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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안개 흐르는 태양도(5)
http://hljxinwen.dbw.cn   2009-05-08 16:26:48
 
 
 
 
 

 

녀자의 눈물

밤이 깊어 별무리호텔은 조용했다.

 대머리는 술안주를 들고 귀빈식당에서 나와 구금자가 오라고 하던 1층 제일 동쪽켠에 위치한 그 방으로 찾아갔다. 이 방도 독방이였는데 출입문에 들어서면 객실이 있고 객실에서 또 문을 열면 정갈한 침대 하나가 놓여있는 안방이 있었다.

 그런데 객실의 너른 공간에 쏘파 두개를 끌어다 마주놓고 그 가운데 있는 차장엔 소주 한병이 달랑 놓여있을뿐 객실에도 안방에도 구금자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간것이 틀림없었다.

 대머리는 들고 온 술안주를 차장우에 펴놓고 쏘파에 앉아 담배 한대를 뽑아 물었다. 그런데 그 담배를 다 태우는 사이에도 화장실에 들어간 구금자가 나오지 않았다. 혹시 화장실 안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가 해서 귀를 기울여도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또 혹시 술을 많이 마셔 먹은 음식을 거꾸로 배설하는가 해서 귀를 도사려도 그렇게 입으로 토하느라 꺼욱꺼욱 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화장실 안은 대머리가 방에 들어설 때와 꼭 같이 그냥 그렇게 조용하기만 했다. 이상한 생각에 대머리는 화장실 문을 노크했다.

 “금자! 너 안에서 왜 나오지 않는거야?”

 “응! 나...흐흑... 나, 나간다...”

 구금자가 안에서 대답했다. 그런데 울음이 섞인 목소리다. 화장실 문은 안으로 잠그지 않았었다. 대머리가 손으로 문고리를 당기니 문이 활 열렸다. 그 찰나, 대머리는 흠칫 놀랐다. 구금자는 쭈크리고 땅바닥에 앉아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울고 있었던것이다.

 “야, 네가 왜 여기서 우나?”

 녀성들은 흔히 술을 마시면 잘들 운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슴에 쌓여온 설음이 많은 그럴만한 사연들이 있는 녀성들이 하는 짓일것이다. 그런데 다른 녀성도 아니고 동창들마다 부러워하는 백일호의 안해, 언제봐도 깨끗하고 명랑한 구금자가 이토록 서럽게 우리라고는 녀성들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며 아이를 낳는 장면마저도 생동하게 그려내는 소설가 대머리도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나가 술이나 마시자!”

 쭈크리고 앉아있던 구금자는 무릎을 펴며 일어나더니 수도물 꼭지를 틀고 찬물에 세수를 한다. 그리고는 대머리를 따라 객실로 나왔다.

 “수길아, 오늘 밤 우리 둘은 여기서 날이 새도록 술을 마시는게 어때?”

 “글쎄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우는걸 보니 난 기분이 이상해진다.”

 “울기는 누가 울었다고 그래? 그런 말 듣기 싫어! 잔에다 술이나 부어 줘!”

 대머리는 구금자가 하라는 대로 술잔에다 술을 붓는다. 구금자는 취기 올라 한쪽으로 술이 질질 흐르는 술잔을 들고 대머리의 잔에다 탕 부딪치더니 턱을 쳐들고 꿀꺽꿀꺽 물마시듯 한잔술을 단숨에 굽을 낸다.

 “너 혹시 가정에 말못할 사연이 있는거 아니냐?”

 “사연은 무슨 사연, 그런 일 없어!”

 “혹시 너네 아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던지?...”

 “우리 아들?”

 구금자는 아들이란 말에 대뜸 눈길이 꼿꼿해 난다.

 “우리 아들이 어째? 청화대학엔 못 붙었어도 상해교통을 졸업했고 지금은 당당한 석사연구생이야. 히- 우리 청아는 생기기도 잘 생기고 머리도 비상하고 마음도 곱고... 너희들이 그 앨 못 봐서 그렇지 딸 가진 집들에선 모두 욕심낼거야. 최윤흰 그런것도 모르구...”

 구금자가 아들 자랑을 한광주리 늘여 놓는데 대머리가 다그쳐 묻는다.

 “최윤희가 어째서?”

 “아니야, 그건 대머리 네가 알일 아니거든. 호호호...”

 구금자는 지금 술을 많이 마셔 의식이 단순해지고 가끔은 자몽하는 상태이지만 금쪽같은 아들이 친혈육이 아니라는 그 무서운 비밀만은 의식을 초월하는 본능적인 모성애로 지켜내려고 악을 쓴다.

 “그럼 혹시 백일호가 밖에서 다른 녀자를 보는건 아니냐?”

 “호호 넌 점점 엉뚱한 소리만 하는구나. 그 량반이 그럴 사람으로 보이더니? 밖에서는 철저한 볼쉐위크야!”

 “밖에서 볼쉐위크면 어쩜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밖에서와 집에서는 딴 판이란 말로 말이다.”

 “... ...”

 “그럼 너보다 학벌이 높고 직위가 높다고 널 낮잡아 보는거냐?”

 “... ...”

 “아니면 또 뭐냐? 말 좀 해봐?”

 대머리가 여기까지 캐고 들자 구금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또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분명 너희들 둘 사이에 뭐가 있긴 있구나. 그렇게 속에다 앙금처럼 쌓아두지만 말고 훌 털어버려.”

 “어떻게 털어버리니?”

 “말로 해버리면 털어버리는거야. 이 대머리가 어디 다니며 말이나 쨀쨀 옮길 참새같은 사내가 아니라는것도 넌 잘알지 않어? 그러니 나한테 털어놓으면 안되겠냐?”

 구금자가 점점 더 슬퍼서 흐느끼며 울자 대머리는 마주 앉았던 쏘파를 옮겨다 구금자 곁에 놓고 손으로 구금자의 어깨를 다독여준다.

 “난, 난...겉으로는, 겉으로는 얼굴에 웃음을 바르고 다니지만 어, 흐흐- 속으론 피눈물을 떨구며 살아. 어, 억! 흐흐흑...”

 “글쎄 왜 그러느냐 말이다.”

 “난, 난, 강간을 당했던 몸이야!”

 “뭐야? 강간? 언제 일이냐?”

 이쯤 되자 술에 의식이 흐려진 구금자의 입에선 안나오는 소리가 없다. 그 놀라운 소리를 듣는 대머리도 대뜸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이젠 십년도 넘었어!”

 “어디서? 어쩌다가?”

 “우리 대학교 안에서...지금은 가로등이 많아 온 정원이 밤에도 대낮같이 밝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어... 밤늦게 도서실에서 나와 정원 수림속을 지나는데 갑자기 내 얼굴에 마대 같은게 씌워졌고 어떤 육중한 놈이 나를 어깨에 둘러메고 더 어둑진 구석으로 들어간거야... 내 입에다는 장갑 같은거 틀어막고...내가 녀자인게 어쩌겠니, 아무리 발악하고 몸부림쳐도 어떻게 그런 놈을 당해내겠니...”

 “그래서?”

 “그래서 더럽게 유린당하고 말았지... 지금 우리 동창모임을 거들어주는 왕주임이라고 있지 않니? 그 애 아버지가 당시 우리 대학교 보위처 처장이였어.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우리 집 침실에 누워 있었고 남편과 그 왕처장이 나를 지키고 있더구나...”

 “녀자들이 그런 수모를 당했으면 정말 통곡이 나올 일이였겠다. 그런 소문이야 바람처럼 빨리도 퍼졌을거고...”

 “소문은 퍼지지 않았어. 당시 어떤 학생 둘이 수림속에서 련애를 하다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인츰 보위처에다 알려 면바로 그날 밤 당직을 서던 왕처장이 젊은 보위간사들을 거느리고 그곳으로 달려갔는데 젊은이들은 도망을 가는 그 강간범을 쫓아가고 왕처장 한 사람만 내 얼굴을 알아보고 곧추 우리 집으로 업고 달려온 거래. 후에 왕처장은 어느 녀학생 하나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꾸몄대. 그래서 난 왕처장을 은인처럼 생각하고 또 그 사람 아들 왕주임도 남달리 귀여워 하는거야.”

 “그럼 백일호가 그 일로 너를 싫어한다는거냐? 그게 어디 네 잘못이냐?! 정말 그렇다면 그 자식 겉 다르고 속 다른 나쁜 놈이다.”

 “나를 싫어 하는건 아닌데 그 량반은 특별한 사람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수모를 당한 그날 저녁, 그 량반은 나를 진심으로 위로 해주었어. 절대 내 탓이 아니니깐 무서운 생각 다 털어 버리라고 말했고 또 미국에선 밤에 바깥출입을 하는 안해에게 남편들이 혹시 강간범을 만나면 대항하다 몸을 상하지 말고 순순히 몸을 바쳐라며 콘돔을 챙겨준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어. 그날 밤 나는 그렇게 너그러운 남편이 너무도 고마와서 그 품에 안겨 많이 울었어... 그런데 그후로도 몇번인가 정상적으로 부부관계를 가지던 량반이 차츰 주동적으로는 내 몸을 가지려 하지 않는거였어. 그래서 내가 주동이 되였는데 후에는 그것마저도 싫은지 잠자리를 따로 옮기는거야.”

 “그게 결국은 겉 다르고 속 다른거 아니고 뭐냐?”

 “꼭 그렇다고만 말할순 없어. 그 량반이 나를 끔찍히 생각하는건 예나 그 후에나 변함이 없었어. 그것만은 내 녀자의 감각으로 느낄수 있었어. 내가 만약 어디 아프다 하면 삼십리라도 업고 뛰여갈 사람이야.”

 “그래도 난 리해할수 없다. 부부간의 사랑에는 성생활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거야. 그래 고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백일호가 그걸 꺼려하며 너를 사랑한다는게 어디 말이나 되냐?”

 “그러니까 특별한 사람이라는게 아니겠니. 나도 그 일로 여러번 대들며 싸우기도 했어. 솔직히 좀 말해보라고. 그것이 싫으면 이 구금자란 몸 전체가 미워나고 싫어 나는게 아니냐고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량반은 절대 그런게 아니래. 솔직히 말하면 나와 살을 섞기는 확실히 싫어난대. 어쩌면 노린내가 물씬 풍기는것 같은 역겨운 환상이 떠오르기도 한다나.”

 “노린내 같은 환상?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글쎄 나도 그건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언젠가 노린내에 크게 질린적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 구금자란 안해는 정이 들대로 들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자기 몸의 절반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는 거야. 그래서 다른 이성의 몸에 딴 눈을 팔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고 ‘리혼’같은 단어는 그 량반의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대.”

 “허 참, 들을수록 벼룩이 방귀뀌는 소리 같다. 난 같은 사내라도 그런 말은 도무지 믿을수가 없구나.”

 “내 보기엔 우리 집 그 량반은 너 대머리하고는 완전히  류형이 다른 사람인것 같애.”

 “글쎄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너희 둘은 이름만 부부지 성생활은 안하고 살아왔단 말이냐?”

 “... ...”

 구금자의 긴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얼굴에서 란무한다. 설음이 북받쳐 동그란 두 어깨가 세차게 들먹인다. 대머리는 그제야 구금자가 왜 그렇게 슬피 우는지를 알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동창들중에서 제일 행복한줄로 알았던 구금자가 기실은 제일 가련하고 불쌍한 녀자라는 생각이 들어 긴 한숨이 나왔다.

 “허참, 백일호 그 멀쩡한 자식, 사람을 바싹 말리워 죽이는 재간도 있었구나!”

 “그러다가 영국으로 공부하러 갔어. 그 량반은 거기 가서 아마 많이 반성한것 같애. 전화에 여러번이나 ‘금자, 저녁에 고독하지. 미안해, 내가 반쪽남편구실밖에 못해줘서. 앞으로 노력할게...’ 이런 말을 자주 해왔어. 확실히 그 량반은 말한것과 같이 영국에서 돌아온 후로 노력을 했어. 그런데 안되는거야.”

 “왜?”

 “너무도 오래동안 쓰려는 생각을 포기하다 보니 그것이 살아나질 않는거였어. 그래서 몰래 둘이서 병원에도 숱해 다녔고 지금도 약은 줄 달고 있어.”

 “그래도 효과 없다는거냐?”

 “효과는 조금 있는것 같은데 이전과는 많이 달라.”

 “어, 그런데는 좋은 방법 한가지 있다.”

 “어떤 방법?...”

 “남자들이 그것이 살아나지 않을 땐 말이야, 젊고 고운 처녀를 붙여주면 인츰 살아난다고 하더라.”

 “그건 대머리 너 모르고 하는 소리야. 그 량반에겐 설사 그런 방법을 쓴다해도 통하지 않아.”

 “그래?”

 “호- 사람들이 백이면 백이 다 나를 보고 복이 많은 녀자라고 해! 내가 정말 복이 많은 녀잔가? 내가? 아-하하햐...오-호호효...”

 구금자는 턱을 쳐들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다. 언제봐도 단정하고 맵시 곱던 구금자가 아니라 갑자기 정신이 멎어 미쳐버린 녀자 같다.

 “야, 너 구금자답지 못하게 왜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구금자 다운거니? 말해봐? 속에선 피고름이 터져도 아프다 소릴 말고 그냥, 그냥 참고 있어야 구금자 답니? 눈에선 피눈물이 흘러도 그냥 핼쭉핼쭉 웃어야 구금자 답니?”

 구금자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대머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하긴 넌 정말 불쌍한 녀자다.”

 “불쌍만 하면 다야. 이 나쁜 자식아!”

 구금자는 두 주먹으로 대머리의 가슴을 마구 때리더니 그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대머리는 어찌 할바를 몰라 망설이기만 한다. 다른 녀성이라면 벌써 두 팔에 힘주며 뜨거운 품으로 꽉 끌어안아 주련만 지금 술에 취해 히스테리를 부리는 이 녀자만은 언제나 들어설수 없는 녀자 화장실 같고 넘지 못할 높은 벽처럼 보여왔던 대머리다.

 “너 정말 소설가 맞니?”

 대머리의 가슴에서 머리를 쳐든 구금자의 눈에서는 뜨거운 정욕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왜 그래?”

 “녀자들의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면서 무슨 개똥같은 소설이니?”

 “그래 알면 어째란 말이냐? 너는 다른 녀자도 아니고 구금자가 아니냐?”

 “구금자는 녀자가 아니니? 이 바보야! 남자가 그리운 녀자야! 그리고 굶어서 살아온 녀자야!”

 구금자는 흐트러진 머리로 대머리의 가슴벽을 탕탕 친다. 대머리는 두 손으로 구금자의 머리를 품에 꼭 껴안는다.

 “정말이다. 녀자들이 꼬리치면 이 대머린 참을줄 모르는 사내란걸 너도 잘 알지? 네가 이러면 난 당장 널 안고 저 안방 침실로 들어 갈테다.”

 “바보!...”

 “누가 바보야!”

 대머리는 사내답게 구금자를 벌떡 들어 품에 안고 안방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혼자서 두 사람의 옷을 홀랑 다 벗겼다...

 녀자들의 정조란 참으로 그 두께를 가늠할수 없는 일이다. 두껍다 하면 철벽처럼 두꺼워 지다가도 얇아진다 하면 종이장보다도 더 얇아져 손가락으로 다치기 무섭게 툭 터지니 말이다. 거기엔 고귀와 비천이란 계급의 계선도 없고 젊거나 늙거나, 잘 생기거나 못 생긴것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머리는 자기 손으로 알몸을 만들어 놓은 구금자, 언제 봐도 단정하고 반듯하고 례절있던 구금자를 찬찬히 내려다보고 있다. 이 구금자가 낮에 수영장 물속에서 손이 한번 몸을 슬쩍 스쳤다고 도고한 눈길로 쏘아보던 그 구금자와 볼기짝과 엉덩짝처럼 꼭 같은 한 녀자라는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주영주와 리혼하기 전부터 시작해서 숱한 녀성들과 딩굴며 살을 섞어본 대머리, 그래서 녀자들이라 하면 박사론문도 쓸수 있다고 큰 소리 쳐오던 대머리지만 오늘은 새삼스레 녀성들의 세계가 까다로우면서도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술에 취했어도 구금자는 지금 온 몸의 피줄이 쭉쭉 뻗치는듯한 격동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꼭 감고있는 두 눈에서는 행복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차츰 가슴에 불이 와닿는것 같았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분수와 같은 오르가슴이 샘솟아 올랐다. 스물다섯살, 처녀가 안해로 변할 때 백일호한테서 느껴보고는 오랜 세월, 참으로 오랜 세월 마치도 동면한 듯이 조용히 잠자던 그러한 쾌감이 온 몸에서 일시에 옴찔거리며 일어섰다. 아니, 지금 대머리는 구금자가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쾌감을 주고 있었다. 백일호의 몸에서는 사나이의 무궁한 힘을 느꼈다면 대머리는 녀자의 온 몸을 부풀게 하며 그것도 오래도록 몸뚱이 전체가 쾌락의 바다우에 둥둥 뜨게 하고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남자도 녀자도 땀을 동아리로 흘렸다. 두 동창생은 이제는 침대우에 나란히 누워 거센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야!- 아주, 아주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밤이다!”

 대머리는 기분이 좋아 홀딱 벗은 다리 하나를 허공에 높이 들었다 침대가 덜렁하게 훌 놓는다.

 “금자야!”

 “응?”

 “이제부턴 걱정하지 마!”

 “뭘 말이니?”

 “이 대머리가 수요될 때면 아무때건 전화 한통만 하란  말이야. 내 다른 일 다 제쳐놓고 무작정 달려올테니까.”

 “너 지금 뭐라니?”

 끓는 콩기름가마에서 물방울이 튀여 나오듯이 구금자가 펄쩍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속옷부터 주어 입는다. 구금자는 그렇게 대머리와 한몸이 되여 딩구는 사이 술이 퍼그나 깨여 폭 흐렸던 날씨가 차츰 개이듯이 맑은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던것이다.

 구금자는 먼저 단정하게 옷을 다 입은 다음 대머리의 팬티며 속옷이며를 벌거벗은 사내의 알몸우에 던져주었다. 어서 입고 일어나 앉으라는 말없는 호령이였다.

 “수길아 너 똑똑히 들어! 다시 할빈으로 날 찾아오는 날이면 그날은 내가 목매고 자살하는 날이야 알겠니?”

 속옷을 껴입으며 멀쩡히 일어나 앉던 대머리가 어리둥절  해진다.

 “넌 네 입으로 굶어서 산다고 하지 않았냐? 난 굶질 않아, 네가 불쌍해서 하는 소리야.”

 “아까는 내가 취해서 허튼 소릴 많이 한것 같구나. 그러니 술에 취해서 한말은 내 본심이 아니야!”

 구금자는 랭랭하게 한마디 내뱉고는 안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곧추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물을 틀어놓고 세수를 했다. 마주있는 거울에 물방울이 줄줄 흐르는 자기의 얼굴이 비꼈다. 네가 구금자냐? 네가 어찌 그런 짓을 저지를수 있단 말이냐? 거울이 그녀를 보며 골려주는것만 같았다. 아침에 동창들이 꺼내는 술주정뱅이들의 이야길 듣고 그렇게 우습다고 야단하던 네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 짓에 비하면 주정뱅들의 이야긴 아무것도 아니잖아? 구금자는 두 손으로 거울을 막았다. 거울에 자기 얼굴이 드러나는것이 부끄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구금자가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대머리도 어느새 객실에 나와 멀쩡히 앉아있었다.

 “수길아! 오늘 밤의 일은 내가 술취해 저지른거야. 난 아무리 녀자라 해도 내가 저지른 일을 절대 남에게 덮어씌우지는 않아.”

 “... ...”

 “그러나 이 일은 우리 둘만이 아는 영원한 기억으로 남기자. 그리고 처음으로 있은 한번이고 또 마지막 한번이라고 약속을 하자! 응?”

 “... ...”

 구금자는 대답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는 대머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간다.

 “난 아무리 어째도 내 남편 백일호를 사랑하고 있는거야. 백일호의 그 병도 조만간에 나아지리라고 믿어. 설사 영원히 낫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남편 백일호와 살과 살이 맞대이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습관이 되여 어느 정도 만족스럽기도 한거야. 그러니 방금 내가 한 약속 너도 제발 지켜주었으라면 고맙겠다. 내말 들었니?”

 “허허 약속 같은거야 얼마든지 지킬수 있다만, 너 구금자란 녀자가 다시 보인다.”

 “어째 요귀 같아 보이니?”

 “너 말 잘했다. 그래, 진짜 요귀 같다.”

 “호호 술 한잔씩 더 할가?”

 “그래, 꿈에 춘향이한테 홀리워 이불에다 사정을 한 기분이니 한잔이 아니라 석잔을 마셔도 괜찮아.”

 “넌 참, 우리 집 그 량반 내놓고는 내 맘속에 제일 가까운 이성 친구야.”

 “어째 오늘따라 네 말 고분고분 잘 들어서?”

 “아니, 다른 사람들은 너를 어떻게 평가할런지는 몰라도 대학시절부터 넌 마음이 항상 뜨거운 데다가 사내다운 기백이 있었고 거기다 천재적인 유머덩어리였어.”

 “나도 너를 방금 3분전부터 다시 본다.”

 “어떻게?”

 “녀자들이란 실패에 감긴 실과 같다는 말을 난 그대로 믿어 왔어. 그 실 끝머리를 찾기가 어려워 그렇지 일단 실머리만 찾으면 그 뒤는 술술 풀린다는 말 말이야. 그래서 한번이 있으면 그 뒤에 두번, 세번은 땅짚고 헤염치긴줄로만 알았는데 너를 보면서 지금은 도리머리를 젓게 되는거야.”

 “그럼 구금자라는 이 녀자는 그렇게 눅거리는 아니라는 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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