취'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홍색 세월을 되새겨본다.
"동방은 붉은 해가 뜨고 있다네(동방홍, 태양승)......" 이는 노래 '동방홍'의 첫 구절 가사이다. 우연하게도 '동방홍'과 '태양승'은 흑룡강성 두 기차역의 이름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철도선은 마치 우리를 그제날의 파란만장한 세월로 안내하는 것만 같다. '동방홍'으로부터 출발하여 줄곧 서쪽으로 이동해 '태양승'에 도착하기까지 호두요새를 경과하고 끝없이 펼쳐진 농전을 건너며 북국 얼음도시의 중후함을 느끼고 철인정신의 세례를 체험하는 등 공산당원의 초심 발자취를 따라 룡강의 백년 발전 맥락을 탐구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두번째 역 호두요새
계서시 호림시의 변방 소진으로 완달산의 여맥인 호두산에 자리잡은 호두(虎头)진은 우쑤리강과 린접해 있고 러시아련방의 달리네레친스크시와 강을 사이두고 마주해 있다.
호두산에는 지하 요새가 깊이 숨겨져 있는데 이는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동방의 마지노방선', '북만의 영원한 요새'로 불리는 호두요새이다. 일본 관동군이 장기적으로 중국을 점령하고 소련을 공격하기 위해 1934년부터 약 6년간 사용한 가운데 수십만명에 달하는 중국 로동자와 전쟁포로를 억압하여 호두요새 건설에 투입시켰다. 규모가 방대하고 구조가 복잡한 요새는 지면으로 통하기까지 관측소, 엄페 토치카, 수갱, 통풍구, 반격구, 출입통로 요충에 설치된 함정, 사격총구가 설치되여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 전쟁 벙커, 교통방공호가 수십리 굽이굽이 이어져 각 주요 진지와 통해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히토 천황이 '포츠담공고'를 받아들이고 무조건 투항을 선포했다. 그러나 호두진에 있던 일본 관동군 제 15국경수비대는 일본 천황의 투항 선포 소식을 믿지 않고 여전히 완강하게 저항했다. 소련홍군이 우쑤리강을 건너온 후 전투가 8월 26일까지 지속되였으며 그때에야 일본군은 비로소 총기를 바치고 투항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군이 최후의 발악을 한 탓에 장장 11일간이 더 지체되였다. 따라서 호두요새는 국내외 학자들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지'라 불리고 있다.
치렬한 전투 전 과정을 동북항련 교도려의 전사들이 함께 했으며 200여 명 선견대가 앞서 호두요새에 잠입하여 요새 산꼭대기에서 '아시아 제1포'로 불리는 41cm의 유탄포를 폭발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곧 동북에 출병하는 극동군에 대한 큰 위협을 없앴다. 전투가 끝난 후 선견대에 살아남은 전사가 몇 안되였다. 주금쇄(周金锁), 목일도(木日图), 왕천효(王天晓)......현재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극소수의 몇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주공격 전의 대적 정찰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외 다수 무명렬사는 맹호산의 주공격 전역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호동산 중국침략 일본군 호두요새 유적에 중국침략 일본군 호두요새유적박물관이 건설되여 있다. 박물관에는 주로 호두요새 관련 자료와 사진 그리고 당시 사용했던 총기, 탄약, 옷과 일상용품, 헬멧, 취사도구 등이 전시되여 있다.
호두요새 주요 진지인 맹호산 산꼭대기에 제2차 세계대전 종결지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에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지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중국과 세계인민이 평화를 동경하는 아름다운 념원을 보여준다. 유적은 세인들에게 그제날의 력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중국침략 일본군 호두요새 유적은 전국 중점 문물보호단위, 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로 지정되였으며 일본군국주의가 남긴 침략 죄증이자 애국주의 교육과 국방교육을 진행하는 생동한 실물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초심 발자취를 따라 발전의 맥락을 찾으러 함께 출발하자!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