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8-12-23)=
'촌간부 도시살기'는 농촌건설 방해
농촌은 흙내에 절은 촌간부가 필요
조창호 선생의 "촌간부 도시에 집을 두고 있는 현상을 두고"를 읽고 나도 한마디 께끼고 싶다. 조창호 선생은 이렇게 화두를 떼고 있다.
"지금 갈수록 많은 촌간부들이 시내에 집을 두고있어 촌민들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을 뿐더러 사업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있는데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중에서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긴요한 문제의 하나라고 보아진다. "
맞다. 맞을뿐만 아니라 제일 먼저 문제를 공중에 제기한 그 자체가 돋보일 장거이다. 필자도 몇달 전에 고향마을에 갔다가 툰장이 집을 연길에 잡고 있다고 말할 때 마뜩하지 않은 생각이 들었으나 아내가 출국하고 집을 지키는 부모들도 연길에 있고 해서 아이도 연길서 공부시키다보니 연길서 '출근'한다고 설명하기에 그러려니 생각하고 말았는데 조 선생님은 이 문제를 우리 민족의 농촌건설 문제에까지 소급시켜 문제를 심각화하고 있다.
사실 그렇다, 이 문제는 농촌에서의 정상현상이 아니라 일종 사회의 이상한 현상이다. 방귀 뀌는데 변기에 앉아 기다릴 필요가 없듯이 농촌사업을 책임진 사람이 자가용을 타고 농촌사업을 영도한다는 것은 결국 똥도 누지 않으면서 변소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꼴을 연상시킬 수 밖에 없다. 이런 촌간부와 농민들의 관계는 '물과 기름'의 정도가 아니라 한손으로 부채질 하고 한손으로 김매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리라.
왜? 농촌간부가 도시에서 도시인의 생활을 하며 양반 시골행처럼 하고야 농민들과 감정이 얼마나 융합되랴. '방통'처럼 고의로 술만 마시며 정사에 태만하다가 장비가 오자 즉석에서 일일이 처리하여 기재의 능력을 과시하는 그런 경우도 아니다.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을 수 있는가? 같은 방향이면 가능할지 모르나 동서로 달아나는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가? 십상팔구 두마리 다 놓쳐버릴 수 있다. 집을 도시에 두고 거기에 차린 기업을 돌보는 경우라 할 때 농촌사업지도란 우스운 행각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정력이 제한되어 있다. 구두 신고 넥타이 매고 논두렁에서 모내기를 지휘한다든가 가끔씩 마른 땅만 골라 디디며 논갈이 하는 신사식농촌간부가 있다면 그게 얼마나 꼴불견이겠는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신분적인 어떤 숙명을 말하지만 이에 반하여 농촌간부는 그래도 농토에서 흙냄새에 절고 농민들과 조석으로 무릎 맞대고 의기투합되어야 바람직한 농촌간부의 형상이다.
농민들은 그런 '신사간부'를 수요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명지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떤 권력보좌이고 먹을 알이 얼마나 크든 농촌에 심신을 잠그고 헌신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내가 알건대 지금 크고 작은 농촌간부들에게는 음으로 양으로 먹을 알이 많은 것이다. 열에 열사람이 다 그렇다고 한몽둥이에 때려눕힐 수는 없지만 대개 다 권력과 먹을 알 때문에 양다리치기를 하는 것이지 부득이한 사정으로 억지 춘향질 하고있는 것이 아니다.
조 선생님은 "도시에 집을 잡은 촌간부들이 촌민들을 이탈하지 말고 사업에 영향을 주지 말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이다."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지으면서 기대를 걸고 있는데 이는 강건너 꾸짖기도 아니고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도 아니다. 농촌사업에 영향주지 않고 참으로 진정 농촌건설에 투신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으며 공연히 땀을 흘리는 우스운 기관은 창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살손을 붙일 마음도 없으면서 공연히 팔을 걷어올리며 "헹야헹야" 하는 그런 응원군이 되지 말고 솔직하자! 도시에서 살 능력이 있고 살고픈 마음이 있다면 농민이기를 그만두면 되지 않는가? 자기 몫의 밭을 차지하고 어디에 가 살든 그건 아무도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농촌지도자의 자리만은 넘보지 말고 겸직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책임진다 한들 얼마나 책임질 수 있으랴. 자가용을 몰고 '자주 농촌에 들어가는'간부는 자칫 허울이 요란한 '사또님'이 아니 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물론 지금 많은 촌마을에 간부를 할만한 젊은사람들이 금싸락인 것은 사실이여서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식의 그런 심리로 현재의 '농촌사회 이상한 현상'을 묵인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확실히 농촌의 비극이지 정극으로 승화시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