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발자국
몸과 몸을 같이 태우며 불길을 만드느라 용맹을 떨치던 토막나무들도 이제는 지쳐버린듯 맥을 놓는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에너지마저도 송두리채 선사하리라 약속이나 한듯 우등불은 한무지 벌건 불덩이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런 우등불 옆에 동창들이 여러 패로 갈라 앉아 양고기구이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검은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주위를 살펴보면 어데라 없이 어두움이 자리를 틀고있지만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수영장 주변에는 가로수들이 줄지어 불을 밝혀주고 있었다. 거기에다 곁에서 이글이글 열을 발사하는 우등불까지 빛을 주어 동창들의 얼굴은 빛과 그림자가 엇갈리며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자연과 인간, 어둠과 빛이 서로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는 참으로 기묘한 밤이였다.
“‘오늘’이란 그냥, 그냥 소중한 순간이야. 이 순간이 지나가면 영원히 다시 돌아올수 없어!”
“어느 잡지에선가 이런 글을 읽은적 있어. 6명 이상이 우연히 한자리에 모일 경우, 만약 그 사람들이 저마끔 다른 곳에서 살고 일터도 서로 다르다고 할 때 그런 모임은 영원히 다시 있을수 없다는거야. 왜서 그런가 하면 후에 다시 모인다 해도 그 중의 한두 사람이 빠지게 될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새 사람이 동참하게 될수도 있는거니까.”
“듣고 보니 그 말 참 비슷해요. 여기 모인 우리 동창들도 다음에 다시 모인다고 하더라도 이중에 몇은 못올수도 있고 또 이번에 못 온 동창들이 더 올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그러니 이 밤에 이렇게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것도 얼마나 소중한 순간이냐 이 말이야.”
동창들이 감회 깊어 꺼내는 말들이다. 백일호도 동감이다. 그래서 모든 스트레스를 다 털어버리고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함께 이 밤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마치도 바늘방석에 올라앉은 기분이였다. 그래서 슬며시 자리를 떴다.
그는 우등불놀이를 시작할 때부터 은근히 김만융교수와 최윤희를 지켜봐 왔다. 오늘밤엔 이 두 사람을 꼭 단독으로 만나야겠다고 귀빈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때부터 단단히 벼려오던 참이였다. 그런데 김만융교수는 우등불놀이가 끝나갈 무렵, 어느 사이 자리를 피하고 없었다. 어제 저녁에도 연회가 끝나 춤판이 벌어지자 슬며시 호텔로 돌아가더니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년세가 많아져 옛날과는 달리 가끔은 주책이 없는것 같다고 일부 동창들이 수군거리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백일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는 이 로인이야 말로 예나 지금이나 머리가 맑고 속이 깊을뿐더러 앉을 자리 설 자리를 너무나 잘 가려내는 존경스러운 로인이라고 생각했다.
백일호와 구금자는 왕주임을 시켜 년세 많은 김만융교수를 특별히 별무리호텔 3층에 있는 독방에 모셨다. 아니나 다를가 백발 로인은 지금 코등에 돋보기를 걸고 쏘파에 앉아 대머리가 쓴 ‘신비한 길’을 읽고 있었다.
백일호가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섰다.
“자넨 왜 놀지 않고 여기로 온건가?”
로인은 돋보기를 눈밑으로 내리며 제자를 바라본다.
“저는 기실 덩치는 커도 술 체질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서 교수님과 조용히 이야길 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나야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
교수와 제자는 차장을 가운데 놓고 쏘파에 몸 절반쯤 마주앉았다.
“자넨 북방사범대학에서 서렬이 어떻게 되지?”
“세번째입니다.”
“그럼 앞에 선 1인자, 2인자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두분 모두 예순이 넘었습니다.”
“음, 조만간에 1인자가 된다던 강현수의 말이 과시 틀리지 않겠군.”
“그거야 두고 봐야 알 일이지요. 기실 저는 권력보다는 학술쪽에 더 흥미를 가집니다.”
“두고 봐야겠다는 말은 1인자가 되고 싶다는 말로 들리네. 그런데 그 자리는 탐이 나도 앉지를 말게.”
“?... ...”
“물론 자네를 보면 사람을 다스리는 관리쪽에도 뛰여난 재능이 있네만 그렇게 되면 자넨 완전히 정치가로 변해야 하고 처세술에만 매달려야 하네. 김운재 그 제자는 처음부터 그 길로 들어섰으니 리해가 되지만 자넨 다르지 않은가? 권력에 눈이 어두워 그것만 톺다 보면 다른 장기는 다 뒤전으로 포기하기 마련이네. 그리고 급별이란건 림시 직업과도 같은거네. 나라 대통령도 그만두면 보통 백성이 아닌가? 그래서 자네한테 귀띔하네만 학술쪽에다 신경을 더 쓰란 말일세.”
“교수님은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끔찍하십니다. 마치도 엄한 아버님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맙네.”
“그런데 교수님?...”
“?...”
“지금 교수님은 저한테 뭐 한가지 숨기는것이 없습니까?”
때가 되였다고 생각한 백일호는 슬쩍 본론을 건드리고 있다.
“숨기다니? 내가 자네한테 뭐 숨길게 있는가?”
로인은 코등에 걸었던 돋보기를 아예 벗어서 손에 쥔다.
“제가 꼭 먼저 말씀 드려야 할가요?!”
“그래 말해 보게나.”
“오늘 아침 산책을 할 때 교수님은 저희 대학에서 심리학석사공부를 하는 박화라는 녀학생의 이름을 꺼내셨지요?”
“그랬네. 그런데?...”
“교수님은 그 박화라는 학생은 장춘에 있는 친구분의 손녀라고 하셨지요?”
“?... ”
“그런데 그 박화라는 애는 교수님 친구분의 손녀가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 자네가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는 모르겠네만 그럼 그 앤 내 친구가 아니라 누구의 친구네 애란 말인가?”
“누구의 친구네 애도 아니지요.”
“그러면?...”
백일호는 지금 백발 로인의 내심 놀라는 기색을 읽고 있었다.
“그 박화라는 처녀앤 우리반 동창생 최윤희의 조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윤희는 또 외사촌언니네 집에서부터 박일화라는 녀자애를 데려다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제가 오늘 당안을 보니 박일화가 바로 박화였습니다. 더 정확이 말씀드리면 박화는 박일화와 한 아이였고 그 애는 또 최윤희가 낳은 친딸이였습니다.”
“어엉?...”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는 백일호의 말에 백발 로인은 심상을 감출 겨를도 없이 그대로 흠칫 놀란다.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어떻게 그 애를 최윤희 몸에 가져다 붙여 놓을수가 있는가?”
“허허, 교수님도 다 아시면서 왜 아직도 숨기려고 하십니까? 그 박화란 애의 친아버지가 누구라는것도 교수님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
“박화의 원명은 박일화이고 1982년 12월 18일에 출생했지요. 그 애를 제가 오늘 조용히 만나기도 했습니다.”
“오늘 만났다? 그럼 만나서 무슨 말을 한건가?”
“오고 간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애와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자넨 대관절 무슨 근거로 그 애를 최윤희와 자네 몸에다 억지로 련결시켜 보려고 하는건가?”
“지금 교수님께서는 분명히 아는 주정을 하십니다만 1982년 2월 하순, 겨울방학기간 벌리현의 깊은 산속으로 민간이야기 수집을 갔다가 저는 최윤희와 남녀관계를 발생했습니다. 저의 씨앗을 최윤희란 터전에다 뿌렸던것입니다.”
“허허, 씨앗을 뿌렸다?! 말은 재미나군. 그런데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반드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 맺을거라고 보는가? 씨앗이 쭉정이였을 확률은 없고? 또 밭이 나빠 씨앗이 자라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고? 그 보다도 씨앗이 움트고 자랐다 손치더라도 어떻게 박화로 둔갑할수 있냐 그 근거를 내놓으란 말이네.”
웃음속에 칼날이 선뜻한 김만융교수다운 질문이다.
“지금 교수님께서는 근거를 요구하시지요? 그러면 근거를 말씀드리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어떤 근거는 교수님께서도 저에게 제공하셨다는 그것입니다.”
“내가? 그래 말해보게.”
“어제 오후 최윤희는 여기 호텔에 들어서자 누구하곤가 비밀리에 핸드폰을 치더니 급히 그 사람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래서 동창들은 어떤 군서방을 만나러 간다고 오해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박화학생이였습니다. 박화라면 최윤희의 조카딸 된다고 자기 입으로 강현수에게 말했답니다.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만나야 할 조카딸을 신비하게 비밀리에 만나야 할 리유가 있을가요?”
“누가 최윤희가 그 애를 만났다고 하던가?”
“여기서 우리 동창모임을 위해 후근 일을 보는 왕주임이란 젊은이를 교수님도 보셨지요? 그 젊은이가 직접 제눈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산책을 할 때 교수님께서 또 박화라는 학생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장춘에 있는 옛 동창생의 손녀라고 하시면서 그러셨지요? 이것이 교수님께서 제공해준 근거입니다. 그 다음 아침을 먹고 동창들이 보배찾기를 할 때 강현수와 최윤희 둘이서 이야기 하는 소릴 제가 우연히 엿듣게 되였습니다. 강현수는 최윤희에게 어릴때부터 데려다 키운 조카딸 박일화가 지금 어디서 뭘하는가고 물었고 최윤희는 일본에서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거기서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 제가 최윤희와 그런 관계가 있었으니 남들보다 신경이 예민해 지는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오전, 대학총장사무회의를 마치고 오는 걸음에 저는 연구생관리처에 들려 박화의 당안을 찾아보았습니다. 당안을 보니 박화가 대학오기전의 이름은 박일화였습니다. 최윤희가 어려서부터 키워서 엄마라고 불러왔고 지금은 일본에서 공부한다고 강현수한테 거짓말로 돌려댔던 그 박일화였습니다. 저는 연구생관리처에서 박화의 증명사진 한장을 구해 가지고 와서 강현수에게 보였습니다. 물론 강현수가 눈치를 못채게 다른 핑계를 댔지요. 그런데 확실히 저의 판단과 같이 강현수는 ‘이 애가 최윤희네 박일화가 아니냐?’ 하고 놀라와 하는 기색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후에 태양도 유람을 가지 않고 몰래 박화학생을 만나보러 다시 우리 학교로 갔습니다. 박화를 만나서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애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저의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애까지도 속으로 단정하고 있는 일이라면 이건 절대 꿈속에서 하는 잠꼬대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교수님, 이쯤이면 근거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래도 교수님께서 모르쇠를 놓으신다면 저는 이 말은 여기서 더 꺼내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이제 림구로 돌아가셔서라도 최윤희한테는 이 백일호가 이 사실을 알고있더라는 말씀을 전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눈을 지긋이 감은 김만융교수는 한손으로 턱을 고인채 오래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번 동창모임은 저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간이 선뜻하게 놀라기도 했지만 또 그래서 사무치게 고맙습니다. 저는 교수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전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것도 이 늙은이를 떠보자는 수작인가?”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백일호를 엄하게 꾸짖는다. “거기 앉아있게.”
로인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더니 아주 천천히 입을 연다.
“배가 익으면 절로 꼭지가 떨어지게 돼있네. 내 이 말을 윤희한테도 여러번이나 했었네.”
“무슨 말씀입니까?”
“때가 되였다는 말일세. 그보다도 심리학을 연구하는 자넨 사람의 속까지도 환히 들여다보는 재간을 키웠구려. 허허허... ”
오래동안 수심에 잠겨있던 백발 로인은 마치도 병상에 누워있다가 몸이 완쾌해진 사람처럼 그제야 만면에 환한 웃음을 그린다.
“내가 이번에 최윤희와 함께 림구에서 여기로 떠나올 때 어쩐지 예감이 들더란 말이네.”
“어떤 예감 말씀하시는겁니까?”
“아무때건 이 일이 탄로되리라고 짐작은 언녕부터 했네만 이번 제자들 동창모임에 백일호가 혹시나 무슨 눈치를 채지 않을가 하는 예감 말일세. 그리고 방금 자네가 내 방으로 들어올 때 그 예감이 현실로 다가오는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네. 아무튼 잘된 일이네. 나는 이렇게 되길 바랬던거네.”
“그럼 제가 아직도 궁금한걸 교수님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
로인은 대견스러운 눈길로 제자를 바라본다.
“당시 벌리현 산속에서 그 일이 있은후 최윤희가 태아를 가졌고 그래서 배가 점점 불어나는 바람에 그해 여름방학이 지나고 4학년 첫 학기에는 페병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휴학을 한것이 맞지요?”
“그렇네.”
“그런데 전 그저 그쯤 밖에는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아시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내 후에 얻은 집사람이 목단강민족사범학원 위생원에서 의사로 있은걸 자네도 아직 기억하고 있지? ”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최윤희가 태기를 가진걸 보아냈던 모양이네. 얼굴이 말쑥하던 처녀애가 갑자기 임신한 부녀들처럼 죽은깨가 많이 돋았다고 했던지 지금 상세한 기억은 나지 않네만 여하튼 그해 여름방학이 다 될 무렵 그 일을 알게 되였네. 그런데 최윤희는 배가 불어나는걸 사람들의 눈에 들키우지 않으려고 배속의 애가 다섯달이나 될 때까지 남몰래 흰 천으로 배를 꽁꽁 동여매고 공부를 했다네. 그때 방학이 되길 다행이지 그 모질고 독한 성미에 조금만 시일을 더 지체했더라도 아이고 어른이고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였네. 그바람에 배속의 애가 자라지 못해 에미 몸에서 떨어질 땐 거퍼 4근도 되지 않았다더군...”
“아!...”
백일호가 갑자기 크게 감탄을 자아낸다.
“인제 알겠습니다.”
“뭘 알았다는 건가?...”
“저와 최윤희는 모두 키가 큰데 박화가 키가 작은 그 원인 말입니다.”
“그렇겠지, 배속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탓이네... 그렇게 최윤희가 임신한 일을 집사람한테서 듣고 내가 학원 교무처에 찾아가서 한학기 휴가를 맡아준거네. 그리고 개학하자 반장이였던 자네한테도 내가 귀띔했을걸. 최윤희가 병으로 한학기 휴양한다고 말일세.”
“예, 어쨌든 최윤희가 페병으로 한학기 휴양했다는것만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해 겨울 윤희는 밀산에 있는 외사촌언니네 집에서 아이를 낳았고 때마침 얼마 안지나 겨울방학이 되여 두달남짓 산후조리를 하다가 4학년 마지막 학기에 학교로 돌아 온것이였네.”
“그럼 졸업배치 때도 최윤희가 림구현의 치벽한 산골소학교로 자진해 간것도 애를 키우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택한것이 아니였습니까?”
“그렇구 말구...”
“아! 이 멀쩡한 백일호는 최윤희한테 너무나 큰 죄를 졌습니다. 여태 그런줄도 모르고... 정말 최윤희앞에선 머리를 못들겠습니다. 교수님, 이 죄값을 제가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인제 와서 그런 말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다 지난 옛말일세.”
백일호는 두손으로 머리를 마구 싸쥔다. 방안엔 또 한번 침묵이 흐른다.
“그런데 최윤희는 왜 여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삽니까? 혹시 교수님은 그 비밀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윤희는 겨드랑이에서 노린내가 났습니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여 기실 그런건 병도 아니네. 언젠가 우리 집사람이 거퍼 몇원 안하는 약을 사줘서 바르게 했더니 제꺽 낫더라네. 그리고 이제 결혼 얘기도 나왔지만 윤희도 딸애가 좀 더 커서 유치원에 다닐쯤이면 결혼하려고 마음먹었었네. 인물체격이 훤칠하지 마음이 반듯하지 아마 눈독들이는 사내들도 많았을거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옵니까?”
“글쎄, 그러다가 최윤희 마음을 돌려놓는 큰 일 하나 생겼다네. 이것까지 자네한테 다 말해야 할가?!”
“이젠 최윤희 일은 제가 다 알아야 할 신분이 아닙니까?”
“그래 자네야 최윤희와 특별한 인연이니까. 내 자네한테만은 그 비밀마저 알려주겠네.”
이윽고 김만융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
최윤희는 밀산에 있는 외사촌언니네 집에서 아이를 낳고 그 애를 언니네 집에 맡겼다가 두 돌이 지나자 신변으로 데려왔다. 주위 사람들에게 언니네 애를 데려다 키우는것처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금방 배속에서 나온 피덩이를 두돌이나 키운 사촌언니와 형부도 그 애한텐 정이 많이 들었었다. 그래서 최윤희는 방학만 되면 애를 업고 밀산으로 놀러갔고 언니와 형부도 여러 차나 애 보러 먼길을 찾아왔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최윤희의 사촌형부가 마을의 일로 림구현를 지나가던 차 최윤희네 집에 들리게 되였다. 성이 오씨인 그 형부는 당시 마을의 회계여서 다른 사람들보다 외출이 많았었다.
최윤희는 반가운 형부가 왔다고 자전거를 타고 몇십리길 되는 현성까지 가서 돼지순대며 물고기하며 한상차릴 음식거리를 사왔고 집에서 기르는 암탉도 한마리 잡았다. 그 형부도 집에 들어서자부터 아장아장 걸음마를 타고 말도 제법 재잘재잘 번지는 그 조카애를 안아주고 빨아주며 귀여워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날 밤이였다. 어린애를 옆에 낀 최윤희가 전등을 끄고 금방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곰같이 우둔한 몸뚱이가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는 바람에 그녀는 소스라쳐 깨여났다. 최윤희는 겁탈하려고 덮쳐드는 그 사내의 머리를 두손으로 움켜쥐고 옆으로 쌔리고 발길로 걷어찼다. 그러면서 펄쩍 일어나 전등불을 켜고 보니 아니 글쎄 술이 한잔 잘 되여 웃방에서 코를 골던 다름 아닌 형부였던것이다. 최윤희는 자던 속옷 바람으로 시걱칸으로 달려 내려가 칼도마우에 놓여있는 식칼을 손에 쳐들었다. 너죽고 나죽고 해보자는 판이였다. 그러자 질겁을 한 형부는 아래 도리는 입지도 않은 그 대로 구들에 납작 엎드리더니 죽을죄를 지었으니 제발 한번만 용서해달라며 머리를 구들에다 쪼아댔다.
최윤희는 분김에 저녁에 먹다 남은 긴 순대 오리를 칼도마우에 올려놓고 손에 들고 있던 식칼로 힘껏 내리찍었다. 그런는 최윤희를 보고 질겁한 그 형부는 옷을 주어 입기 바쁘게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가 밤중에 어디론가 도망을 갔다. 그 일이 있은후 최윤희는 2년이나 밀산에 있는 외사촌언니네 집과는 발길을 끊었었는데 그 언니가 차츰 눈치를 채게 되였고 그래서 후에는 남편과 리혼을 하게 되였다...
“자넨 오늘 오전 칠대하시 교외 능달촌의 오촌장이란 사람이 강현수한테 전화가 오며 야단칠 때 곁에 없었지?”
“예, 회의 가느라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이야길 들었습니다. 뭐, 현수한테 상주가 되라는 한심한 전화까지 왔다고 합디다.”
“전화가 온 그 오촌장이란 사람이 바로 옛날 최윤희의 형부였네. 그 사람의 입에서 최윤희를 잘 안다고 했던 모양이네. 옆에서 들을라니까 강현수가 그런 말을 하자 내막을 전혀 모르는 제자들은 윤희를 보고 강현수를 도와 좋은 소리 몇마디 해주라고 하더군. 윤희가 그런 사람한테 전화쳐줄리 만무한 일이지. 안 그런가? 허허허...”
“그럼 그 일이 최윤희의 마음을 돌려놓은 겁니까?”
“아마 그런것 같네.”
백일호는 가슴이 섬찍해 났다. 그때 최윤희가 순대를 칼도마우에 놓고 칼탕을 칠 때는 그 형부의 몸에 달린것만이 아니라 분명 최윤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자기의 것까지도 눈앞에 그려보며 칼탕을 쳤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보면 최윤희의 형부였다는 그 사람보다 저의 죄가 더 크지 않습니까?”
“아니네. 그건 짐승과 사람처럼 성질이 완전히 다른거네. 내 하나 묻겠네만 만약 당시 최윤희가 임신한 사실을 알려줬다면 자넨 어떻게 했을것 같은가?”
“최윤희와 결혼했을겁니다.”
“그렇겠지. 나도 자네의 됨됨을 잘 아니까. 그런데 최윤희는 그 당시도 비밀에 붙였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숨겨오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자넨 죄의식 같은건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보네.”
“그런데 교수님, 또 한가지 묻겠습니다.”
“그러게.”
“그 박일화란 이름은 교수님이 지어준것이 아닙니까?”
“암, 그걸 자네 어찌 아나?”
“교수님은 옛날부터 우리 조선글자의 구조와 형태를 깊이 연구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는?...”
“이전에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은 성이 ‘백’씨는 작대기 같은 내리금 하나 빼면 ‘박’씨로 변한다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의 성 ‘백’씨에서 작대기를 하나 빼니 성은 ‘박’씨로 변했고 그 작대기 하나로 만든 꽃이니 ‘박일화’가 된것이 아니겠습니까?”
김만융교수는 크게 머리를 끄덕인다. 백일호라는 제자가 중국에서 유명한 심리학 전문가라는 말만은 들어왔지 실지 이처럼 그 실력이 대단할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박일화가 왜 또 박화로 이름을 바꿨지요? 그것 역시 최윤희가 저의 눈을 피하려고 머리를 짠 흔적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네. 자네 앞에서 약은수를 쓰려고 들었던 최윤희가 어리섞네. 최윤희의 그 딸애 박일화는 대학을 갈 때 제1지망은 북경사범대학을 쓰고 2지망을 자네 북방사범대학을 썼던거였네. 그런데 제1지망은 딱 1점차이로 못 붙고 결국 자네 대학으로 가게 되였네. 그때도 최윤희는 다른 학교로 보내겠다며 야단하는걸 내가 말렸네. 여직껏 백일호를 숨겨왔으니 계속 숨기면 되는 일이지 대학에 이미 붙은 애를 하필이면 다른 학교로 보내려고 하느냐고 따끔히 말해줬네. 그랬더니 최윤희가 하는 말이 그러면 강현수가 여러번 림구를 다녀가서 박일화를 잘 알고 있는데 물론 강현수가 취재를 올적마다 절대 언니네 애를 키운다는 말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는했다더군. 그렇지만 어찌 하다보면 말이 새나갈수도 있고 하니 강현수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애 이름부터 고치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다 큰 애를 이름 고친다는게 여간 쉽지 않던 모양이더군. 다르게 고치는건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고 겨우 가운데 이름 한자를 빼는것조차도 숱한 애를 먹은 모양이더군.”
“오- 그런 일이였습니까. 그러고 보면 교수님은 최윤희에 대해 진짜 모르는것이 없습니다?”
“아무렴. 어찌 되다보니 최윤희는 배속에 태아를 품고 있을 때부터 유독 나한테만은 무슨 비밀이나 다 털어놓는 사이로 되여버렸네.”
“그러니 교수님께서 퇴직하고 사모님과 함께 림구현으로 가시게 된것도 최윤희가 소개하여 그리로 간것이겠습니다?”
“그럼, 최윤희가 소개하여 그리로 간거 맞네.”
“이젠 림구에 계신지 여러해 되지요?”
“거의 십년 잘 돼가네.”
백일호는 직업적인 안목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이 내내 머리가 백발이 된 김만융교수를 주시해보고 있다.
(하다면 이 로인님과 최윤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가?)
백일호의 머리속에는 이 한 물음에 대한 답안도 조리있게 풀려가고 있었다.
“교수님, 최윤희는 지금도 저를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네.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것도 아니네. 그저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호 아무런 관계없는 남과 남으로 생각하려고 무등 애를 쓰는것 같네.”
“정말 최윤희에겐 저는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윤희 앞에 가서 넙적 엎드려 절을 하게나.”
로인은 백일호를 바라보며 껄걸 웃는다.
동창들이 한창 우등불 옆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는 사이, 백일호는 이렇게 김만융교수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몽야'술집
흥겨운 술판은 계속 끓어번진다.
‘한근짜리’ 김성만이는 은근슬쩍 주영주와 안송옥의 사이에 끼여 앉았다가 량쪽에서 별로 응대를 하지 않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어수선히 물러 나와 맥주병밑굽과 비아바이 사이에 와 끼여 앉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녀동창들마다 자기를 멀리하는 일이 기분이 잡쳤다. 아침에 안송옥이와 둘이 기념품 사러 갔을 때 성만이는 물건을 드는척하며 슬쩍 안송옥의 손을 쥐여보았다. 그런데 송옥이는 성만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홱 채가는 것이였다. 말없는 반항이였다. 그뒤로 수영장에서는 주영주한테 치근거리다가 본전도 못찾고 부옇게 밀려났고 오후 태양도에서 김순애와 단둘이 배놀이를 할 때는 하마트면 배에서 떨어질번도 했다. 송옥이는 몰라도 바람기가 있어 보이는 주영주에, 생활이 순탄치 않고 살림이 쪼들리는 순애까지도 자기를 받아주지 않을줄은 정말 몰랐다. 흔히 동창들끼리는 어찌 해도 다 받아주어 동창모임은 바람피우는 모임이 된다더니만 이거라구야 떡판에 엎어져 배를 촐촐 굶는 신세라 하지 아닐수 없었다.
(왜 나한테만은 이렇게 푸대접이냐?)
성만이는 한숨이 풀풀 나왔다. 세월을 살아오면서 보면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 계집들의 몸뚱이는 살수 있었어도 마음까지 주며 진심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녀자는 별로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자기는 지지리도 녀자복만은 없는것 같았다.
“형, 나와 같이 잠간 어디로 놀러 가기오.”
성만이는 문득 한가지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곁에 앉은 비아바이를 잡아끌었다.
“가기는 어디로 간다고 이래?”
개장국에 독한 소주를 많이 마신 비아바이는 맥주 몇컵이 몸에 들어가자 대번에 취기가 올라 반쯤은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있었다.
“히, 남자들의 최고유희, 몰라?!”
“그게 뭔데?...”
“내 따라 가보면 알거 아니오.”
성만이는 몸이 흐트러져 조금 비틀거리는 비아바이를 부축해서 야식장에서 나와 호텔 정문앞에 세워놓고는 차고에 들어가 자기 승용차를 몰고 나왔다.
“이거 정말 다른데로 끌고 가는거 아니야?”
“우리 반 녀자들은 어느거 하나 볼거있어, 이젠 쪼글쪼글 다들 늙어서 돼지 목에다 진주목걸이를 걸어놓은것 같다니까. 그래서 어디가서 예쁜 아가씨를 끼고 한판 재미를 보고 오자는거요.”
“정말 그런델 가는거야? 에-씨팔! 어데 한번 가보자.”
술이 세포마다에 꼴똑꼴똑 들어찬 비아바이도 담이 코끼리 열만큼 커져 세상이 녹두알만해 보인다.
태양도를 빠져나온 성만이는 송화강공로대교를 건너 할빈 도심으로 질주하고 있다. 사면 팔방으로 통하는 거리에고 하늘을 찌를듯 키돋움 하는 고층 건물들에고 눈부신 불빛으로 사람들의 눈을 시리게 만든다. 도시는 언제나 어둠을 밀어내는 황홀한 불빛의 조화로 밤이 아름답다고 하는 모양이다.
승용차 뒤좌석에 앉은 비아바이는 그런 진풍경도 감상하지 못하고 어느 사이 잠에 곯아떨어졌다.
박재동이는 스물일곱살 먹던 해에 대학생이 되였다. 그는 대학으로 오기전에 농촌에서 십년이나 있었고 꼬박 7년이나 생산소대 대장을 하다가 왔었다.
즐거웠던 학창시절의 어느 날, 조문반 학생들이 교실에서 한창 수업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는 갑자기 소낙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마침 선생님은 흑판에다 무슨 글을 쓰고 있어 실내는 물뿌린듯 조용했는데 비가 때리는 창문만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던 박재동이가 “야- 빨리 뭘 가져다 덮어야지. 벼 종자 다 젖겠다!”하고 혼자서 안타까와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 소리에 실내는 폭소가 터졌다. 그후부터는 밖에서 비만 내리면 동창들은 “아바이, 벼종자 젖지 않겠소?” 하고 놀려주었다.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그 사람의 어떤 특징에 따라 별명하나는 신통하게 지었다. 그런 말이 자주 나오다가 누군가 키가 왜소한 박재동이는 어쩜 화투에 나오는 비아바이 같게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박재동이는 ‘비아바이’란 그럴듯한 별명이 붙여졌던것이다.
“형! 이젠 내리오. 다 왔소!”
성만이가 차안에서 잠이든 비아바이를 흔들어 깨운다.
“엉? 여기가 어디야?”
“히, 형이 오늘밤 장가들 처가집에 온거요.”
비아바이이가 눈을 뜯으며 차에서 내리고 보니 ‘몽야술집’이라고 쓴 큰 간판이 화려한 불빛에 얼른거렸다. 그제야 뭘 하러 성만이 따라 태양도에서 떠났던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자넨 이런 곳을 어떻게 아나?”
“내야 중국땅을 어데 안가본 곳이 있겠소. 여기 할빈이나, 장춘은 제집나들듯 다니는거구...”
성만이는 이러면서 비아바이를 뒤에 달고 ‘몽야’술집에 들어섰다.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오자 너른 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삼십대 술집아가씨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얼핏 눈짐작으로도 20명은 잘 되여 보였다. 저마다 진한 화장에 살은 안 보이는 곳보다 보이는 곳이 더 많이 드러나게 옷들을 알락달락 입은 아가씨들이 서로 자기를 데려가라고 두 손님 앞에서 저마끔 눈섭춤을 추어가며 교태를 부리느라 간사스럽기 그지없다. 어찌 보면 목을 바싹 쳐들고 먹이를 달라고 달려드는 암게사니무리 같다.
“형, 여긴 모두 한족계집애들이오. 민족이란건 말이요 요, 입에만 있는거고 목에서부터 그 아래는 민족이란게 따로 없지, 안 그렇소?! 히, 이것들 좀 보라는데 다리가 쭉쭉 빠진게 얼마나 멋진가. 형도 이중에서 눈에 드는걸 하나 고르오.”
이런 마당에선 진짜 스타 급인 성만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도 돼지시장에 가서 됨즉한 새끼돼지를 고르듯이 아가씨들을 한줄로 줄을 쭉 세워놓고 하나 하나 젖가슴과 궁둥이를 만져도 보고 손으로 턱을 쳐들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마당에 와선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 애숭이여서 어색하고 쑥스럽기 그지없는 비아바이는 아가씨들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슴에 묻는다.
“형, 한놈 고르라는데?...”
“아무거나,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럼 먼저 방에 들어가 있소, 내가 제일 젊고 예쁜 계집을 하나 골라서 형의 방에 들여보낼게. 그리고 한시간후에 여기 이 홀에서 만나기로 약속. 오케!”
비아바이는 몸통이 굵은 어떤 젊은 남성복무원이 안내하는 대로 웬 방에 들어갔다.
화장실에 목욕통이 달려있고 2인용 너른 침대하나가 놓여있는 꽤나 호화로운 방이였다. 그렇게 어리둥절해난 비아바이가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는데 밖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한 아가씨가 방안으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들어오자 바람으로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홀랑홀랑 옷부터 벗더니 어느 사이 알몸이 되여 비아바이 앞에 와 착 서는것이였다.
그 순간, 비아바이는 아침부터 여직껏 마신 술이 단통 몸에서 쫙 빠져나오는것만 같았다. 정신이 펄쩍 들었다. 아니 글쎄 온 몸에 실한오리 감지 않은 이 계집애는 이제 스무살이나 되는지 어찌 보면 자기 작은 딸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이푸디 촨! 촨!”
비아바이는 고개를 한 옆으로 돌리며 어서 옷을 주어 입으라고 눈먼 손가락질 해댔다.
나어린 계집애는 어정쩡해서 벗었던 옷을 도로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쩌머 깐 이츠 쇼페이디 둬챈?”
비아바이는 이렇게 한번 하는데 팁은 얼마냐고 한족말로 계집애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가씨는 팁은 이미 함께 온 손님이 다 주었다고 한족말로 대답한다. 비아바이는 그 계집애를 침대에 앉으라고 하고 자기는 방구석 한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그 애와 마주하고 앉은 다음 돈지갑에서 인민페 백원짜리 한장을 꺼내 침대우에다 훌렁 던졌다. 돈은 이미 계산했어도 어른이 따로 베푸는 선심이니 이제 나갈 때 가지고 가라는 뜻이였다.
“워디 호홀디 쬬위, 쬬위 니...”(너를 교육 좀 단단히 해야 되겠구나.)
비아바이는 나어린 계집애를 앉혀놓고 음과 률이 다 틀리는 한족말로 교육을 하기 시작한다. 비아바이는 어려서부터 조선족마을에서 자랐고 대학도 조문전업을 졸업한데다 수십년간 몸담고 사업하는 단위까지 조선족중학교다 보니 한족글은 옛날 고문까지도 대수 뜯어볼수 있으나 구두어 표달이 통 말이 아니였다. 우리말 문법에서는 보통 명사가 앞에 있고 동사, 형용사가 뒤에 오지만 한어에서는 동사, 형용사가 앞에 있고 명사가 뒤에 오게 된다. 그런데 비아바이는 우리말을 그대로 직역하다 보니 ‘먹었다 밥을’, ‘보았다 영화를’이런 식으로 말하는가 하면 한어발음에서는 1성, 2성, 3성, 4성 4개의 음률이 아주 중요한데 비아바이는 묘하게도 1성이나 4성 발음은 모조리 2성 혹은 3성으로 변하고 2성, 3성은 1성 또는 4성으로 발음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매점에 가서 담배를 달라는 ‘연’(烟)자는 응당 1성으로 발음해야 하는데 2성으로 꼬부려 붙이다 보니 음이 꼭 같은 소금 ‘염’(鹽)을 말하는 줄 알고 판매원이 가루소금봉지를 들고 와 웃음거리를 만드는 일이 한두번만이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