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동창들이 우습다고 야단들이다.
“우리도 앞으로 손주들이 생기면 그렇게 될런지 모르겠는데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전부가 자기가 낳아 키운 자식들보다 그 손주들이 고와서 어쩔줄을 모른다니까.”
“우리도 그때 되면 꼭 같아질걸. 지금 마을의 로인협회들에선 서로 입만 뻥긋 열면 당신 손주들 자랑이여서 어떤 협회에선 활동실 벽에다 ‘손군 자랑을 하려면 먼저 돈 10원 내놓고 하시오!’ 라고 쓴 글까지 벽에 붙여놓았다더군.”
맥주병밑굽 리두성이 하는 소리다. 이래서 화제는 격세대에서 일어나는 웃음거리로 번져진다.
“우리 학교에서 퇴직한 한 로교원은 이젠 손주 셋을 업어 키웠는데 얼마나 손군들을 귀여워하고 관심했으면 아직 말 못하는 어린애의 울음소릴 듣고도 그 애가 왜 우는가를 알아맞춘대요.”
최윤희가 하는 이야기다.
“어린애가 응아~응아~ 하고 꼭 같은 목소리에 꼭 같은 절주로 울면 그건 배가 고프다는 소리고 응아~ 소리가 처음엔 높던것이 차츰 맥이 없으면 그건 어디 아프다는 소리고 또 응아~ 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반복을 하면 그건 곁에 사람이 자기를 지켜달라고 응석을 부리는 소리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목청이 미여지게 울어대면 그건 귀찮고 시끄러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분하고 노여워서 그런대요.”
“어머- 그 분은 어린애 울음소리 전문가네. 정말 우리도 배워둘만한 말이구나.”
최윤희의 이야기에 모두들 신기해하는데 이번엔 ‘앉으나 서나’ 강현수가 나선다.
“우리 신문사의 로총편 한분은 손자때문에 아들과 날마다 싸우고 있거든. 아들, 며느리가 제 자식을 욕할라치면 이 로총편이 나서서 욕을 못하게 야단을 치는건 더 말할것도 없고 당분이 많은 단 음식을 먹으면 이가 나빠진다고 아들, 며느리가 그렇게 타이르는데도 손자녀석이 사탕을 먹고싶다 하면 사탕을 사주고 얼음과자를 손가락질하면 두말없이 얼음과자를 사주고 그러는거야. 그러니까 그냥 아들하고 다툴수밖에 없지. 그러다가 언제 한번은 또 손자를 역성드는 일로 서른살 넘은 아들하고 마주 붙었는데 이 로총편이 턱을 쳐들고 키가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아들을 올려다보며 ‘이 못난 놈아! 너 아들이 내 아들보다 더 고운걸 낸들 어쩌란 말이냐?’이렇게 말했대.”
“너 아들이 내 아들보다 더 곱다? 그거 참 재미나는 말이구나.”
동창들이 이렇게 떠들고 있을 때 주영주가 입에다는 머리삔을 물고 한 손으로는 빗으로 금빛 머리를 빗어 넘기며 정원으로 나오고 있었다.
“알라뷰! 너희들이 밖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에 아직 화장도 못하고 막 쫓아 나오는 길이야.”
“순애는? 아직도 자구?”
“아니, 그 애도 방금 일어났는데 눈이 퉁퉁 부어 지금 화장실에 있어.”
“눈이 퉁퉁 붓다니? 걔 또 간밤에 울었니?”
“응, 많이 울었어!”
“이그- 불쌍한 애, 보나마나 집에서 또 무슨 걱정거리 전화가 걸려왔겠구나.”
“아니야, 어제 밤엔 그래서 운게 아니구 좋은 소식이 날아와서 울었어. 걔가 우니 나도 따라 울었지 뭐야.”
“?...”
“순애 큰아들은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장애아지만 초중3학년에 다닌다는 작은 딸앤 아주 훌륭하게 키운것 같애. 순애가 여기로 떠나오던 날 학교일어선생이 그 애를 데리고 천진에서 열리는 전국중학생일어시합에 참가하러 갔대. 어제 낮에는 필답시합이구 어제 밤에는 구두어시합인데 그 애가 글쎄 초중조에서 총점수 1등을 했대.”
“어머! 그 애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 일이라면 순애가 울만하다. 듣던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순애한텐 근심거리 또 하나 생겼지 뭐야.”
“야, 주영주! 너 정말 입이 빠르다. 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왜 또 이래?”
범이 제흉을 하면 온다더니 어느 사이 김순애가 뒤에 따라나오며 주영주한테 눈을 흘긴다. 하지만 주영주는 김순애의 말은 귀등으로 들으며 고집스레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간다.
“그 시합을 보러온 북경외국어대학 부속중학교 교장들이 이 순애네 딸애를 데려가겠다고 한대.”
“그러면 더 잘됐네. 보내면 될거 아니야?”
“누가 더 잘된걸 몰라서 그래요? 학비가 문제돼 그러는거지요.”
“야 참, 모두들 이 주영주 허튼 소릴 듣지 말아요. 학비는 제 절로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어요.”
김순애가 주영주의 팔을 잡고 한옆으로 마구 끌어당긴다.
“학비가 얼만데 내가 책임질게.”
‘한근짜리’ 김성만이가 주먹같은 큰 코를 벌름거린다.
“제발 이러지들 마세요. 제 절로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다니까요.”
김순애는 울상이 되여 어쩔바를 몰라한다.
“얘를 좀 봐요, 이렇게 고집 많은 얘 자존심에 성만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창들이 돈을 준다해도 절대 받지 않을거래요. 학비는 1년에 8천원이라 하길래 어제 밤에 그 돈을 내가 대주겠다고 하니 얘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네가 정말 그 돈을 내면 넌 날 못산다고 업신보는것이여서 동창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개 간나새끼야!’이래요.”
“주영주야, 그 마지막에 한 욕은 악이 받쳐 한 소리야. 본심이 아니니 새겨듣지 마!”
김순애가 이러면서 주영주의 목을 꼭 끌어안자 모두들 보기 좋아 얼굴에 웃음을 그린다.
“반장!”
주영주는 백일호를 부른다. 백일호와 김만융교수도 산책을 마치고 동창들이 모여 서서 웃고 떠드는 이 자리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 순애 일로 제가 간밤에 생각을 좀 해봤는데 어느 한두 사람의 이름으로 후원하면 얘가 몹시 부담스러워 할거니까 그러지들 말고 목단강민족사범학원 78년급 조문반 동창회의 이름으로 우리 다 같이 김순애를 돕는게 어떠세요.”
“그거 좋겠네. 주영주 생각 참 잘해냈소. 이 일이 이번 동창모임에서 가장 값지고 뜻 있는 일이구만.”
백일호가 기뻐하며 주영주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들어 보이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그 방법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순애는 갑자기 땅바닥에 풀쩍 주저앉더니 엉엉 소리내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 눈물은 같이 한반에서 공부한 동창들보다 신세가 가련해진 서러움도 조금은 섞여 있겠지만 그보다도 누구하나 빠질세라 모두가 오빠 같고 언니 같은 동창들의 한결같은 정성과 사랑이 너무 너무 진해서 가슴에서부터 북받쳐 오르는 고마움의 눈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