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으로서 산동성 청도 현지에서 이벤트문화의 한떨기 꽃으로 활짝 피여나 큰 주목을 받고 있던 ‘조선족이벤트’, 세계적인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 그 현주소를 알아본다.
-영광의 시간은 짧고 침체의 시간은 길어
청도 조선족이벤트 황금기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2010년 초반까지라고 볼 수 있다. ‘금몽원’, ‘해피데이’, ‘서울웨딩’, ‘아리랑’ 등 대표적인 이벤트회사들이 기라성처럼 나타나 조선족이벤트 주류를 이루었을뿐만 아니라 한국 이벤트회사인 ‘김씨웨딩’도 청도에 진출하여 독특한 풍경선을 이루었다.
연변의 업체 ‘해란강민속궁’이 청도에 진출하여 화려한 례식장문화를 선물했고 몇개의 례식장을 동시에 가동할 수 있는 ‘갤럭시’가 뒤이어 오픈했으며 ‘제일식당’, ‘진달래랭면’ 등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음식점에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앞세우며 고객몰이에 나섰다.
이벤트문화가 형성됨에 따라 상가가 즐비한 곳에서는 우리 말 간판으로 된 이벤트회사를 쉽게 볼 수 있었고 큰상 차림을 전문 도맡는 사람, 촬영사, 사회자, 가수, 운송, 현장배치 등 다양한 일자리가 생겼으며 이벤트에 기대 살아가는 군체가 형성됐다.
그러나 2008년 북경올림픽이 끝나고 정부의 환경보호 조치가 강화됨에 따라 임가공 위주로 환경오염이 상대적으로 많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한국기업과 조선족기업들은 하나 둘 청도를 빠져나가기 시작, 재청도 조선족과 한국인 30만 시대는 반토막 났다.
인구류실과 함께 조선족이벤트회사는 된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해피데이’, ‘아리랑’, ‘금몽원’ 등 대표적인 회사들이 2015년을 선후하여 문을 닫았고 청도 주요 거리를 이색적으로 장식했던 ‘조선족이벤트회사’는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벤트회사 전성기는 그저 10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청도에 진출한 후 10여년간 이벤트회사를 경영했다는 김모 녀사(연변 출신)는 조선족 이벤트회사가 저조기에 들어서자마자 회사를 접었다면서 참으로 명지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했다.
김모에 따르면 한국나들이가 쉬워지고 국내에 있는 친척보다 한국에 체류해있는 친척들이 더 많은 상황으로 역전함에 따라 한국에 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보편 현상으로 되였다고 한다.
이벤트회사들이 불경기를 맞으면서 그에 따라 결혼, 환갑, 아기 돌생일을 상대로 사업을 벌였던 례식장에도 불똥이 튀였다. 청도의 대표적인 한식업체로 고품격의 례식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해란강민속궁’과 ‘갤럭시’는 직격탄을 맞았고 청도는 급기야 ‘조선족례식장’이 실종된 시대를 맞게 되였다.
“새로운 음식을 륙속 개발하고 무상 서비스를 아무리 많이 제공해도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불경기로 포기상태에 놓여있는, 례식장이 달린 음식점을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인수 받고 땀동이를 쏟았던 오사장(가명)이 씁쓸하게 말했다. 잔치 손님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려고 노래방까지 새로 증설했으나 고객몰이에는 실패,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까지 터지자 그는 아예 문을 닫고 말았다.
그렇다면 조선족이벤트 위기를 몰아온 것은 ‘코로나19’와 ‘출국결혼’이 전부 원인일가?
-실종된 위기의식, 일감은 많아도 할 일은 없어
“조선족이벤트는 위기의식이 없었기에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청도에서 20여년간 이벤트촬영을 해온 김은권(1965년생)씨의 말이다. 김은권씨는 한국의 거물급 인사들이 청도에 올 때마다 촬영사로 지정될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촬영사이다. 그는 일본회사 총경리 통역 출신으로서 투철한 사업의식이 몸에 배여있는 베테랑이다. 남들이 컴퓨터제작을 모를 때 김은권씨는 컴퓨터제작을 했고 다양하고도 립체적인 화면 조합으로 많은 고객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런 그였지만 동족끼리의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스스로가 자꾸 가격을 깎으니까 다 죽고 말았지요.” 김은권씨가 씁쓸하게 입을 다셨다. 김은권씨는 ‘한식’이 브랜드화에 성공한 것처럼 조선족 촬영제작도 기술적 우위를 앞세워 “브랜드화에 신경 썼더라면 또 다른 결과를 예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하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조선족과 한족 이벤트를 살펴보면 조선족이벤트는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세련된 반면 한족이벤트는 복잡하고 장중하고 분주하다. 또한 한족이벤트회사에는 곡예(杂技)에서나 쓸 것 같은 이색적인 소도구들이 많다. 이들은 매 한가지 서비스를 추가할 때마다 비용을 추가한다. 따라서 한족이벤트회사는 가격이 고객의 수요에 맞춰 널뛰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크나 조선족이벤트는 간결하고 단조로운 탓으로 가격을 올려붙일 공간이 없다.
“한류문화가 한창 흥기할 때인데도 저희들은 고객에게 거기에서 거기라는 이미지만 심어주었을 뿐 한류문화 붐을 타지 못했습니다.” 2006년부터 이벤트회사를 경영하는 한편 조선족 거주 중국 지역과 한국, 조선족과 한족의 이벤트문화에 대해 조사연구를 했다는 정씨가 말했다.
한족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에 대한 고민을 조금만 더 깊게 했더라면 조선족이벤트는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라는 것이 정씨의 견해였다.
정씨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청도 현지의 몇개 호텔로부터 호텔의 이벤트 부문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받았었다. 그러나 정씨는 그것을 포기했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잘나가는 판에 비싼 입주비를 지불하고 호텔에 입주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다고 정씨는 아쉬움에 젖어 말했다. 정씨 대신 호텔에 입주한 한족이벤트회사는 그후 크게 발전했으나 자기들은 한족이벤트회사로부터 자질구레한 일감이나 받아하는 하청업체로 전락되고 말았다고 했다.
이벤트는 민감한 서비스업종으로서 참신함이 생명력이다. 창의적인 것을 시도하려면 투자가 따라가야 하나 조선족이벤트회사는 후속 투자에 신경 쓰지 않고 번마다 뼈국처럼 우려먹기만 했으며 업그레이드할 최적기를 놓쳐버렸던 것이다.
“혼례이벤트에 관한 전시회도 국내외에 많습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조선족이벤트회사 사장들중에서 전시회에 참가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발품을 팔며 다니지 않아도 잘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추가로 더 투자하지 않아도 일감이 넘친다는 안온한 생각에 묻혀 조선족이벤트회사는 서서히 시간 속에 묻혀갔다.
자기의 특색과 브랜드가치를 지키지 못한 탓으로 “한족이벤트회사에 있는 것이 조선족이벤트회사에는 없지만 조선족이벤트회사에 있는 것은 한족이벤트회사에 다 있다.”는 것이 정설로 되였고 조선족마저 조선족이벤트회사를 찾기를 주저하는 현상이 보편화됐다.
일감은 많아도 할 일이 없게 된 현실, 올인했던 조선족시장마저 빼앗긴 후에야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사유가 없이 안온함에 빠져 희망의 끈을 스스로 놓친 것을 알게 됐고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그렇다면 정녕 희망의 턴넬은 막혀버린 것일가?
-‘코로나19’ 위기가 전화위복으로…질적 향상이 시급
‘코로나19’가 몰아온 경제위기, 위기가 불러온 랭기는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도 조선족이벤트회사는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조선족가정 성원중 한국에 체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르거나 아기 돌생일을 쇠는 것이 서서히 류행을 타기 시작했고 한두 사람만 움직이면 많은 친척 친우들이 참여할 수 있기에 비용절감 면에서도 훨씬 경제적이라는 계산까지 나왔다.
그러나 ‘코로나19’ 격리조치로 인한 출국 대가가 만만치 않고 웬만한 결심이 없이는 출국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침체됐던 조선족 이벤트회사와 례식문화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설악산’례식장이 올여름을 맞으며 새롭게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로 되였다. 여덟상밖에 놓지 못할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우리 민족의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정서를 듬뿍 느낄 수 있다.”는 리유 때문에 예약이 줄을 이었다.
‘설악산민속궁’ 조영실 총경리에 따르면 지난 9월에만 해도 단체손님을 포함해 스무집을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19’ 영향을 받아 문을 닫았던 원 ‘갤럭시’례식장도 다공능 기능을 갖춘 ‘취복정(聚福厅)’으로 탈변, 지난달부터 시작해 시영업에 들어갔다. 300여명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대형 례식장부터 시작해 20~30명이 둘러앉아 음식도 먹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공간까지 구전하게 갖춰져 있으며 최대의 관심사였던 난방문제도 해결됐다.
좌절 끝에 다시 시작하는 것 만큼 ‘설악산’과 ‘취복정’의 출현에 조선족사회의 반향은 매우 뜨겁다. 일전, 청도조선족로인총회의 책임자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선족업체에 가서 행사를 진행한다.”는 원칙하에 년말행사를 앞두고 행사기획팀을 ‘취복정’에 파견하여 현장 고찰을 하기로 했으며 청도 ‘조아이벤트’의 김명려 사장도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베테랑촬영사로 알려진 김은권씨도 ‘명품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방관자의 눈이 밝다.”는 말처럼 지난 몇해 동안 조용한 자세로 이벤트촬영문화의 흐름을 지켜보았던 그는 “기획과 시나리오 창작에 유능한 멤버들이 이미 팀에 합류했다.”고 하면서 “단순한 기록물이 아닌 창의적인 촬영수법과 제작방식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례식장에 의거해 이벤트회사가 활로를 찾았다는 것은 ‘반짝현상’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문화정서와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익숙한 청도의 한 유지 인사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 만큼 이들의 재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며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통한 질적인 향상이 십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청도에는 짧은 영상, 토크쇼, 시트콤 등 다양한 쟝르를 시도하고 있는 동아리들이 륙속 나타나고 있으며 타민족의 자원을 활용하여 거대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움직임도 심심찮게 보여 무척 고무적이다. 올여름부터 시작하여 조선족파트너들과 함께 영상물제작에 올인하고 있는 ‘결묘영상미디어’의 대표 조해봉씨는 “짧은 영상물을 촬영하고 제작하면서 조선족들의 순발력과 창의력에 크게 놀랐다.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조합인 것 만큼 꾸준히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짝현상’일가, 아니면 ‘희망의 불씨’일가?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진취 향상하려는 거대한 꿈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이다.
가공업과 서비스업 위주의 대도시 청도에 이벤트를 불씨로 ‘문화산업’의 새 아침이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출처:연변일보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