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 조선족 머리장식의 변천
(흑룡강신문=하얼빈) 인류의 머리양식과 머리장식은 민족성과 시대성을 가지고있다. 머리장식의 변화는 실제상 다양한 문화적 배경,사회 풍속과 민족적인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런 력사 문화적인 현상을 통하여 전통을 리해할수 있으며 사람들의 심미의식을 비롯한 다양한 계시를 받을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된후 녀성의 단발머리는 자취를 감추게 되였고 남성들의 중머리도 없어졌으며 일본식 군모도 착용되지 않았다.
기혼녀성에게서는 파마가 대량으로 류행했는데 파마머리는 전체를 한것이 아니라 머리 아래만 파마를 하고 우는 깔끔하게 빗어서 가리마를 타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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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1952년 헤어스타일. |
처녀들은 중간가리마나 옆가리마를 내서 짧게 머리를 변형을 하기도 하고 두가닥 머리를 땋기도 하였다. 이때 량쪽 끝은 많이 남기고 댕기를 드리워 부풀리기도 하고(사진1) 옆으로 비스듬히 가리마를 내거나 앞머리를 가지런하게 잘라서 드리우기도 하였다. 또 중간 가리마를 내고 머리를 량쪽으로 핀으로 고정시켜 풀어내리기도 하였으며 머리가운데 동그란 가리마를 타서 하나로 머리를 묶기도 하였다.
남자들은 귀밑머리를 올리추고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우의 머리를 길게 하는 하이칼라머리를 하였다.
겨울에는 목도리를 많이 두르고 털모자 보다는 홑모자를 많이 착용하였는데 전진모(前进帽)라고 하여 모자의 채양과 모면을 마주 붙인것을 썼다. 녀자와 로인들은 장방형으로 된 흰수건을 머리에 둘러서 쓰기도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된후 지배적인 가치관은 근검소박하고 열심히 로동을 하는것이였으며 빨리 좋게 사회주의를 건설하는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단정하고 깔끔하고 소박한것이 당시의 미의 기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