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는 생각던 끝에 아버지, 어머니와 동창생인 신문사에 있는 강현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강현수가 후에 이 일의 내막을 알게 된것도 바로 그 때문이였다. 그때 청아가 만약 강현수를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을 찾았더라면 강현수도 이한 비밀은 영원히 모르고 있었을것이다.
그때 강현수도 자기와 사이좋은 녀동창생과 긴밀히 관계되는 일이라는 청아의 능청스러운 속임수에 넘어갔다. 그래서 기자증을 들고 신문보도와 관련되는 조사라고 꾸며대며 마침내 시공안국의 당안처 컴퓨터에서 청아가 찾는 진명개를 찾아낼수 있었다. 할빈시에는 진명개란 꼭 같은 이름이 7명 있었는데 그중에 나이가 45세이고 첫 부인이 왕려홍이란 사람이 진짜 컴퓨터에 저장되여 있었던것이다...
청아가 그 주소를 가지고 조사를 해보니 부부 두사람 모두 한족인 진명개와 왕려홍도 신통히 할빈공업대학 기계공학전업의 동창생이였고 졸업후엔 또 함께 할빈 비행기제조공장에 기술자들로 배치 받았었다. 그런 부부에게도 확실히 아들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두살나던 해에 왕려홍이 그 애를 안고 거리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그만 엄마도 죽고 그 애도 당장에서 요절했다는것이다. 그 다음 진명개 또한 후에 성이 맹가라는 녀성과 재혼을 했는데 그 후처라는 녀성이 군서방을 보고 다니며 바람을 피우다가 진명개한테 발각되여 동네가 들썽하게 싸움도 숱해했는데 나중에 진명개는 그 맹가라는 후처를 칼로 찍어 죽여 살인범이 되여 십년전에 조원감옥이란 철창속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것이다. 처음 판결은 사형 유예집행 2년이였는데 후에는 무기도형으로 넘어갔다는 엄청 놀라운 소식이였다...
“백일호는 아들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자 그 이튿날로 구금자와 아들을 데리고 조원감옥으로 청아 생부를 만나보러 떠났다는거요.”
“어머! 한심해라... 금자와 반장네 집에도 그렇게 놀라운 비밀이 있었구만요.”
강현수의 이야기를 듣는 최윤희도 너무 뜻밖의 이야기라 돌부처처럼 멍해지고 있다.
“그렇게 감옥까지 찾아가서 생부를 만나고 오니 청아는 마음이 많이 진정되고 차츰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더라는구만. 그 보다 내가 보기에 더 다행스러운 일은 2년전에 감옥에 있는 청아의 생부가 병으로 죽었다는 그 소식이요. 하긴 우리 백일호가 언제 봐도 무슨 일이나 처리를 잘하지. 그 사람이 감옥에서 죽었다는 통지를 받고 백일호는 상해에 있는 아들을 당장 비행기를 타고 오라고 해서 아들을 데리고 둘이 조원감옥으로 장례 치르러 다녀왔다지 않겠소...”
“현수 정말 고마와요. 실로 입밖에 내지 못할 말을 저를 믿고 알려줘서...”
최윤희는 이러면서 이젠 동창들을 찾아가자고 하는데 이번엔 강현수가 최윤희를 잡는다.
“잠간, 내 아까부터 윤희를 조용히 만나자고 했다니깐. 윤희도 나한테 뭘 숨기는것이 있지?”
“제가 숨기다니요?... 제가 현수한테 숨길 일 뭐가 있겠어요?”
“정말?”
“호호, 정말 아니고...”
“윤희가 키우던 조카애, 박일화말이네, 정말 일본에 가있어?”
그 소리에 윤희는 흠칫 놀란다. 하지만 인츰 놀라운 기색을 감추며 깔깔 웃는다.
“호호호... 별난 사람 다보네. 그래 일본에 간걸 가지 않았다고 하래요?”
“며칠 전에 동창모임 통지로 내가 윤희한테 전화를 칠 때 윤희는 백일호네 북방사범대학에서 박화라는 조카애가 공부하고 있다고 했지?”
“그랬지요. 현수는 금자한테도 알려주어 오늘 아침 금자도 그 애 말을 하던데요. 그런데 왜요?”
배속에서 먹고 나온 나이까지 하면 이미 쉰 고개에 절반쯤 턱걸이를 한 최윤희는 흘러온 년륜과 함께 사람단련과 사회경험이 풍부해져 25년전의 학창시절과는 완전히 달리 한낱 성숙된 자세로 눈이 휘둥그래지는 강현수를 대하고 있다.
“북방사범대학에 다닌다는 그 조카앤 우리 박일화하고 쌍둥이 자매처럼 참,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래! 바로 그래서 하는 소리오. 7년전에 윤희네 집에서 보던 박일화란 애와 신통히 같게 생겼더란 말이오.”
“호, 그런데 현수는 여기서 공부하는 저의 조카애 박화를 언제 봤죠?”
“오늘 점심에 일호가 처녀애들 사진 두장을 나한테 보이더구만. 며칠전에 내가 일본에서 박사공부를 하는 큰 형님네 아들과 짝이 될 처녀애를 하나 소개해 달라고 일호한테 부탁한적 있거든.”
최윤희의 눈이 삽시에 꼿꼿해 진다.
(박화를 자기네 며느리로 삼고 싶다면서 왜 그 애의 사진을 강현수한테 보였을가? 혹시 백일호가 어떤 눈치를 챈것이 아닐가? 그럴수는 없을텐데...)
하지만 그것도 0점 몇초 사이, 강현수가 눈치차릴 틈도 주지 안고 최윤희의 눈이 다시 부드럽게 웃고 있다.
“호호, 그럼 반장은 저의 조카애 박화 사진을 들고 왔겠네요. 그 애 사진 한장만 보여주던가요?”
“아니, 다른 애 사진도 또 한장 있었어.”
“그래 저의 조카애가 마음에 들던가요?”
“내가 마음에 들어 무슨 소용있겠어. 당사자가 마음들어해야지.”
“그럼 그 사진들이 지금 현수한테 있어요?”
“일호가 주지 않더군. 본인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가지고 온거라면서...”
(그럼 박화 그애도 모르게 사진을 가져다 강현수한테 슬쩍 보인다? 왜서 그랬을가?...)
최윤희는 불길한 예감에 등골이 오싹 소름이 끼친다. 하면서도 그런 긴장감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은근히 땀을 빼고 있다.
강현수와 최윤희가 남들의 눈을 피하며 조용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동창들은 유람용 소형기차를 타고 태양도 풍경구를 한바퀴 돌고 있었다.
박화
똑, 똑, 똑...
밖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들어오게!”
방안에서 나는 그 응답을 기다렸다가 몸매가 날씬한 단발머리 처녀애가 백일호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석사연구생 박화였다.
“반갑네. 거기 쏘파에 앉게...”
백일호의 마음은 지금 소용돌이치는 강물처럼 뒤번져지고 있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 없이 짐짓 태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때 왕주임이 사무실로 들어와 커피 두컵을 타서 백일호와 박화학생의 앞에 놓고 다시 조용히 물러갔다.
“커피를 들게.”
“예, 고마와요.”
물찬 제비처럼 곱게 몸을 세웠다는 다시 제 자리에 사뿐 앉는 처녀애다.
반듯하게 잘도 자라준 처녀애, 어쩌면 말쑥한 얼굴은 봄꽃처럼 저리도 싱싱할가. 박화의 얼굴을 바라보는 백일호의 눈에는 흐뭇한 미소가 어리여있다.
(곧고 바른 코날, 뚜렷한 선을 가진 저 입은 제 에미를 많이 닮은것 같네... 몇오리 아래로 드리운 머리카락 사이로 환히 드려다 보이는 저 이마, 영채 도는 저 눈매는 나와 비슷한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데 저 애는 키가 왜 저리도 작지? 윤희도 나도 키는 껑충 큰데...)
“교수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죠?”
백일호를 바라보는 박화의 밝은 눈은 그냥 생글생글 웃는다.
“어, 참 박화에게 미안해서 한번 조용히 불렀네.”
“?... ...”
“내가 자네와 같은 조선족이면서...명색이 이 북방사범대학의 부총장이고 교육심리학원의 원장이란 사람이 자네가 떳떳하게 독일로 박사공부를 갈수있는것도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네...”
“호- 그렇지 않아요. 교수님이 저의 일로 성교육청에 가서 책상을 두드리며 싸우셨다는 일도 저는 들어 알고있어요. ”
“내가 무슨 도움될 말 한거있다고 그래?”
“교수님께서 대노하며 책상을 내리치자 그 교육청 청장이란 사람은 ‘당신은 자기 민족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이 깊은것 같구만. 그러나 당신은 우선 공산당원이란것을 명기해야 하오. 조직의 안배에 복종하는것부터 다시 배우란 말이오.’ 이렇게 말하니 교수님께서는 맞받아 ‘청장 어르신님이 말 한마디는 참으로 수준없이 하는구만. 내가 어떻게 먼저 공산당원이고 후에 조선족이 될수가 있소?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조선족이니 난 태여날 때부터 조선족으로 태여났고 공산당원은 스물한살에 든거요. 알겠소?’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디다.”
“허허, 그 청장하고 난 석사연구생시절 동창생이여서 아무소리나 한건데 누가 그런 말까지 자네한테 알려주던가?”
“어쨌든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이야길 듣고 저는 가슴이 막 후더워 났어요. 곁에서 저를 지켜주는 존경스러운 분도 계신다는 생각에서요.”
박화는 해빛 같이 밝게 웃는다. 그러는 박화를 바라보는 백일호의 눈에서는 용선로속의 쇠덩이라도 녹일듯한 뜨거운 정열이 이글이글 타번지고 있었다.
“그럼 자넨 박사공부는 어디서 할 타산인가?”
“이 학교에서 그냥 할 생각이래요. 호- 어떤 분들이 반대도 하지만요.”
“누가? 왜서 반대하는가?...”
“그런 분들이 더러 곁에 있어요. 저를 관심해서 더 훌륭한 환경을 찾아서 공부해라는 착한 마음에서겠지요. 그러나 괜찮아요. 저의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선택해야지요. 그리고 저의 도사를 맡게 되는 류교수님도 아주 훌륭하신 분이래요.”
“자네 생각이 바른것 같네. 우리 대학 박사생들은 1년간 해외에 내보내 견학도 시키고 있네. 그러노라면 미국이나 유럽쪽으로 가서 공부를 더 할 기회가 생길수도 있고...”
기실 백일호는 지금 자기가 돈을 내여 이 처녀애를 해외 명문대학으로 류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그런데 자넨 어찌하여 우리 집엔 딱 한번 놀러오고는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는건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우리 집사람도 그렇고 상해에서 공부하는 청아 그 녀석도 자네를 아주 반가와하는 눈치던데...”
“예, 알아요. 앞으로 시간나는 대로 자주 찾아 뵙겠어요.”
백일호는 지금 이 처녀애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아까는 수년간 곁에서 보아왔고 지어는 며느리감으로 점을 찍었던 이 처녀애가 최윤희와 자기의 딸이라는 놀라운 충격에 무작정 만나보고 싶어 태양도에서 달려왔지만 정작 만난후에는 한껏 부풀었던 마음을 스스로 자꾸만 억제하고 있다. 그러노라니 이 처녀애는 그 비밀을 알고 있을가 하는 궁금증이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그런데 박화는 묻는 말만 조심스레 대답할뿐 다른 말은 일언반구도 더 꺼내지 않고 있다.
(어제 오후 최윤희와 이 애가 망강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걸 왕주임이 보았다고 했지? 그렇다면 지금 이 애는 나와 최윤희 모두 태양도에서 대학동창모임에 참가하고 있다는걸 번연히 알고 있을것이다.
그래, 언젠가 우리 집으로 놀러 왔을때도 이 애는 집사람이 꺼내놓는 사진첩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것 같았다. 그 사진첩엔 분명 우리 동창들이 함께 찍은 졸업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엔 최윤희도 있고 나도 있고 집사람인 구금자도 있다.
그런데 이 애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걸가?)
백일호는 처녀애의 눈길로부터 얼굴 기색, 그리고 손가락을 놀리는 작고 미세한 움직임들까지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참으로 령리하면서도 나이보다는 성숙미가 은은히 얼굴에서 흐르는 어른스러운 애다.
“자넨 요즘 석사졸업과 박사생입학이 겹쳐서 몹시 바삐 보내겠군.”
“예, 조금은 바삐 보내요. 오늘도 류교수님께서 저보고 자료 하나 쓰라고 하셔서 정신없이 그 자료를 쓰다가 여기로 오는 길이예요.”
“그래? 그럼 오늘 이야긴 이만하고 어서 가보게.”