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도 집에서 신문을 보면 강현수라는 기자는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바람에 일어나는 자녀교양문제, 가정파괴문제 등등 많은 사회문제들을 신문에다 펴내고 있는네 그저 지금 이렇다고 사회문제를 폭로만 하면 그만인가? 그 뒤엔 해결책을 연구하는 글들이 따라 서야지 않느냐 말일세... 어떤 사건이 터지면 ‘좋다!’ 혹은 ‘엉망이다!’고 덮어놓고 감탄부호를 칠 일이 아니라 좋은 뒤에는 어떤 부면 영향은 없을가? 엉망인 뒤에는 어떤 반짝이는 희망의 불씨가 없을가를 철학적으로 사색해 보아야 명실상부한 좋은 글이 나온다는 말일세.”
“... ...”
제자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듣고만 있다.
“‘토지에다 투자해라!’ 현수가 한 말 얼핏 들으면 좋은 말 같네. 그런데 토지는 누가 다루는가. 사람이 다루지 않는가? 기업은 누가 꾸리는가. 역시 사람이 꾸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투자는 어디다 해야 하는가? 두말 할것없이 사람에게 해야 하는것일세...
이건 현수가 쓴 기사는 아니네만 여하튼 자네신문에서 본 글인데 ‘이들 부부는 한평생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살아온다.’... 세상에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사는 부부가 있을가? 수길이가 쓰는 소설에서는 이런 말이 통하지. 소설은 현실 생활의 진실이 아니라 그 인간생활의 본질을 추구하니까. 그러나 현실생활을 그대로 반영하는 신문기사에서 이런 글들이 아주 자연스럽고 아주 뻔뻔스럽게 나가기때문에 사람들이 ‘신문은 다 거짓말이다.’고들 하게 되는게 아니겠는가. 옛날 문화대혁명때 전형인물은 반드시 사상이 붉게 만들어야 하고 반드시 무슨 일을 하나 다른 사람들 보다 우수해야 하고 또 반드시 전면적으로 훌륭해야 한다는 ‘3돌출’이란 그 절대화 그늘이 세월이 많이 개방된 오늘에도 채 가셔지지 않은거라고 보여지네. 그리고... 하긴 난 신문은 잘 모르네만, 역시 문화대혁명때는 ‘당보’라고 하면 유일한 당의 선전도구로 간주해 왔는데 신문의 기능은 여러가지가 있는것이 아닌가? 물론 당의 방침 정책을 선전하는것이 ‘당보’의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로는 되겠지만 그밖에도 정보전달기능, 취미오락기능 뭐이 많을것 같은데 어떤 기사들을 보면 어느 당위 선전부에서 내려보내는 문건들처럼 너무 엄숙하고 너무 훈계식, 명령식이란 말일세...”
“그런데 교수님, 한가지 물읍시다. 우리 신문이 세월의 변화와 함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보시지 안습니까?”
“말은 바른 대로 세월만큼은 달라졌다고 봐야하지.”
“그러시다면 교수님이 뒤부분에서 말씀하신 ‘3돌출’의 그늘문제, 신문의 기능문제 같은건 매일 신문을 연구하는 우리도 알고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까?”
“?... ...”
“그래요. 현수 말이 맞아요. 아무리 좋은 강연도 너무 길게 하시다보면 듣는 사람이 지루하고 필요가 되지 않는 말도 많이 첨가되거든요. 안 그래요. 교수님?”
생각밖으로 조용히 앉아 듣기만 하던 최윤희가 강현수를 두둔해 나선다.
몇해전부터 퇴직을 한 김만융교수는 최윤희의 소개로 산 좋고 물 좋은 림구현의 어느 시골에 가 살고 있어 그런지 최윤희와 김교수는 아무 말이나 허물없이 할수 있는 사이인것 같다.
“교수님 제가 옛말 하나 할가요?”
조용하던 최윤희가 자기 손을 들어주자 강현수는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아흔살 나는 아버지가 일흔살 먹은 아들을 앞세우고 도랑을 건너게 되였대요. 그런데 아버지가 뒤에서 하는 말이 ‘아가야 조심해서 디딤돌을 밟거라. 엎어질라!’ 이러더랍니다.”
“에끼, 내가 주책머리 없다고 자네들이 골려주는군. 됐네, 나도 이젠 더 할말이 없네.”
손을 홱 젓던 김만융교수는 그 손을 뒤로 가져가 허리를 짚더니 버섯모양의 정자에서 밖으로 씨엉씨엉 걸어나간다. 그러자 강현수가 목소리를 낮추며 두 동창에게 소곤거린다.
“저 백발 령감이 머리에 드신건 많은데 나이는 못 속이지?!”
그러자 이번엔 대머리가 허리를 굽히며 소곤거린다.
“우리 ‘백모남’스승님이 뭐 같아 보이는지 알어?”
“뭐 같은데?...”
“백년 묵은 구렝이!”
“확실히 구렝이는 구렝인데 이젠 조금 주책 없는것 같아.”
“조금 치매가 온 구렝이는 아니고요?”
제자 셋은 뒤는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김만융교수의 뒤에서 입을 싸쥐고 네 한마디 내 한마디 비쭉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