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호(王星昊∙22) 9단이 지난달 27일 열린 제40회 동리(同裏)배 중국 바둑 천원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중국 신예 바둑계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기사로 꼽히는 그는 상해에서 태어나 5세 때 바둑을 시작해 7~8세 무렵 프로의 길에 들어섰다. 9세 때 홀로 북경으로 건너가 수련을 이어갔고 11세에는 항주(杭州)로 옮겨 실력을 갈고닦았다. 수년간 또래와 떨어져 여러 도시 옮겨 다니면서 바둑판에 몰두해 온 시간이 그의 유년기를 채웠다.
왕성호 9단의 바둑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슬럼프와 방황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지난 2015년 입단대회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며 대회 전 목표로 세웠던 본선 50위 진입도 가까스로 지켜낸 수준에 그쳤다.
그는 "그땐 막막했고 바둑을 계속해야 할지조차 확신이 없었다"며 프로의 길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가족의 리해와 지지, 코치의 끈질긴 지도 속에 그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고 항주에 머물며 차분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이를 악물고 버틴 끝에 성과도 잇따랐다. 2015년 말 푸파(浦發)은행배 아마추어 바둑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6년 초에는 몽백합(夢百合) 아마추어 대회 정상에 올랐다. 중국 전국 아마추어 대회 2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그는 예상보다 빠르게 입단에 성공했다.
난해 4월 28일 왕성호(王星昊) 9단이 소주(蘇州)시 동리(同里)에서 열린 중국 바둑 천원전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기를 돌아보며 그는 "그저 무사히 넘기기만을 바랐는데 예상과 달리 좋은 성과를 냈다"며 "이때가 내 바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입단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며 랭킹이 계속 하락했다. 또래 기사들이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어서 그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긴 침체기를 지나면서 그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과 꾸준함을 익혔고 반복된 훈련 속에서 인내를 쌓아갔다. 2018년 중반 단체전과 개인전, 승단전을 연이어 치르며 조금씩 경기 감각과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후 그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하루 6~8시간의 고강도 훈련을 이어갔다.
그간 축적된 실력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졌다. 2023년에는 중국프로바둑선수권대회와 제5회 중·일·한 섭위평(聶衛平)배 바둑대사대회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프로 9단에 올라 당시 중국 최연소 9단 중 한 명이 됐다. 2024년에는 여러 주요 대회의 결승에 오르며 정상급 기사와의 대결 속에서 값진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그의 커리어는 정점을 맞았다. 4월 제1회 북해(北海) 신역(新繹)배 세계바둑오픈에서 우승하며 상호(常昊) 이후 16년 만에 상해 출신 남자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이어 천원전과 아함(阿含)·동산(桐山)배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왕성호 9단은 바둑이 고독하고 지구력을 요구하는 종목이라며 "한 판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며 수를 읽어야 해 정신적·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바둑은 기량뿐만 아니라 멘털과 집중력의 싸움이라며 오랜 슬럼프를 거치며 다져온 경험이 지금의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신화통신 한국어 뉴스 서비스
편집:김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