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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색 흔적이 룡강에] 의란, 홍색 유전자 전승하고 혁명 력사 되새긴다
//hljxinwen.dbw.cn  2021-04-22 11:20:00

  올해는 중국 공산당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백년 력사가 파란만장한 세월을 얘기하고

  세기의 초심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100년간

  중국 공산당의 령도하에

  룡강의 아들딸들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나아가 일본 외적들을 물리치면서

  민족 독립과 해방을 맞이하고

  흑토 국경의 전면적인 건설을 실현함으로써

  공화국 대식량창고, 대유전, 대탄광으로 자리매김했다.

  전 성 인민들은 부탁을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

  새로운 발전리념을 관철하고 새로운 발전국면을 구축했다.

  시리즈보도 '홍색 흔적이 룡강에'는

  홍색 유전자를 찾고 고양하면서

  백년 당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4월부터 9월까지 흑룡강성위선전부, 성위사지연구실, 성기자협회는 전 성 범위 내에서 '홍색 흔적-룡강 백년 당사 이야기를 얘기하다'주제 조사연구 취재활동을 공동으로 전개한다.

  '야영의 노래'는 어떤 곳에서 쓴 것일까? 낡은 재봉틀 뒷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이런 의구심을 품고 4월 15일부터 16일까지 기자가 할빈시 의란현의 홍색 유적과 전시관을 방문해 홍색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사괴석' 풍경구

  '사괴석' 풍경구는 의란현과 이춘시 교차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고가 980미터로 소흥안령 남쪽 기슭이 의란 경내에서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의란현 당사 전문가에 따르면, '사괴석'은 동북항일련군의 비밀주둔지로 항련 3, 4, 5, 6, 8, 9, 11군이 모두 이곳에서 활동을 펼쳤으며 이곳 또한 북만 림시 성위기관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지세가 험준한 탓에 방어는 쉽지만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북만 림시 성위는 이곳에서 수차례 중요 회의를 소집하고 동북항일유격전쟁 등 중대한 문제를 연구토론했다. 조상지, 풍중운, 리조림 등 동지 모두 이곳에서 항일활동에 참가한 적 있다. '불을 지피니 가슴이 따듯해지고, 바람이 부니 등에 찬기운이 느껴지네'란 '야영의 노래'가 바로 이곳에서 탄생되였다.

  '사괴석'풍경구는 동북3성에서 항련유적을 주제로 한 중요한 홍색관광풍경구 중의 하나이자 동북항련에서 항일전쟁을 14년간 견지했다는 확실한 견증이기도 하다.

  1970년대부터 홍색 유전자를 한층 고양하기 위해 의란현 정부는 '사괴석'일대에서 사괴석 애국주의 교육기지를 건설했다. 풍경구 내에 항련 유적이 완벽하게 보존되여 있어 흑룡강성에서 애국주의 교육활동을 전개하는 중요한 과당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 저지석 유적은 항련 3, 6, 9, 11군 전사들이 적을 저지한 중요한 전쟁터였다. 1936년부터 1938년 사이, 항련련군 전사들이 이곳에서 30여 차례에 달하는 적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수백명의 적을 소멸했다. 항련6군병원 유적이 자리한 동굴은 후방병원이 1938년 일본군의 파괴를 당한 후 부상자를 안치하게 된 림시병원이다. 항련 제1, 제2 초소유적은 항련전사가 6군 림시병원을 보위하는 중요한 진지였다. 지세가 평탄하고 광활한 군마장 유적은 면적이 1000여평방미터에 달하는데 항련 3, 6, 9군의 천연적인 연병장과 군마를 두는 목장으로 활용되였다. 항련정 유적은 1935년 중공북만성위 서기 풍중운이 조직해 발굴한 것으로, 우물 깊이가 10여미터에 달하며 우물에서는 주로 산천수가 흘러나왔다.

  의란현에서 홍색관광을 보급함에 따라 '사괴석' 이야기가 점차 사람들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 한편, 홍색 명승지에 응집된 동북항련정신도 한세대 한세대를 거쳐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갈 것이다.

  의란박물관

  의란박물관에 동북항련전사들이 남긴 옛물품이 다수 진렬되여 있다. 그중 '박물관 보배'로 불리는 물품이 있는데 이는 무장설비도 문서도 아닌 옛 수동식 재봉틀이다. 재봉틀이 오늘날에까지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뒷면에 숨겨져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덕분이다.

  1935년, 동북항련 제3, 6군은 '사괴석'에서 항일근거지를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후날 이불복장공장으로 바꾸었다. 비록 조건이 간고하고 물자가 모자란 상황이였지만 이불복장공장은 여전히 항련전사들에게 중요한 후근보장을 제공했다. 당시 이불복장공장에서 최고로 많을 때는 30명이 생산에 투입되여 군복, 탄알주머니, 군기 등 물자를 주로 제작했다. 동북항련 로전사 리민과 리조린의 애인 김백문 등 모두 이곳에서 업무를 본 적 있다. 박물관에 수장되여 있는 이 재봉틀은 당시 이불복장공장에 있었던 재봉틀 2개 중의 하나이다.

이불복장공장에서 전에 사용했던 옛 재봉틀

  1937년 겨울, 이불복장공장은 림시로 후방병원으로 바뀌여 부상당한 전사를 받아 치료했다. 당시 공장장 배성춘이 책임자를 맡았다. 료회지 의란력사문화연구회 부회장에 따르면 1938년 통신원이 배신하고 정보를 제공한 탓에 일본군이 후방병원에 불을 지르고 훼손했다. 배성춘은 사람들을 지휘해 일본군과 작전을 펼침과 아울러 부상자들을 린근 동굴로 옮겼다. 바로 이 시기, 일본군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전사들이 끈으로 이 재봉틀을 나무 우까지 끌어올려 동여매놓은 덕분에 이불복장공장의 보귀한 자산을 성공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날 단청하림장 로동자가 '사괴석' 산속의 밀림에서 이 재봉틀을 발견했다. 여러해가 지난 후 동북항련 로전사 리민이 의란현에 왔다가 한눈에 이 재봉틀을 알아보고 "우리가 그 당시 이불복장공장에서 사용했던 그 재봉틀이 맞다"며 격동해했다.

동북항련6군병원 유적

  오늘날 수십년이 지나갔다. 당시의 이불복장공장 옛주소는 이미 중요한 항일전쟁 유적 중 하나로 되였지만 녹이 쓴 이 재봉틀은 의란박물관에 수장되여 사람들에게 그 시기 진귀한 항련력사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동북망 조선어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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