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동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계묘년(癸卯年)의 대문이 열리자 두 귀를 쫑긋 세운 토끼들이 깡충깡충 뛰면서 토끼해가 왔다고 환성을 울린다.
반갑구나, 하나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씨(兎氏)네 형제자매들아!
루루천년 인류와 더불어 이웃으로 공존해온 토끼는 천성적으로 어질고 착한 심성을 지니여 남과 싸우거나 남을 해코지할 줄 모르는 너무나 량순한 족속이다.
소음이 적은 평화로운 환경에서 조용히 풀이나 뜯어먹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 그 옛날 초야에 묻혀 배만 곯치 않으면 그것을 최상의 행복으로 간주하던 우리네 민초들의 소박하고 순진한 삶을 방불케 한다.
토끼는 확실히 방대한 동물군체 속의 약자이다. 마음이 약한 데다가 덩치가 크지 못하고 뼈가 굵지 못하여 힘이 약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포악한 무리들의 강압과 폭력을 피하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 다름아닌 약자의 숙명을 살아야 하는 거다.
하지만 약자라고 하여 마구 얕잡아보아서는 안된다. 약자에게도 이 험한 풍진세상을 살아나가는 자기만의 생존방식과 무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고전우화 <토끼전>을 본 사람이라면 다 알다 싶이 토끼는 꾀로서 강한 자를 이기는 령리한 존재이다. 말하자면 자라의 속임에 들어 룡궁으로 갔다가 자기의 간을 빼내여 약으로 쓰려는 것을 알자 기절초풍한 것이 아니라 아주 침착하고 태연하게 자기의 간은 해빛에 말리우느라 바위에 널어놓고 왔기에 가져오겠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것은 죽음을 앞에 놓고 지혜로 살아난 토끼의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한번은 해빛 좋은 풀밭에서 낮잠을 자다가 독수리의 발톱에 걸려 죽게 되였는데 토끼는 굴 속에 두고온 보물주머니를 가져다주겠다고 꾀를 부려 요행 살아났었다.
또 한번은 비가 멎은 뒤 버섯 따러 갔다가 사흘이나 굶은 승냥이를 만나 당장 잡아먹히게 되였다. 그때 토끼는 크고 먹음직한 독버섯을 내놓으면서 “승냥이님, 여기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버섯이 있어요. 먼저 이걸 맛보세요.”라고 하였다. 결국 승냥이는 토끼가 준 독버섯을 먹고 배를 끌어안고 입에 거품을 물더니 죽어버렸고 토끼는 “랄랄라랄랄라” 노래 부르며 깡충깡충 뛰여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어느 해 겨울에는 강에 나가 얼음구멍을 뚫고 고기 잡이를 하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내 오늘은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하면서 으르렁거리자 “대왕님이 오셨군요. 제가 고기를 많이 잡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대왕님이 꼬리를 이 얼음구멍에 넣으면 숱한 물고기가 매달려 나온답니다. 한번 해보시라구요” 하고 꼬드기였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해난 호랑이가 토끼의 말대로 꼬리를 얼음구멍에 밀어넣었는데 한참 있다가 꺼내자고 보니 얼어붙어 빼내지 못한 채 나중엔 얼어죽고 말았다. 곁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토끼는 손벽을 치면서 깔깔깔 웃었으니 이거야 말로 꾀를 부려 목숨을 건진 또 하나의 재미 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약자의 정감과 의념을 민간문학으로 표현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토끼를 거짓말대장이요, 한심한 대포쟁이요 하면서 비하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그건 아니다.
토끼의 속임수는 음모궤계와 사기공갈을 생존수단으로 삼는 간악한 무리의 거짓말이 아니라 생사의 긴요한 관두에서 흉악한 자를 전승하는 꾀와 영특함 즉 놀라운 지혜와 슬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령 약자에게 지혜와 슬기라는 이 무기마저 없다면 그 운명은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토끼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삼키여 속으로 떨구는지 아무리 험악한 환경에 처해도 하늘이 무너질듯한 슬픈 일이 닥쳐도 겉으로 눈물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도 토끼는 눈물이 약자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장식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보면 그것은 현실을 정시하고 생활을 사랑하는 어질고 참한 것들의 내강(內强)적인 의지와 정신이 아닌가 싶다.
한어성구에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성구가 있다. 토끼는 갑자기 닥쳐오는 재난과 위기의 경우를 대비하여 사전에 굴을 세개씩 파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파놓은 굴 옆의 풀은 웬만해서는 다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먼 곳으로 갈 수 없는 그런 위험한 시기에 먹을 ‘량식’으로 남겨놓은 것이란다.
이 역시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토끼의 령리한 선견지명이라고 하겠다.
토끼는 또한 생장과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이름이 있다. 그것은 빨리 크고 한해의 생육 차수가 3~4회 되는데 그것도 매번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 재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토끼는 자신의 생존의식과 생존방식으로 량순함과 령민함 그리고 지혜로움과 슬기로움의 복합적인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다름아닌 이런 상징이미지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토끼이기에 인간사회에서 긍정적인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다 알다 싶이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 약자의 생존은 토끼처럼 지혜와 슬기에 의한 눈물겨운 분투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지혜와 슬기도 벼려야 날이 서고 닦아야 녹이 쓸지 않거늘 그리하여 나는 밝아오는 계묘년의 대문가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끼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고이 접어두었던 글귀를 올린다.
이 세상의 토끼와 같은 모든 약자들이여!
조물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만들었던지 간에
약자에게도 이 세상에 살아남을 권리와 의무가 있거늘
지혜와 슬기라는 이 자랑스러운 전통의 무기를 사랑하시라!
반짝반짝 닦아서 늘 가슴에 넣고 다니는 것을 잊지 마시라!
그리고 그것으로 야수들의 위협과 공갈을 싸워서 이기시라!
그리고 그것을 눈물겨운 약자의 장편서사시에 써넣으시라!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 부끄러운 약자가 아니라고!
출처: 연변일보
편집: 장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