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전쟁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흑룡강과 우쑤리강이 합치는 '화하동극' 흑하자도에서 매일 첫갈래의 햇빛이 이곳으로부터 조국의 대지를 밝게 비추기 시작한다. 줄곧 동쪽을 향해 '전진의 방향을 가리키는 동방의 아침해'를 따라 '팔녀투강'의 장렬한 순국을 되새기보고 현대화농업의 새로운 성과를 견증하며 석탄도시 전환의 도시진척을 탐구하고 집과 나라를 지키는 동극초수를 방문하는 과정을 거쳐 홍색흔적을 추구하고 룡강의 그제날와 오늘날의 거대한 변화를 알아본다.
제50역 중국침략일본군 동녕요새
동녕요새는 목단강 동녕시에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 90여 킬로미터, 종심으로 5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전에 '동방의 마지노방선'이라 불렸다. 동녕요새는 중국침략일본군이 소련군을 방어하고 그들을 향해 진공을 펼치기 위해 건설한 것으로,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에서 저지른 죄행을 립증하는 유력한 견증이기도 하다.
중국 국경에 위치해 있는 동녕은 소련의 중요한 도시인 우쑤리스크와 50여 킬로미터, 블라디보스토크 군항과 15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곳으로부터 소련으로 진입하면 앞길을 가로막는 높은 산이 없어 대군의 작전에 유리하기에 병법가들이 앞다투어 쟁취하는 곳이였다.
동녕요새군유적박물관
동녕요새군유적박물관 내부
동녕요새유적박물관 전시청
1934년 '보루건설계획'의 제1기 공정으로, 일본군은 동녕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일본군은 중국 산동, 하북, 길림 등 지역으로부터 기만수단으로 로동자를 모집하는 한편, 일부 중국 전쟁포로를 건설에 투입시키기도 했다. 전후로 총 17만명에 달하는 로동자들이 동녕요새 건설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로동자와 전쟁포로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는데 매일 10여 명에서 수십명의 로동자들이 비명횡사했다. 훈산요새는 동녕요새에서 중형 요새에 속할 뿐만 아니라 동녕요새군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요새는 전부 강철 콘크리트로 건설되였으며 부지면적이 5헥타르에 달한다. 마치 지하미궁을 방불케 하는 이 엄페호에는 높이가 1.8미터, 너비가 1.5미터인 터널이 종횡으로 교차되고 상하로 련결되여 있는데 가장 깊은 곳에서 지표까지의 거리가 15미터나 된다. 지휘소, 의료소, 무선전신실, 강철차창고, 저장창고, 탄약창고, 화력발전지점 및 독가스방지 이중격리문 등 시설이 건설배치되여 있다.
동녕훈산요새 지하통로와 지휘실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8월 9일, 소련은 공군, 탱크, 보병 련합 공격을 펼쳐 일본군이 여러해 동안 온힘을 다해 경영한 동녕요새를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8월 30일, 소련군은 요새 여러 공사를 전부 훼손하였으며 이로써 전투가 마무리되였다.
동녕항일련군영웅원
동녕요새유적은 가장 진실하고도 생동한 실물로 세인들에게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하는 과정에 저지른 죄행을 낱낱이 폭로하였으며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에서 범한 죄행에 대한 유력한 견증이기도 하다. 훈산요새 입구에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고 중화를 강하게 발전시키자'란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중화의 아들딸들이 력사를 명기하고 미래를 개척하도록 시시각각 일깨워주고 있다.
/동북망 조선어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