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부터 1945년까지 14년간의 피어린 전투와 14년의 간고분투, 4억 인민의 불굴의 저항으로 중화민족과 인류 평화의 력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14년 항전은 바로 백산흑수에서 시작되였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침략자는 천인공노할 9.18사변을 감행했다. 다음 날, 중공 만주성위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주 무장 점령에 대한 선언'을 발표하고 동북 인민들에게 항전할 것을 호소했다. 생사존망의 기로에 선 흑룡강 군민은 일본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최전선에 섰다. 치치할 강교에서 조직적이고 대규모의 효과적인 저항을 전개했다. 동시에 중공 만주성위와 흑룡강 각급 당 조직도 투쟁 속에서 성장했다. 1932년 1월, 할빈은 동북지역 항일투쟁 지휘 중심지가 되였다. 할빈시 남강구 광망가 40번지에 위치한 중공 만주성위 기관 옛터는 그 시대 력사의 견증물이다. 당 중앙의 ‘1·26’ 지시 편지는 바로 이곳에서 발송되여 항일민족통일전선 구축 방침을 명확히 했다.
그때부터 백산흑수에서 항일의 세찬 불길이 타올랐고, 흑룡강은 더우기 동북 항일련군의 ‘주전장’이 되였다. 동북 항일련군 11개 군 중 9개 군과 제2군의 일부가 모두 흑룡강에서 전투를 치르고 활동을 벌였다.
‘가장 먼저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 가장 오랜 기간, 가장 가혹한 조건하에서 항전을 견지해온 동북 항일련군 장병들의 피와 눈물로 씌여진 서사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정우 장군은 나무뿌리와 나무껍질, 풀뿌리로 끼니를 에우면서 끝까지 싸웠고, 조상지 장군은 시각을 거의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타고 적을 사살했으며, 진한장 장군은 왜놈들이 그의 두 눈을 도려냈는데도 “죽어도 망국노는 되지 않겠다”고 웨쳤다…가렬처절한 투쟁 속에서 동북 항일련군의 창설자와 주요 지도자 대부분이 전사하였다. 그중 군급 이상 지휘관만 30여명이나 희생되였는데 이는 세계 전쟁 사상 유례가 드문 일이다.
항일련군의 전장에는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았다. 조일만이 아들 녕아에게 쓴 유서, 팔녀투강 그리고 수많은 무명의 항일련군 전사들...14년간의 간고한 투쟁 속에서 동북항일련군은 수십만 일본군과 괴뢰군을 섬멸하고 제지해 전국 항전을 힘있게 지원하였고, 또한 피와 생명으로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의 승리의 비장하고 빛나는 한 페지를 엮었다.
출처: 흑룡강라디오텔레비전방송 뉴스채널
편역: 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