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경제 선진국에서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는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중국산 제품에 145% 관세 폭탄을 투하했고, 중국은 125% 보복 관세로 응수하며 관세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비록 경제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으나, 이는 단순한 경제 헤게모니 싸움의 차원이 아니다. 패권을 지키려는 제국의 몸부림이다.
트럼프의 목표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미국의 리익을 가로채는 국가들은 모두 공격의 대상이다. 여기에는 진영도 동맹도 없다. '미국의 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일본에 대해서도 가혹한 압박을 하고 있다. 전통 우방인 유럽련합 국가들과 영련방(英聯邦) 국가들도 공격 대상이다. '너희는 조금씩 갉아 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라는 운동권 가요의 가사 처럼 미국은 벼르고 벼르던 칼을 빼들었다.
관세 전쟁의 시작과 끝은 중국을 겨냥한다. 미국은 구소련에 대한 견제와 제조업 생산기지의 필요성 때문에 미중 수교 이후 줄곧 중국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은 단순 생산기지에서 세계 경제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중국은 이제 국제 관계와 군사, 경제, 기술 등 전 부문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유일 패권국가를 지향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은 제조업이 없는 나라이다. 금융과 군수산업, 항공ㆍ우주 산업, AIㆍ바이오 산업 등을 통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의 왜곡된 산업구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마스크와 주사기를 생산하지 못해 수입에 의존하는 초강대국의 우울한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과 제조업 유치 작전은 이같은 상황이 배경인 것이다.
세계는 지금 경제혼란을 겪으면서도 미중 관세 전쟁의 향배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의 최종 목표가 중국이라면 미중 합의 없이 관세 전쟁이 종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 이외의 국가들에게는 관세 유예와 개별 협상이라는 출구를 제공한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고강도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관세 전쟁도 일종의 전쟁이라면 승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초반 기세는 미국이 잡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패배하는 쪽은 미국일 것이다. 몇가지 측면에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사회의 지도국가로서 지켜온 권위를 잃었다. 돈을 앞세워 동맹의 가치를 내팽개친 국가는 더이상 글로벌 거버넌스의 리더가 될 수 없다. 이제 미국의 약속을 믿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둘째, 미국은 민심이 폭발하는 나라이고, 수시로 선거를 통해 심판받는 나라이다. 이미 미국 전역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는 '왕은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거리로 나섰다.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도 관세 전쟁의 장기화로 래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중국은 당의 령도로 민심이 안정화된 나라다. 또한 중국인은 인내심이 강한 민족이다. 똑같이 힘든 상황이어도 중국의 지구력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애플이 없으면 화웨이를 사고, 테슬라가 없으면 비야디를 사면 된다. 아편전쟁 이후 서방 국가들이 벌인 침략과 수탈의 력사를 기억하는 중국은 결코 미국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셋째, 글로벌 거버넌스 경쟁에서 미국이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을 악마화하는 반중국 봉쇄전략을 펴왔다. 그러나 이제 관세 전쟁으로 이같은 봉쇄전략의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돈 때문에 동맹을 팽개친 미국에 대한 반감이 국제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25% 관세 폭탄과 주한미군 주둔비 10배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에 대한 거부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습근평 중국주석은 미국의 공격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습 주석은 4월 14~18일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3국을 순방하며 우방국과 연대를 다졌다. 이와 함께 러시아·브라질 등 신흥 경제대국들의 모임인 브릭스(BRICS) 회원국과의 연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의 도발에 역포위 전략으로 응수한 것이다.
넷째, 중국은 이미 미국의 경제 도발에 대비해 내수를 강화하는 쌍순환 경제의 틀을 만들었다. 수출이 저조해지면 내수로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미국 유권자의 주류인 중산층은 중국산 소비재 가격이 폭등하면 가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향후 1개월 후 월마트의 재고가 소진되고 사재기한 소비재가 동나면 미국 소비자들은 트럼프식 관세 전쟁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다. 시간은 트럼프 편이 아니다.
트럼프의 무모한 관세 전쟁은 시점도 방식도 잘못됐다. 그는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에서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시점에 미국 기득권층만을 위해 관세 전쟁을 도발했다. 왕이 아닌데 왕처럼 행동하고 군림했다. 헌법 위반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와 같이 기괴한 정치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중산층과 서민은 물론 동맹국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가난한 국가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은 승자인 듯 보이지만 결국 패자(敗者)는 미국과 트럼프가 될 것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