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시조선족로인협회 중산분회의 김무영로인(89세)이 지난 1월 24일, 병이 악화되여 병원에 입원했다. 한평생 사업에만 몰두하고 남의 일에 발벗고 나서다 보니 그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해졌고 아내와 두 아들이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좋다는 약을 다 써봤지만 김무영의 병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혼미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김무영은 아내 김금이에게 “여보, 금년 로인협회 회비를 냈소? “하며 물었다. 중병으로 앓고 있는 령감이 생뚱같이 로인협회 회비말을 꺼내자 아내는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회비를 바쳐선 뭘해요?”라고 대답했다. 김로인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정색해서 말했다. “숨이 붙어있는한 나는 로인협회 회원이요. 오늘 당장 가서 회비를 바치오!” 세월의 풍파와 병마의 시달림으로 몸이 바싹 여위고 얼굴엔 피기라곤 전혀없는 령감의 초췌한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아내의 코마루가 대뜸 찡해났다. 로해방군전사, 로간부, 로당원으로서 올곧은 마음으로 사업에 충실하고 한평생 베풀기만 한 령감의 지난날이 필름처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1937년 3월 길림성 영길현 백마부촌에서 태여난 김무영은 여섯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다가 1952년 2월에 16세의 새파란 나이에 항미원조 전선으로 달려갔다. 3년 동안 부대에서 엄격한 군사훈련과 사상교육을 받은 김무영은 제대한 후 대학에 진학했고 이어 영길현 인민은행, 사회보험회사, 사회보장국에서 근무했다. 1970년 8월에 입당한 그는 차츰 조선족 사회에 눈길을 돌리고 사회봉사와 불우이웃 돕기에 적극 참여했다.
지난 세기 90년대초, 대련시조선족로인협회 비서장직을 맡은 김금이는 총회의 악기, 무용복, 음향설비 등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가 없는 고충을 남편 김무영에게 말했다. 김무영은 아무 군소리없이 꼬박 열흘 동안 점심이면 빵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혼자힘으로 벽을 칠하고 천정을 수선하는 등 일을 깔끔히 해내며 창고를 마련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협회 로인들과 함께 여러가지 부업을 하여 번 돈 3만원을 협회에 기부했다.
1998년 3월, 김무영은 대련시로인협회 중산분회에 참가한 후 늘 로인들에게 혁명렬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각종 문예활동에 적극 참가하는 한편 설맞이 축제, 단오절, 국경절 등 협회모임이 있을 때마다 기부금을 쾌척했는데 20여년래 수천원을 협회에 기부했다.
2005년 중산분회 한가정 세식구가 가스중독으로 사망했을 때 김무영은 선참으로 후사처리를 도와주었으며 리찬국 회장의 집에 화재가 났을 때 위문금을 전달했다.
한번은 외출후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쓰러진 일면식도 없는 한족로인을 발견했고 로인을 부축하여 벤치로 이동한 다음 자식들에게 알려주었다.
장장 60년 동안 남편과 함께 기쁠 때 함께 웃고 고달플 때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살아온 김금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되새기며 오늘 회비를 바치라는 그 뜻을 깊이 깨달았다. 그는 그날로 중산분회 회비 200원과 총회에 바치는 200원을 빨간 봉투에 넣어서 협회에 전달했다.
한평생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온' 김무영로인은 지난 2월 13일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로인협회를 자기집처럼, 로인들을 한집안 식구처럼 여겨온 김로인의 인생이야기는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출처:료녕신문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