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빈손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만큼 빈한하고 외로운 신세를 일컫는 말이다. 동서고금에 적수공권으로 태어나 위대한 길을 걸은 지도자들이 많다. 중국 역사에서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을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원나라 말기 중국 안후이(安徽)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탁발승 등 온갖 고행을 거친 끝에 명나라를 세워 황제가 되었다. 한마디로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이나 미천한 출신으로 일본 전국시대 최고의 자리인 관백에 오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그런 지도자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과 지략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적수공권형(型)의 지도자들이 여럿 있다. 산업화 시대의 길을 연 박정희(朴正熙)와 민주화의 지도자 김대중(金大中)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북 선산에서 빈농(貧農)의 자식으로 태어난 박정희와 전남 하의도에서 중농(中農)의 서자로 태어난 김대중은 정치 역정에서는 라이벌이었으나, 그 태생의 환경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재명(李在明) 역시 적수공권형 지도자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는 경북 안동의 빈농에서 태어나 출향 후 경기도 성남에서 온갖 가난을 겪으며 성장한 소년공 출신의 지도자이다. 그의 아픈 가족사는 대한민국 성장의 희생사(犧生史)이다. 성장의 과실을 차지한 권력과 재벌에 짓밟힌 민중의 삶을 살아낸 이가 이재명이다.
적수공권형 리더들은 늘 기득권의 공격 대상이었다. 김대중이 당내에서 비주류에서 주류가 되는 험난한 여정을 겪은 것 처럼 이재명도 그런 길을 걸었다. 그는 지난 2017년 첫 대선 도전 이후 친문(親文)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지금도 상당수 친문 정치인들은 그를 돕지 않고 있다. 만일 지난 대선에서 친문이 진심으로 도왔다면, 문재인 정부 실세 총리를 지난 이낙연(李洛淵)이 그를 도왔다면, '윤석열(尹錫悅) 괴물정권'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기득권 정치인들은 그냥 이재명이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0.73% 표차로 패배했다.
그러나 깨어있는 국민과 당원들은 그들의 생각과 달랐다. 이재명은 민주당내 기득권 세력의 비토로 대선에 패배한 것이고, 왜곡된 패배는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70%가 넘는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 대표로 복귀했고 지난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승리로 당원들에게 보답했다. 오뚜기 같은 그의 정치 리더십은 무엇일까? 윤석열 정권의 하수인인 정치검찰의 온갖 공격을 이겨내는 그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간난(艱難)한 삶에 굴하지 않고 살아낸 그의 생존력이다.
이재명 리더십은 무엇인가? 그의 리더십을 규정하는 아이콘은 무엇인가?
첫째, 생존력이다. 어린 시절 부터 지금까지 그는 가난과 폭력, 따돌림 속에서 살아남았다. 자신이 몸 담은 당에서 조차 그는 변방의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 정치인이었다. 대선 후보가 되고 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그를 향한 공격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가 싫다고 당을 떠난 이들도 있다. 그래도 그는 살아남았고 생존자(survivor)가 되었다. 그 자신이 그렇듯 그는 생존의 위기에서 살아온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우뚝 설 것이다.
둘째, 실용주의이다. 그의 삶은 실용 그 자체였고, 그가 정치 입문 이후 보여준 리더십은 실용주의였다. 그것은 실사구시와 통하고 '항산(恒産)'과 통한다. 그는 관념 보다 실적을 선호한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나 화려한 레토릭 보다 효용성을 중시한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그는 일관되게 실용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셋째, 스피드와 결단력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조정이 필요한 국정에서 우유부단함은 가장 나쁜 것이다. 이재명은 빠르게 결단하고 실행한다. 오랜기간 방치되었던 경기도 계곡 정비 사업이 대표적이다. 어떤 문제든 빠르게 결론을 내는 것이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것보다 낫다. 윤석열 정부에서 의대 정원 문제로 1년 넘게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것은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이다. 고도성장에서 저성장으로 돌아선 지 이미 오래이고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 양극화, 남북분단 구조 등은 우리의 미래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사회적 분열과 이념 갈등도 내상(內傷)의 수준에 이르렀다. 위기의 시대에는 비상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스피드와 효율성이 필요하다. 이재명의 리더십이 시대정신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