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시간은 늘 느리게 흐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유독 빠른 장면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2026년 1월 5일, 북경 인민대회당.
습근평 중국 국가주석과 이재명 한국 대통령이 다시 마주 앉았다.
불과 두 달 전, 경주에서 이미 한 차례 만난 뒤였다.
짧다면 짧고, 이례적이라면 분명 이례적인 간격이다.
'속도'가 말해주는 것
중국 외교에서 '속도'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상황을 랭정하게 판단했을 때, 더 늦출 리유가 없다는 뜻에 가깝다.
습근평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과 한국은 옮길 수 없는 이웃이고, 떼려야 떼어낼 수 없는 협력 파트너다"라고 말했다.
이 표현에는 과장이 없다.
이 말은 수사가 아니라 현실 진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며, 산업과 공급망에서는 이미 분리하기 어려운 관계.
멀어지고 싶다고 해서 멀어질 수 없는 사이라면, 결국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관리다.
경주에서 북경으로 이어진 맥락
이번 북경 회담을 리해하려면 두 달 전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함께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량국 정상은 경주라는 장소를 택했다.
신라와 당나라의 교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다.
이 선택은 '과거를 소환하려는 제스처'라기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련결돼 있었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이번 북경 회담은 그 경주 회담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관계를 새로 만들기보다는, 흔들렸던 궤도를 다시 맞추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만남은 관계의 '복원'이지, '회귀'는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로 가기 위한 정리였다.
출처: 중국국제방송
편집: 장성복
역사 이야기가 다시 나온 이유
이번 회담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80여 년 전의 기억이 다시 언급됐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이 대목을 과거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맥락이다.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과거의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역사는 감정의 도구가 아니라,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점이다.
실용으로 이어지는 대화
이번 회담 이후 과학기술, 환경, 교통, 경제 협력 등 15개 분야의 협력 문서가 체결됐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중국은 다음 5년을 준비하고 있고, 한국 역시 산업과 사회 구조의 전환기에 서 있다.
인공지능, 친환경 산업, 고령화 대응.
이 분야들은 경쟁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협력 없이는 해법을 찾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번 회담은 '지금 당장 성과를 내자'기보다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길을 열어두자'는 선택에 가깝다.
민심을 의식한 메시지
시 주석은 회담에서 "인적 왕래를 증진하고 청소년, 언론, 체육, 싱크탱크, 지방 등 각 분야의 교류를 전개하여, 긍정적인 서사가 민의의 주류가 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베이징에 도착한 4일, 재중 한국인 간담회에서 "오늘이 한중관계가 기존의 부족한 부분들을 다 채우고 다시 정상을 복구해서 앞으로 더 깊고 넓은 한중관계 발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관계가 오래 가려면, 정치보다 민심이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중한 관계 역시 정책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줄어들수록, 작은 오해는 쉽게 증폭된다.
이번 회담은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한 최소한의 공감대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겨울의 베이징에서
베이징의 1월은 춥다.
그러나 외교에서 계절은 늘 고정돼 있지 않다.
이번 만남이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하나다.
서로를 밀어내는 선택 대신, 대화를 이어가는 쪽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에,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1월의 베이징에서 열린 이 만남이 당장 꽃을 피우진 않더라도, 중한 관계의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장면이었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CGTN 조선어부 논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