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의 원인을 잘 몰랐던 때 사람들은 당뇨병을 ‘죽음의 병’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00년 전부터 당뇨병은 ‘관리하는 병’이 됐다. 1921년 카나다 과학자들이 개의 취장을 묶어 인슐린을 처음 추출하고 사람을 치료하는 데 성공한 덕이다.
1880년대 독일 의학자들은 개한테서 취장을 제거하면 당뇨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체내에서 인슐린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프레데릭 G. 밴팅이라는 카나다 정형외과 의사는 소화효소가 인슐린을 분해해버려 과학자들이 추출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의 취장관을 묶어 효소를 생산하지 못하게 하고 그 사이 인슐린을 추출하려고 시도했다.
그의 생각은 맞았다. 하지만 추출된 량이 너무 적었고 독성이 있어서 투여한 동물들에게 부작용을 일으켰다. 소화대사에 전문가가 아니였던 그는 저명한 탄수화물 대사 전문가인 토론토대학 교수 존 제임스 리처드 매클라우드에게 실험실 사용 등의 도움을 청했다. 처음에는 거절당했지만 끈질긴 설득으로 실험실을 얻은 후 찰스 허버트 베스트라는 조수에게 화학 실험을 담당하도록 했다.
한동안 수십마리의 개가 아무 소득 없이 죽어나가고 암시장에서 개를 조달해야 할 형편까지 됐지만 마침내 성공했다. 이들은 개의 취장관을 묶어 효소의 작용을 멈추게 하고 3일 후 작동을 멈춘 취장을 얼리고 갈고 그 후 걸러내고 상온으로 만들어 인슐린을 추출했다. 그 후 이를 취장을 제거한 다른 개에 투여했다. 개의 혈당은 0.2%에서 0.12%로 감소했다. 인슐린이 처음 추출되고 투여된 력사적 순간이였다.
하지만 개를 리용해서는 많은 량의 인슐린을 추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소에서 인슐린을 추출했고 그런 다음 개에게 투여했다. 이번에는 0.46%에서 0.18%로 혈당이 떨어져 더 성공적이였다.
이어 심각한 당뇨를 앓고 있는 14세 소년에게 한 첫 인간 림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생화학자 제임스 버트램 콜립이 인슐린 정제에 힘쓰면서 두번째 림상은 대성공을 거두게 됐다. 똑같은 14세 소년에게 인슐린을 투여한 결과 24시간내로 혈당은 0.52%에서 0.12%로 떨어지고 케톤뇨도 사라졌으며 포도당 배출량도 71.7그람에서 8.7그람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이뤄낸 이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커져가고 있었다. 밴팅은 매클라우드 교수가 자신의 성과를 뺏아가려 한다고 생각했고 매클라우드 교수는 밴팅의 의심에 화가 났다. 이들의 불화 때문에 노벨생리의학상에 선정됐지만 상을 못탈 번하기도 했다. 밴팅은 노벨상 후보에 매클라우드 교수와 함께 공동으로 올랐는데 매클라우드 교수가 아닌 조수 베스트가 타야 한다고 생각해 화를 내며 상을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바꿔 상을 수락해 밴팅은 1923년 32세에 최년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됐다. 그 후 조수인 베스트에게 공로의 절반을 돌렸고 상금의 절반을 나눠줬다. 또 갑부가 될 수 있었는데도 “생명을 살리는 의술을 돈 버는 데 쓸 수 없다.”면서 단돈 1딸라에 인슐린 특허를 토론토대학에 넘겼다. 안타깝게도 밴팅은 2차세계대전 참전중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11월 14일은 ‘세계 당뇨병의 날’이였다. 밴팅의 업적을 기려 그의 생일을 이날로 지정한 것이다. 이들의 발견을 기려 카나다의 100딸라 지페 뒤면에는 인슐린 한병이 그려져있다. 새롭게 의약품을 개발한 사람들은 많지만 의학적인 성과를 인류와 나눈 이들은 흔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