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누가 라이타를 수장하는 모양이구만.”
“아니, 우리 아들에게 주려구요. 그 애는 하루 종일 라이타만 가지고 놀아요.”
김순애는 몇해전에 학부모들이 차리는 어느 연회에 참석했다가 술을 포장한 곽에서 술병과 같이 나오는 오또기처럼 만든 라이타가 희구하여 그걸 가져다 스무살 나는 아들에게 준적 있었다. 그 아들은 태여날 때부터 말못하고 사지를 바로 쓰지 못하는 신체장애 애였다. 그런데 그 라이타가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불을 켰다 죽였다 하며 그것만 가지고 놀던 아들은 밤에 잠잘 때도 그 라이타를 손에 꼭 쥐고 자는것이였다. 그때부터 김순애 부부는 술병에 묻어 나오는 라이타만 보면 모두 얻어다 아들에게 주군 했는데 그렇게 모인 라이타가 이제는 백개도 넘었다. 이번 동창모임에 오면서도 김순애는 기회가 있으면 할빈의 기념품상점들을 다니며 특별하게 만든 라이타를 사서 아들에게 기념으로 주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동창들이 모두 태양도 폭포를 구경하러 갈 때 김순애는 슬그머니 혼자 떨어져서 한창 태양도에 있는 기념품상점들을 돌고있던 중이였다.
“순애도 여기서 만났는데 우리 낚시질 가지 말고 저기 보이는 고니호수에 가서 배놀이나 할가?!”
“그것도 좋겠어.”
세 사람은 배놀이를 하려고 고니호수로 갔다. 바람 한점없이 고요한 호수엔 뜨거운 해살이 내리 퍼부어 수억만개의 황금빛이 수면우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호수엔 쌍쌍의 련인들, 한 가족인듯 싶은 아이 어른들이 저마끔 즐겁게 노를 저으며 배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셋이 함께 배를 타려고 보니 세 사람이상 타는 배는 다 세내가고 사람 둘씩만 앉을수 있는 배만 몇척 있었다.
“형은 노를 저을줄 아오?”
다른 남성동창들은 박재동이를 ‘비아바이’라고들 했지만 성만이는 대학다닐 때부터 형이라고 불렀다.
“난 잘 몰라...”
“그럼 혼자 하나 가지고 노오. 내 순애와 같이 하나 탈게.”
성만이는 김순애든 누구든 녀자와 단둘이 가질수 있는 기회라면 덮어놓고 좋았다. 그래서 속으로 은근히 쾌자를 불렀다.
둘은 빨간 구명조끼를 하나씩 껴입고 배에 올랐다. 과연 성만이는 량손으로 노를 젓는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비아바이는 아직도 호수 변두리에서 좌충우돌하며 맴돌고 있는데 성만이네가 탄 배는 씨엉씨엉 속력을 내며 어느 사이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고 있었다.
“배를 많이 타봤네요. 노를 잘 젓는 솜씨를 보니...”
“마누라의 몸종으로 살다나니 그렇게 된거요.”
성만이는 고위급간부네 집 사위로 몇십년 머리숙이고 살아서 배를 탈 때면 노를 젓고 승용차를 탈 때면 핸들을 잡고 비행기를 탈 때면 짐을 들고 다니는 일은 무조건 그의 몫이였었다.
성만이는 어제 밤에 맥주병밑굽한테 안해와의 ‘악연’을 털어놓듯이 자기가 얼굴 없이 자존심 구기며 살아온 경과사를 대충대충 김순애한테도 들려주었다.
“내 얘기는 들어봤자 ‘현대판 노예사회의 력사’밖엔 없다니까. 이제부턴 순애 얘기나 들어 보기오.”
“저한텐 들을 얘기가 더 없거든요.”
“순애네 아들은 태속에서부터 그렇게 잘못 된게요?”
“아니래요. 해산을 할 때 아이 머리가 귀우까지는 나왔는데 더 나오지 못하고 시간을 오래 지체하는 바람에 머리뼈가 졸리면서 뇌가 잘못됐어요.”
“어- 그랬구만. 그럼 집엔 그 아들 하나요?”
“밑으로 딸애 하나 또 봤어요. 인제 초중에 다녀요.”
“듣자니 순애남편도 몸이 좋지 않다는것 같던데?...”
“호- 쌍지팽이가 두 다리를 대신해요. 오토바이를 타다가 그리됐어요.”
“남편은 원래 무슨 일을 했소?...”
“저와 같이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지요. 그렇게 사고를 친 다음부턴 교수는 못하고 저녁마다 학교에 나가 밤 보초나 서요.”
“그럼 달 로임도 말이 아니겠구만.”
“예, 저는 언녕 중학교 고급 직명을 가졌는데 그 사람은 그냥 중학교 2급에 머물러 있어서 달마다 로임이 한 7백원씩 나오는가 그래요.”
“아, 그러니 생활은 말이 아니겠구만... 그럼 그 장애인 아들은 누가 보살피오? 낮에는 아버지가?...”
“호- 저의 집에는 또 애들 할머니가 두분 계시거든요.”
“무슨 할머니가 둘씩이나 되오?”
“친정 어머니에 시댁 어머니까지 모두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아요.”
“그건 왜?...”
“호- 두루두루 사정이 그렇게 됐어요. 시댁 어머니는 결혼해서부터 저의 집에서 살았는데 몇해전에 친정 오빠와 올케가 한국으로 가게 되여 오빠네 집에 계시던 친정 어머니도 제가 모셔왔어요.”
“어허, 들을수록 캄캄해지는데. 아들, 남편 모두가 장애인들인데 거기다 시댁, 친정하며 로인도 두분이나 모시다니 순애 그 어깨를 누르는 짐이 무거워도 이만저만 무거운게 아니구만.”
“호-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렸어요. 어찌 보면 어머니 두 분을 모신다고도 할수 있겠지만 내가 오히려 우리 아들을 돌봐주는 두 분 로인의 로후를 도적질한다고 생각할수도 있는게 아니겠어요. 항상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져요.”
“그나저나 순애는 생활이 어렵기로 말이 아니겠는데...”
“괜찮아요. 그래도 밥먹고 살만은 해요.”
성만이는 측은한 눈길로 순애를 바라본다. 어제부터 동창들이 김순애네 가정살림이 구차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이렇게까지 한심할 줄은 생각밖이였다.
그는 젓던 노를 홱 팽개치고 김순애의 팔목을 덥석 움켜쥔다.
“내 이 김성만이란 동창생은 다른건 없어도 돈은 수백만원 모여두고 있는 사람이요. 순애! 너무 돈걱정 마오. 내가 도와줄테요!”
성만이의 집게 같은 손은 순애의 보들보들한 팔목을 점점 더 힘있게 움켜쥔다.
“호호 정말이래요. 눈물이 나게 고맙기는 하지만 그건 싫어요.”
“왜?...”
“그럼 저는 죽을 때까지 무거운 인정 빚에 시달리지 않겠어요?”
“어허, 빚이 아니라 채권에 당첨되듯이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되는거 아니겠소?”
“은혜를 베푼 사람은 그 일을 모래밭에다 써놓아야 하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돌 바위에다 새겨두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도 우리 둘은 동창생 사이니까 이건 다르오.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다른건 부러워도 돈만은 부럽지 않다니깐.”
“호호호... 세월이 많이 흐르니 별난 동창 다 만나네요. 그럼 성만이가 부러운건 뭔가요?”
성만이의 불타는 눈길은 김순애의 얼굴을 참빗질하고 있다. 고생을 겪어온 흔적으로 얼굴 구석구석엔 가는 잔주름들이 서려있지만 눈섭부터 입술까지 가맣고 빨갛게 화장을 한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자연미에 그 속엔 또 지식인의 성숙함이 받쳐있는 얼굴이다. 실로 지금 세월에 돈을 주며 찾으라 해도 이런 녀성은 찾아보기 힘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